1. 불편함
서편제의 그 유장한 화면과 애끓는 판소리, 주인공의 안타까운 운명을 담담하게 풀어놓은 감독의 솜씨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그의 스타일, 그만의 화면, 그의 정통 영화법을 기대한다는 건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임권택 감독은 '새로운 스타일'에 대한 강박 관념이라도 있는걸까? 늘 새로움을 추구하고 변화를 꿈꾸는 것만이 참다운 예술가의 자세인가? 자신의 세계를 고수하는 것, 그래서 낯선 것들 사이에서 불편하게 사는 사람들에게 낯익음으로 위안을 주는 것은 예술가의 태도가 아닌가?
젊은 감독도 아니고 작가주의적 감독도 아니고 임권택을 정통 영화기법을 사용하면서 우리 것을 화면에 담으려 노력하는 감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영화가 이미 지나간 인물, 지나간 시대를 담는 사극이라는 것을 전재한다면 당연히 본 영화는 서편제에서처럼 롱테이크를 사용했으리라고 예상했을 것이다. 그러나 감독은 시종일관 숏컷을 사용하고 있는데 짐작하기에 감독은 감정의 지나친 분출, 혹은 몰입을 극력 경계하면서 절제의 미....우리나라 고유의 미라고 규정된 절제의 미를 나타내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절제도 좋고 자제도 좋지만 감정이 고조된 어느 한순간만이라도 감정을 분출시켜줘야 하는데 뭔가 가슴 한곳이 아련해지려고 하면 가차없이 짜르고 다음 화면으로 넘어가니 영화가 다 끝난 다음에도 호흡이 제대로 안되고 답답했다.
이런 숏컷의 의도적 사용때문에 주인공이 악을 쓰며 분노할때도 감상자인 나는 멀뚱하고, 비싼 값을 치루며 간신히 대면한 기생과의 자리에서도 손 한번 잡아보지 못하고 나오는 장면에서도 왜 저러나 싶은 생각만 들지 주인공의 절절함이 가슴에 와닿지 않는다. 감상자의 안목 부재이거나 임권택 감독의 실패이거나 둘 중 하나일거다.
그러면서도 영화의 주재라 할 수 있는 예술가의 고뇌, 자신의 고유의 경지를 확보하고 싶어하는 화가의 몸부림, 시대와 화해하지도 못하고 저항하지도 못하는 무력한 한 인간의 고민을 형상화한 장면들은 왜 그리 구태의연한지. 지붕 위에 올라가서 악쓰며 욕하고, 술먹고 주정하며 주위를 난장판으로 만들고 ...하는 장면들은 大家라는 이름에 걸맞는 장면이 아니다. 너무나 흔하고 너무나 도식적이기에 실망스럽다. 뭔가 다른 방식으로 표현해야 하지 않을까? 예를 들면 '와이키키 브라더스'에서의 주인공은 위대한 예술가를 꿈꾸다 3류 밴드로 전락했으니 그에 대한 좌절과 고민이 왜 없으랴만 주인공은 얼굴 한번 안찡그렸고 취한 걸음 한번 없었다. 그저 주변 인물의 떠나감과 주인공이 배치된 장면, '너 행복하니?'식의 어쩌다 주고받는 말한마디가 전부지만 관객은 주인공의 고통을 충분히 짐작하고 공감하는데 반해 임권택은 너무나 흔한 방식을 고민없이 연출한다.
관념을 형상화하는 것은 지난하다. 모든 예술가가 전생애를 두고 고민하고 미쳐보고 환장해보고 해서 자기에게 걸맞는 형식 하나 찾는다면 그는 행운아다. 얼마나 많은 예술가들이 수백 수천번의 시도 끝에 진짜 미쳐버리고 죽어버리고 좌절하는가?
감상자들은 또 얼마나 냉혹하며 하늘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면서도 또 얼마나 새롭고 신선하고 참신한 것을 요구하는가? 박수에는 인색하고 비판은 얼마나 함부로인가?
감독은 인물 장승업뿐 아니라 동양화 전부를 다 화면에 담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사람 얘기 하나만으로도 벅찬데 동양화, 세로 그림인 동양화를 가로 화면에 넣으려 했으니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거기다가 시대상까지 끼워 넣으려 했으니 욕심이 너무 지나쳤다. 사람은 왜소해지고 시대상은 겉돌고 화면에 담겨진 동양화는 생명력없는 소품에 머물렀다.
