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에는 제법 오래된 분식점 하나가 있다.
내가 알기로도 20여년은 되지 않았나 싶은........
비싸지 않은 가격에 성실한 모습의 부부가 이끌어나가는 곳으로
음식솜씨 또한 깔끔한 편이라 개인적으로도 좋아하는 곳이였다
그러던 어느날......
지나가다보니...그 음식점은 문을 닫고...무엇이 들어서려는지 인테리어
공사가 한창이였다. 동네 음식점답지않게 단정한 스타일로 인테리어에 꽤나
돈을 들이는걸로 봐서........음식점일거 같지는 않고...엄한게 들어서나부다...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편으로 난 은근히 섭섭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오랫동안 정든
장소와 사람 하나가...예고도 없이 어느날 문득 잘려져 사라진 그 묘한 느낌
도대체 어디로 터를 옮기신 것일까??
나도 내 아이들도...내 부모님도 내 형제들과도...자주는 아니여도 어쩌다
가끔 들리던....그래서 거의 스무살 시절의 내 모습부터...서른 일곱해까지의
내 모습을 봐온...그 음식점 주인....
정이 든다는 것처럼 따스하고 동시에 허무한 일이 있을까.....싶은 생각이
든다. 언젠가 학부때 어떤 교수가 그랬었다. 오래동안 연애해서...나중엔
사랑에 대한 감정도 불분명해지고...일상화되어 버린 그의 연인.....막상
결혼할 즈음에는 많은 갈등이 있었단다. 하지만 결국 자기 마누라와 결혼
한 이유는 함께 공유한 청춘의 세월은 그 누구와도 다시 되돌릴 수 없기 때
문이였다고.
며칠전 일찍 귀가하면서 그 옛날 음식점 자리를 보았다.
앗............옛날 상호 그대로 새 간판이 달려 있었다, 인테리어만 새롭게 다
다시 한 것이였다. 반가운 마음에 그 음식점으로 향했다.
정겨운 그 얼굴을 다시 보면서......그 자리를 지켜준 그 음식점 주인에게
내가 내심 고마워하고 있었다는 걸 알면..........그 주인은 웃을까??
정든다는 것, 사람을 안다는 것.......그리고 시간을 공유한다는 것....
인간의 물리적 힘으로도, 그렇다고 단지 우연한 인연만으로도 이루어지지 않는
소중한 일일테다.
며칠전 내가 잘가는 한 사이트에 익명으로 올린 글을 읽고 내 동생이 나라는 걸
알아보고 언니 나야..아무개...하고서 글을 올려서 깜짝 놀랬었다...그렇게 눈치 챌
정도의 내용도 아니였는데...동생은 용케 날 알아본 것이였다.
글을 읽다보면 아무리 검은 휘장으로 나를 감싸도 나의 본질이나 속사람을
숨길 수는 없는 모양이다. 물론 글을 기술적으로 아주 잘 쓰시는 분들이야 완
벽한 속임수 내지는 기술로써 자신이 전혀 드러나지 않게 쓰실 수 있겠지만
나처럼 허접쓰레기같은 낙서나 일삼는 사람의 글은 단박에 그 인간 됨됨이의
실체가 드러나는 모양이다.
난 내 주변의 사람들을 얼마나 알고 있는 걸까........
그리고 그들은 나를 얼마나 아는 걸까.........................
아무도 나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 같은데...어디선가 예리한 시선으로 나를
파악하고 이해하는 존재가 있겠지........휴머니즘에서 우러 나오는 따뜻한 시선으로
나를 지켜봐주며 바른 길로 인도해 줄 좋은 분들을 얻어 나가는 삶이였으면 좋겠다.
****************************************************************************
그는
정 호 승
그는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을 때
조용히 나의 창문을 두드리다 돌아간 사람이다.
그는 아무도 나를 위해 기도하지 않을 때
묵묵히 무릎을 꿇고
나를 위해 울며 기도하던 사람이었다.
내가 내 더러운 운명의 길가에 서성대다가
드디어 죽음의 순간을 맞이했을 때
그는 가만히 내 곁에 누워 나의 죽음이 된 사람이었다.
아무도 나의 주검을 씻어 주지 않고
뿔뿔이 흩어져 촛불을 끄고 돌아가 버렸을 때
그는 고요히 바다가 되어 나를 씻어 준 사람이었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자를 사랑하는
기다리기 전에 이미 나를 사랑하고
사랑하기 전에 이미 나를 기다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