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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BY 가인 2001-04-17

오랫만에 가벼운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이른 아침이 주는 설레임은 굵은 목소리 앵커의 뉴스로 시작되었습니다. 정신없이 쌓여있는 빨래를 속옷, 양말, 수건 등등으로 구분하고 손빨래 목록부터 차곡 챙겨서 고무장갑 낀 손으로 주물럭 주물럭 어설프게 시작되었던 아침일도 어느덧 속도감이 생깁니다. 맑은 물로 헹구기를 여러번 이제 물이 빠지기를 기다리는 동안 서둘러 아침 준비를 시작합니다. 이렇게 일분, 이분 출발시간까지 20분을 남겨놓고 말았습니다. 아 그래, 하늘이라도 한번 볼껄.

어느새 남편의 얼굴도 벽지처럼 가지런히 정리되어 놓여 있습니다. 나도 그에게 그런 존재일까.

3차로를 가득 메운 출근차량 행렬들속에 우리 역시 한바탕 전쟁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각양각색의 차량들과 또 그만큼 다양한 사람들과 눈을 감아도 훤히 내다보이는 차량밖의 건물들과 가로수들.

봄인데 마음이 아려옵니다. 아스라이 아려오는 이 마력과도 같은 힘은 어느새 나를 지배하고 말았습니다. 지금까지의 생활들은 나에게 너무 많은 짐들을 가져다 주고 말았나 봅니다. 나를 지나치게 묶어 두려 했었고 또 가난하게 살고자 했으니. 가슴속에 너무 많은 얘기들 담아 두지 말아야 겠습니다. 느끼고 싶은대로 느끼고 또 얘기하고 싶은대로 얘기하고...

현실은 때론 너무나 삭막하고 건조해 보이지만 가끔 찾아드는 들새처럼 상념들은 충분한 윤활유가 되어 줍니다. 봄바람과 같이 와서 나를 뒤흔들고 사로잡고 만 기분좋은 사람의 존재.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듯 삶의 느낌들도 서로 다르겠지. 그래, 나에게 타인의 존재는 나를 비추는 거울이면서 생각을 배우고 닮게 하는 표상인듯 싶다. 굳이 그 사람을 내 곁에 두려하지 않아도, 가까이서 느끼려 하지 않아도 그 사람의 냄새가 나를 더욱 사랑하게 합니다. 나를 내버려 두지 말라고 나를 가꾸고 나에게 봄바람을 불어 넣으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