2. 답답함
감정이 몰입되지 못해 답답하고 분출되지 못한 감정 때문에 화가나는 것은 최민식의 연기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최민식이라는 걸출한 배우의 끼를 감독이 너무 누르지 않았나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파이란'에서의 최민식은 최민식이 아니라 주인공 자체였는데 반해 장승업에서의 최민식은 자신의 에너지를 마지막 하나까지 연소시키지 못하고 중간에서 타의에 의해 꺼버린 사람처럼 뭔가 미진하고 아쉬움울 남기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영화가 칸에서 수상한다면 최민식 덕일 것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그의 연기는 탁월하다. 양반들의 압력을 의뭉스럽게 내치는 능글맞은 표정, 궁궐에서 도망쳐 나올 때의 쳔연덕스러움은 최민식표 장면이다.
극본이 김용옥이라는데 김용옥, 임권택, 최민식 ......당대의 최고들이 모여서 서로의 기를 복돋은 것이 아니라 기싸움을 벌이고 그 와중에 운신의 폭이 좁았던 최민식의 기가 꺾이지 않았나 짐작하면서 가령 서편제의 여주인공이 무명의 초보 연기자가 아니고 여인천하의 강수연이었다면 그렇듯 운명에 순종하는 여인이 그려??을까 하고 생각해보았다.
장승업의 첫사랑과 그 첫사랑을 닮은 기생으로 나오는 여인은 차라리 한마디도 안했으면 좋았을 것 같고, 자막으로 들어간 시대 설명은 넌센스고, 한양의 저자 거리와 동학란이 일어난 고부 저자 거리가 같은 셋트장이란 걸 다른 사람들은 눈치못챘으면 좋겠고, 동학란에 동원된 엑스트라 수는 왜 그렇게 적은지 농민들이 불쌍하게 보이고 ...기타등등....기타등등.
3. 그러나
조연으로 나오는 안성기는 연기의 '경지'가 무엇인지 보여주는데 구한말 개화파의 야심과 좌절을 과장없이 연기함은 물론, 환쟁이의 사회적 역할과 끊임없이 도전하는 자세를 일깨워주는 한정적 역할을 안성기는 자신의 극중 비중이 얼마큼인가를 명확하게 깨닫고 꼭 그만큼만 표안나게 연기함으로써 영화 전체를 굳건히 받쳐 주고있다.
또,화면에 펼쳐지는 금수강산은 왜 그리도 아름다운지, 저기 우리나라 맞아? 할 정도고, 붉은 치마에 노랑 저고리를 입은 처자는 왜 저리도 고운지 사내 마음 홀랑 빼앗기에 충분하고, 역시 붉은 치마에 초록색 저고리를 입고 엎드린 기생 매향의 자태는 숨조차 멎게하고, 시집 잘못와 욕구불만에 가득찬 아내는 가장 실감나는 캐릭터고, 안성기와 최민식이 갯벌에서 해후하는 장면에서는 두 사람의 반가움과 서러움과 안타까움 때문에 거의 울고 싶고.........
무엇보다도 후반부에 들어간 길고도 리얼한 정사신은 이제까지의 분위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생경한 장면이었는데 카메라는 어떠한 기교도 안부리고 두 남녀의 몸뚱어리와 격렬함을 그대로 생생하게 정면에서 비추는데 처음엔 팬서비스 차원이나 감독의 죠크라고 생각되었으나 마지막 클라이맥스 순간에 정액이 요위에 허망하게 뿌려지는 장면에서는 앗! 소리가 저절로 터져 나왔다. 이는 어쩌면 이제까지의 모든 몸부림이 허망했음을 암시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저 인생 한바탕이 꿈이란걸 말하는 것 같기도 하고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격언도 사실은 거짓이라는 걸 지적하고 싶어하는 것 같기도 했는데 이전까지 낮은 목소리로 말하던 감독이 불현듯 몸을 일으켜 천둥같이 일갈하는 듯해서 깜짝 놀랐고 의표를 찔린 것 같았다.
4. 덩가
딴지일보에 영화평란이 있는데 베스트도 알겠고 워스트도 알겠는데 '덩가'급은 무슨 말인지 궁금했다가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보덩가말덩가'. 의 준말이다. 취화선은 그 요란함에 반해 '덩가'급에 메겨졌는데 나는 '보덩가'쪽으로 치우친 덩가급을 주고 싶다. 지불한 금전과 시간과 노력에 비해 건진 건 꽤 된 것 같기에...... 그러나 큰 기대는 마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