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남편에게 용돈을 주다 보니 문득 남편과 데이트 할 때의 일이 떠올랐다. 친구의 소개로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그 시절 가끔 나는 남편에게 용돈을 받기도 했다. 항상 남편의 지갑 속에는 만 원짜리 지폐가 두둑이 들어 있어 만날 때마다 맛있는 음식도 잘 사주고 선물도 곧잘 하곤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과 드라이브를 하다가 마침 점심시간이라 근처의 냉면집으로 들어갔다. 거의 냉면을 다 먹어갈 쯤 느닷없이 남편이 화장실에 갔다 올테니 오늘 점심값은 나보고 내라는 것이었다. 사실 지금껏 얻어 먹은 것에 비하면 너무도 작은 금액이었지만 남편의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적잖이 당황이 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아침에 동생이 급한 일로 돈을 빌려달라기에 지갑 속의 돈을 다 털어주는 바람에 겨우 오천원권 지폐 한 장이 달랑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오천원만 들고 무슨 배짱으로 데이트를 하러 나왔는지 참 어이가 없다.
어쨌든 사람이 많아 자리는 비워주어야 했고 나는 남편이 화장실 갔다 올 동안 내내 의자에 앉아 주춤거렸다. 마침 남편이 왔고 당황스러워 하는 표정을 알아챘는지 남편은 지갑에서 돈을 꺼내 음식값을 지불했다. 그 순간 얼마나 창피했는지 남편의 얼굴을 보는 게 민망하기만 했다.
밖으로 나와 차를 탔다. 그런데 갑자기 이 남자가 내 지갑을 달라고 하더니만 자기의 지갑속에서 오만원을 꺼내 텅 빈 나의 지갑속으로 넣어주는 것이 아닌가? 빌려주는 거라면서....
그리고 그 후 나는 가끔 나는 남편에게 용돈을 받곤 했다. 처음에는 멋쩍기도 했던 마음이 시간이 지나면서 갈수록 없어지다가 나중에는 일부러 지갑을 비우고 나가 오히려 지갑까지 건네주면서 돈을 넣어라고 억지를 부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남편에게 용돈을 주며 살아가고 있다. 샐러리맨인 남편의 월급도 많지가 않았을텐데 그 때는 왜 그랬는지...
예전의 그 생각을 떠올리면서 나는 가끔 남편이 잠든 사이나 샤워하는 동안 남편의 지갑을 훔쳐본다. 남편의 지갑이 비워져 있으면 몰래 비상금을 넣기도 하고 돈이 의외로 많이 들어 있으면 슬쩍 빼기도 한다.
지갑 훔쳐보는 일, 나만이 누릴 수 있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