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전 사택에 살던 때의 일이다.
함께 일하기로 한 아저씨 한분이 서울에서 멀리 우리집에 까지 오게 되어 함께 사택에 기거 하게 된 일이 있었다.
그 남잔 이혼을 하고 젊은 처녀를 데리고 왔었다.
처음 온날 우리는 함께 작은 축하 파티를 조촐하게 보내었고
그다음날 우리 신랑은 그 남자를 데리고 일하는 현장엘 나간후 나는 집 청소를 다 하고서 아기를 업고 늘 혼자 있어 외로웠던 것을 이젠 새로온 공장 식구 덕에 말동무가 생겼다 싶어 그녀의 방앞에서 노크를 했다.
아주 늦게야 그녀가 나왔다.
근데 그녀의 얼굴에 멍이 들어 있었고 7월이라 짧은 소대나시 사이로 그녀의 팔에 멍 자욱이 시커멓게 드러 나있었다.
나는 놀란 토끼눈을 한 채로 웬일이냐고 물어 대었다.
나이는 나보다 6섯살이나 어렸었다.
그 남자와는 12살의 차이가 남을 나는 그날 일로 알수 있었다.
그녀는 내게 도움을 청 하였다.
그여자의 본집은 전남 완도 였고 고등학교를 마치자 마자 서울로 상경하여 섬유 공장엘 취직 하였고 그곳의 사장이였던 그남자는 유부남이였으나 야간때 그녀는 그남자에게 순결을 빼앗겼고 지금까지도 동거 아닌 동거를 하며 지내 왔다는것.
그러다가 회사가 부도가 나고 그남자는 그여자의 덕에 살다가 이리로 오게되었고 여전히 여잔 그남자의 곁을 떠나고 싶어 한다는것...
어젯밤엔 그남자가 그녀에게 자기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멀리 가라고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는 사랑한 사람이 있었다고 하는데...
나는 어이없는 일들이라 생각하였고 이런 연극같은 인생이 있을까 싶었다.
그러면서 나에게 갈곳이 없다고 지금당장 이곳을 떠나고 싶다고 하였다.
난 그때 공장 사모님이 자주 가시는 점장이 할머니를 떠 올렸다.
그래서 함께 가기로 하였고 그할머닌 사정을 들으시고는 서울로 보내 준다며 나더러 좋은 일 하는 구나 시며 아무 염려 말고 집으로 가라고 하셨다.
나는 그녀를 점장이 할머니 집에 두고 집으로 왔었다.
그남자의 모습이 상상되질 않았다.
참으로 희한한것은 그남잔 아무렇지도 않는것 같아 보였다.
그다음날 점장이 할머니 집으로 갔을때 그녀는 없었다.
그 할머닌 나에게 서울로 갔다고만 하셨다.
나는 답답해서 아무것도 손에 잡히질 않았다.
그런후 그다음날 그녀에게서 우리집으로 전화가 왔다.
"언니 나 마산이야, 여기 그할머니가 소개 해서 왔는데 친척이라면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날 데리고 와서는 자기 아들이랑 살아래, 어떡해?" 한다.
얼마나 희얀한 일인가.
무조건 만나자고 했다. 내가 마산으로 갈테니 무조건 나와라고 했다.
그녀는 지키고 있어서 못나가는데 그아들에겐 이야길 모두 다 털어 놓았다고 했다.
그리고 그아들은 된 사람이 였는지 미안하다며 자기 어머니와 아버지 없는 날 낮에 열쇠줄테니 빠져 나가라고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다음날 우린 만났다.
무조건 합성동 시외 주차장으로 오라 했더니 그녀는 왔었다.
나는 아기가 어려 업은채 화장도 하지 않은 얼굴로 바쁘게 나갔었다.
그리고, 그녀를 만나서 부산으로 향했다.
서울엔 그녀가 갈곳이 없었기 때문이였다.
나의 친언니가 부산에서 혼자 살고 있었기에 임시로 언니에게 전화를 했더니 마침 이사하는 날이였으나 언니는 급하다는 나의 말에
못이기는 척 하며 같이 오라고 하였다.
그녀는 언니와 의자매 같이 일년을 가까이 생활하다가 서울의 옛애인에게 연락이 되어 그남자와 일년후 결혼식을 올렸고 삼년만에 아들을 낳아 지금은 경기도 일산에서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다.
이제는 우리집이 이사를 했다.
그녀의 전화를 기다리는 때가 있지만 서로의 잊혀진 과거이고 싶을것이라 생각하면서 나는 먼저 전화를 하지 못하고 있다.
그 점장이 할머니는 지금 어떻게 살고 계실까.
참 이해 할수 없는 사람이다 지금도 생각하면 그건 법에도 위촉 되는것이 아닐까...
그때나 지금이나 힘없고 돈없는 서민들을 울리는 인간 들이 너무나 많은 현실이 한번식은 너무나도 화가 날때가 많다.
나는 그 점장이 할머니의 비리를 너무 많이 알고 있다.
이게 다가 아니기 때문에 너무 나 치이는 우리네 약한 서민들을 위한 행복은 어디에서 찾을까 지금도 나는 그런 생각에 하루를 허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