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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 후유증으로 시달리는 코알라 살처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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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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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달래기


BY 雪里 2002-05-09

어제 오후,
긴걸레를 물통에 넣고 흔들어 빨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대충 꺼내서 거꾸로 세워 놓고
뛰어와서 든 수화기안에서 그이의 목소리가 심상찮다.

"난데, 나~~~~ 사고....냈어. 자동차!"
"커...요?"

내심장 뛰는 소리가 점점 커져서 내 귀속까지
들리는것 같은데 왼손으로 내 가슴을 내가 눌러대며
최대한 안정된 목소리로 그이에게 묻는다.

"작은 접촉인데, 상대차가 워낙 고급차라서 보험처리 하고
시골와서 전화하는거야."

"그럼 됐네, 뭘! 속상해 할것 없어요.사람 다치지 않은게 어딘데."

소심한 그이 속상해 할까봐,
이왕 저질러진일 그정도면 다행이라고,
당장 돈 안들어가니 보험료 좀 올라도 괜찮다고,
이말 저말 끌어내서 그일 위로해 놓고
수화기를 내려 놓는 내 손은 떨고 있었다.

처음으로 새차를 가져온날. 꼭, 십년전.
장농면허인 그이와 나,
나는 아예 무서워서 올라 앉아 보지도 못하는데
그래도 그이 남자라고,
놀러온 조카들까지 모두 불러 태우고 집주변을 돌며
블럭드라이브를 시켜 준댄다.

그날밤 잠자리에 들며 그이, 나즈막히 꺼낸말.
"차 가로등에다 박았어."

용수철이 그리 빨리 튈까?

이불을 걷어 제끼며 반사적으로 일어난 나는,
임시남바 단차를 찌그려 오면 어쩌느냐,
보험계약서를 내일 아침 쓰기로 했는데 어떻게 처리 할거냐,
뭐가 급해서 차를 움직였느냐...

유리창이 말갛게 변하는걸 보면서까지
한잠도 못자고, 못 자게 하면서,
속이 상해서 그일 괴롭히고 있었다.
그때 내맘은 차라리
내 몸에 상처가 나는게 낫겠다 싶었으니까.

그일 이후 남편은 운전 할때마다
내얼굴을 생각하면 긴장이 된다고 했다.
어쩌면 그렇게 사색이 된 얼굴이었는지
결혼후 딱 한번 그런 얼굴을 보았다며
지금도 가끔 들먹이던 그이.

한참의 세월은,
나를 이렇게 변화 시켜 놓고 있었다.

아픈 마음은 줄여주고 싶고,
걱정거린 서로 풀어 주며,
밤늦은시각에 위장때문에 일어나
벼게 끌어안고 앉아있는 그이가 안스러워서
푹 쉬다 나오라며 가게열쇠 받아 들고 문을 나선다.

"우회전 할때 천천히 해."
미안함이 가득 담긴 그이 목소리 앞에서
상처난 차를 둘러 보고 싶은 마음을 잃고 시동을 켰다.

앞범퍼가 푹 들어가서 바퀴에 닿아
우측으로 도는걸 방해 한다.

부욱~ 부욱~
핸들을 돌릴때마다 나는 소리는,
내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되고 있다.

사람도 죽고 사는데,
그시간에 오토바이라도 튀어 들었으면 어쩔뻔 했느냐,
찬찬한 사람이 운이 나빴던거다.
그 골목을 그속도로 달린 상대차는 아마
지금쯤 보험회사와 싸우고 있을거다.

아침식탁에서 그이를 위로했던 말로
다시 나를 위로하는데,
차는 거슬리는 소리를 계속 내면서도 가게앞에 와 있다.

차를 세워놓고 한바퀴 돌아본다.
짚차여서 이정도지 싶다.

소리내던 바퀴가 많이 긁혀있다.
그이 마음을 태운 흔적이 까만 고무가루되어
범퍼에 잔뜩 붙어있다.

세월이 흐를수록
더 많이 나를 의식하며 의지하는 그이.
나이만 먹었지 내가 더 어른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