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지역의 시장 안에는 돼지머리를 삶아서 그 원형그대를 팔기도 하고 또 돼지편육을 만들어 판매하시는 내외분이 계신데 그 할아버지의 왼 손은 엄지손가락이 두 개나 된다. 해서 할아버지 손가락을 모두 11개나 된다.
예전에는 아이들이나 어른들이나 육 손의 장애를 가지고 사시는 분들이 많았던 걸로 기억되는데, 요즘은 그런 장애를 안고 있는 사람들은 눈을 씻고 찾아보려 해도 시장 안의 할아버지처럼 육 손을 가진 사람은 좀처럼 만날 수가 없다.
시대 변천사로 급변하는 세태의 흐름은 먹는 음식까지도 패션화의 방향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아마도 수족에 장애(육 손)를 안고 사는 사람들은 유년기에 모두 성형 술로 제거를 해 흔적 없이 정상인으로 삶에 임하고 있을 것이다.
시장을 수시로 나갈 때면 자주 만나지는 할아버지는 체격이 아주 왜소하시면서 또 약주를 좋아하시기 때문에 할아버지 옆을 스쳐 지날 때에는 텁텁한 막걸리 향내에 절어 계신 할아버지는 늘 당신 가계 앞아 앉아 계시는데, 난 할아버지를 만날 때마다 "안녕하세요.? 혹은 건강하시죠?" 하면서 인사를 드리면 항상 코가 빨갛고 딸기코형인 할아버지는 그냥 과묵하게 한일자로 입을 꾹 다물고는 고갯짓으로만 응답을 일관하신다.
해서난, 처음에는 할아버지가 농아인줄만 알았었는데, 워낙에 과묵하신 성격인지! 아니면 세상살이가 힘들고 재미가 없어서 입을 함구하고 계시는 건지! 또 할머니가 계신 분인지도 궁금하고 해서 필요치도 않은데도 나는 궁금증을 풀 요량으로 돼지편육을 조금 사러왔다면서 간이 주점 같은 가계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그런데, 상상외로 넓지도 좁지도 않은 가계 분위기는 할아버지 형색과는 반대로 아주 깔끔하게 정돈된 실내를 보면서 부인이 계신 분으로 알게되었다. 난 편육을 사면서 젊은 할머니께 할아버지에 대해서 궁금했던 점을 여쭤보니, 할머니의 대답은 이랬다.
실향민이신 할아버지는 북에 있는 가족들을 못 잊어하면서 밥보다 술을 더 좋아하더니 저 지경이 되었다면서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만난 것은 한 10여 년밖에 안되었다면서 불쌍해서 인간구제를 해 주었더니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아주 술독에 들어가 목욕을 하려고 한다면서 넋두리 같은 푸념을 늘어놓으며 "그 놈의 통일이 원제나 될라나 원," 하시면서...
지난 번 이산가족 신청을 억지춘향으로 겨우 해놓았는데도 이번에도 또 탈락이 되었는지 그 쪽에서 연락이 없고 TV에서 이산가족상봉 장면을 보시더니 방바닥이 꺼지도록 한 숨을 내쉬고 들이쉬며 정말에 빠지더니, 또 저렇게 술독에 빠져서 허우적 되니 정말이지 이젠 지겹고 속상해서 할머니당신이 지래 죽을 지경이라고 하시며, 편육을 써시면서 넋두리 보따리를 털어놓으신다.
그런 사정을 듣고 궁금증이 풀린 뒤부터는 지나다니면서 뵙는 할아버지는 참 가엾기 그지없다. 자식이 없으신 분들이라 그런지! 어버이날이면 할아버지의 꼬질꼬질한 잠바 앞섶에는 올 어버이날에도 어김없이 카네이션(조화)꽃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아마도 시장 상인들이 어르신들이 가여워서 선물로 달아드리며 위로를 해 드린 것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 할아버지는 사철 까만 장화를 신고 계신다. 금방 땅에서 채취한 생강의 마디처럼 두드러진 육 손을 뵙기도 불편한데, 하절기에도 검정장화를 신으시고 있으니 발 고락사이에 무좀이 생기면 어쩌나 싶기도 하고, 난 그 할아버지를 뵈면 난 그냥 걱정이 태산같다. 다리가 불편하신 할아버지는 돼지머리나 소머리 편육을 배달하면서 절룩거리고 다니시는데 골초이신 할아버지 입에는 늘 담배 개비가 줄담배로 물려 있다.
그런 몰골의 할아버지를 뵈면서 난 생각에 잠기게 된다. 거의 삶을 포기하신 것 같으신 표정의 할아버지께서 약주도, 또 담배도 좀 줄이시면서 건강을 챙기셨으면 하는 바람이며, 한 많은 삶이었지만, 살아온 세월보다 살아갈 세월이 짧으신 생을 좀 편안하게 사시다가 마감하실 수 있을 텐데 하는 바람과 아쉬움이 교차되는 시각이기도 했다.
그렇게 카네이션으로 앞섶을 단장하신 할아버지의 모습은 술이 고주망태의 몰골로 업혀 가는 돼지 눈의 표정으로 가게 앞 의자에 몸은 반쯤 뉘이고 삐딱하게 걸터앉아서 침을 질질 흘리며 졸고 계신 할아버지를 뵈면서, 난 지나가다가 "어머, 할아버지! 꽃이 참 예쁘네요?! 할아버지 가슴에 카네이션 꽃이 활짝 펴서 웃고있네요." 하곤 큰 소리로 잠을 깨웠다.
그리고는 우두커니 서서 내려다보니, 할아버지는 술김에도 낮 익은 내 목소리가 들리시는지! 상체를 바로 일으키시며, 아주 밝은 얼굴로 누런 앞니를 들어내며 활짝 웃으신다. 그렇게 황금색의 앞니로 활짝 웃으시는 할아버지의 눈에는 눈곱인지! 농축된 눈물인지! 그냥 촉촉하고 그렁그렁해진 눈을 뵈니 마음이 많이 아팠었다.
난 그날, 오랜만에 어르신의 환한 미소를 뵈면서, 내심 제발 다음 이산가족 상봉신청 때에는 꼭 할아버지께 반가운 소식이 전해져서 할아버지께서 함박 웃음으로 입이 귀에 걸린 모습을 보게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니...,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