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공부를 마치고 학교를 나서는데 한 한국친구가 나를 불렀다.
자기 차가 고장이 나서 일이 끝난 어머니를 모시러가지 못하고 있는데,
도와줄 수 있냐고 물어왔다. 시간 여유가 있어서, 좋다고 하고 같이
L.A. 다운타운으로 향했다.
얼핏 지나다니면서 멋지게만 보이던 고층빌딩들을 지나,
친구가 가리키는대로 가 보니, 미국에도 이런 곳이 있구나 싶은
낡은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길가에 쓰레기도 제법 보이고...
너덜너덜한 옷차림의 걸인도 있고...
지정하는 곳에 (봉제공장이라 했다) 차를 세우고 잠깐 기다리니,
친구가 허름한 건물 안으로 들어가 어머니를 모시고 나왔다.
첫 인사 드리고...와줘서 고맙다는 말을 듣고...
무척 피곤한 모습으로 뒷자석에 오르신 친구의 어머니는
친구집에 도착할 때까지 거의 30분 이상을 주무시는듯 했다.
집에 돌아와 늦은 이유를 설명드리고, 저녁식사를 하는데,
아버지께서 설명을 하셨다. 이민자의 어려움을.
70년도 초, 조상으로 부터 물려받은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모두 열심히
뛰고 있었고, 그중 소수의 선택된(?) 사람들은 더 나은 삶을 위해
브라질이나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는데, 가난한 나라여서 외화가
부족한 건 당연했고, 때문에 이민자들도 일인당 몇 백불 정도의
외화만이 허용됐고, 그나마 그것 마저 제대로 가져가지 못하는 사람들도
제법 있던 때였다. 불법으로 외화를 챙겨 이민을 떠난 극소수의
사람들도 있었으나, 대부분의 이민자들은 '무'에서 시작하는 셈이었다.
가져온 돈은 월세 아파트 구하고, 중고 가구 몇점 사고, 며칠 먹을거리를
사고 나면 바닥이 났고, 돈을 벌기 위해 이리저리 알아보면 한국에서는
몰랐던 사회적인 벽에 부딪히기 일쑤였다.
한국에서 받은 교육과 일 경험을 인정해주지 않는 미국사회에서
이민자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몸으로 때우는 막노동 밖에 없었다.
남자들은 식당 허드렛 일, 정원사 보조, 페인트 공, 청소부 등...
여자들은 대부분 봉제공장 재봉사...
그나마 영어가 조금 통하는 사람들은 '세일즈' 일을 하거나,
미국식당에서 웨이트레스 등...
70 퍼센트 이상이 대학 졸업자이고,
한국에서는 제법 번듯한 사무직을 갖고 있던 사람들인데.....
모두들 <자식 교육> 때문이라 했다.
미군과 결혼해 미국에 건너와 시민권을 딴 뒤 가족을 초청한
친척 덕택에 이민 온 사람이나...
투자이민, 취업이민으로 온 사람이나...
하지만, 아침 일찍 출근하여 힘든 노동을 8 - 12 시간씩 한 뒤
집에 돌아오면, 저녁식사 후 지친 몸을 쉬기에도 벅찼고, 게다가
영어마저 미숙하여 학교에서 공문이 와도 읽지 못하고,
애들 문제가 생겨도 통역해줄 사람이 주위에 없으면 어쩔 수 없던 현실!
그리고 미국 교육제도에도 무지하던 부모들이었는데,
자식교육을 어떻게??
그것은 결국 우리 몫이었다.
좋은 나라, 좋은 교육제도 속에 데려다 놓은 것 만으로
좋은 사람이 되리라고 '막연한 희망'을 걸고 열심히 일하시던 부모들이
우리 '이민 자녀'에게서 바라던 것은 '공부' 밖에 없었다.
열심히 해 대학 졸업장을 딴 뒤, 미국사회에서 번듯한 직업을 갖고
부모를 자랑스럽게 하는 것이 최상의 보답이라 했다.
자의 반... 타의 반...
부모가 제대로 신경을 못 써주어 떨어져 나가는 친구들도 있었으나,
내 주위 대부분의 이민 자녀들은 열심히 공부에 전념했다.
미국학생들이 5분 정도면 읽고 이해하는 교과서 한 페이지를,
우리는 사전 찾아가며 30 - 40분에 걸쳐 이해하고,
허탈해하곤 했지만.....
그 때 친구들
지금 사업가, 의사, 엔지니어, 약사, 회계사 등이 되어
잘 살고 있으니...
부모들의 고생이 헛되지는 않은 거 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