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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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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유리알 같이 생명 없는 당신의 눈동자를 보았습니다.


BY allbaro 2001-04-16

그날 유리알 같이 생명 없는 당신의 눈동자를 보았습니다.

처음에 당신이 고개를 떨구고 한참을 망서리고 망서린 끝에, 바
싹 마른 음성으로 천천히 말을 시작 하였을 때, 창 밖의 어둠 속
에선 자동차들이 엔진 소리를 밤거리에 날리며 지나갔고, 몇 마
리 인가의 비둘기 떼가 후드득 날아 올랐습니다. 늘 만나던 곳이
아닌 대공원 근처의 어정쩡한 공간을 가진 카페에서 만난 것부터
이상한 일이었고, 늘 ‘저예요. 지금 머해요? 나 안보구 싶었어요?’
의 부드러운 음성으로 시작하던 당신의 기인 전화가, 몇 초간의
암흑 같은 침묵 후에 그저 ‘우리 지금 잠깐 만날 수 있을 까요?
중간쯤 되는 곳에서요.’ 라고 짧게 달칵! 하는 소리와 함께 끊어
진 것두 짐작이 되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몇 마디 되지 않는, 그
심상치 않은 말의 의미가 무엇일까? 하고 나름대로, 지난 시간들
을 되감기 하여 다시 돌려 보구 돌려 보았어도 나는 어차피 절대
로 알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처음 당신과 만난 그날 피플II에서 몇 잔의 데킬라를 스트레이트
로 함께 하고 창 밖의 사거리를 지나며 장난감처럼 멈추었다, 빨
간 꼬리 등을 조금 어둡게 하며 다시 출발하곤 하는 자동차를 말
없이 세고 있었습니다. 백인과 흑인이 낀 라이브 4인조의 밴드가
조금 시끄럽다고 느꼈지만, 늘 일부러 좋은 자리를 골라주는 주
인과, 당신을 위한 곡이라는 흑인 연주자의 멘트로, 우리는 어쩌
구 저쩌구 말할 입장은 아니었습니다. 일부러 신청한 Ballata della
tromba 를 들려주는 퀄텟의 트럼펫 연주는 상당히 일품이었고, 나
는 만약 그 연주가 별루라고 했어도 당신과 앉아 있는 시간이라
는 것 자체가 더 없이 맘에 든 얼간이의 상태였기 때문에 따로
불평하고 싶지는 않았네요. 당신의 눈을 바라 보구 뭔가 이야기
를 하긴 해야 겠는데, 입안을 헝클어진 채 맴도는 단어들의 덩어
리로 머리가 뜨겁구 자꾸만 술잔에 손이 가던 두근 거리던 시간
이었습니다.

어쩌다 눈을 마주치면 빙긋이 우아한 웃음을 지어주는 당신 때문
에, 그 어쩔 줄 모르게 화살처럼 마구 날아오는, 서늘하고 아름다
운 입가의 미소 때문에, 이제부터 우리가 정말 사랑하게 될 것이
라는 믿음이 저절로 마음을 greenyellow로 물들여 갈 때, 나는 사
랑에 빠지는 데는 1초두 많이 긴 시간이구나. 하고 바보 같은 생
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큰일났군. 이 사랑스런 여인으로부
터 빠져나가는 것은 북극성 없이 무풍지대를 지나는 것 만큼이나
어려운 항해가 되리라는 것을 나는 그렇게 이미 예감 하고 있었
습니다. 마구 용기를 내어, 소금과 레몬을 당신의 아랫입술에 바
르고 장난처럼 가벼운 입맞춤을 한 것은 나의 의지가 99.99%였지
데킬라 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었답니다.

그렇게 살얼음을 걷듯이 시작한 우리의 만남이 팔을 끼고 걷는
발 밑의 보도 블럭 만큼이나 단단 하다구 그렇게 천천히 가슴을
물들이며 감동할 때, 그리하여 어떤 일이라도 늘 함께 할 수 있
으리라고 결심으로 마주 잡은 손에 조금 더 힘을 줄 때, 당신과
나는 언제나 조용히 미소를 먼저 띄우고 말을 꺼내던 그 습관 그
대로 ‘무슨 말이든 맘에 없는 소리는 하지 말자.’ 그렇게 약속 했
었지요. 만약 헤어지게 되더라도 미리 이야기 하고 상대방의 동
의를 얻자고… 둘 중의 누구라도 반대 한다면 절대로 헤어지지
말자고 그렇게 장난기 어린 눈빛으로 으스러지는 포옹을 하였던
날의 저녁 별은 6월초의 서늘한 밤이어서 일까요? 야외 카페의
분수대 곁에 당신과 건배하던 커다란 와인잔 때문 이었을까요?
어느 때라도 눈만 감으면 함부로 뇌리 속을 떠다니며 어지러운
방향을 제시 합니다. 이제는 없는 당신이라는 이상향에 대한 항
로요. 네 맞아요 이제 그런 건 없잖아요…

그렇게 당신이 유독 우울해 보이던 날, 뜬금 없이 이상한 장소에
서 엉거주춤 당신과 마주앉은 그 카페에서, ‘많이 생각했어요.’ 그
리고 다시 당신이 다음 말을 꺼내기 까지는, 천년 동안이나 지난
것 같은 시간이 천천히 어깨를 누르고 있었고, 불안과 초조가 먼
지처럼 복잡한 머리와 테이블 위로 쌓여 가고 있었답니다. 담뱃
불을 켜며 떨리는 손을 슬쩍 지켜 보았습니다. 나는 다섯 번인가
여섯번 만에야 겨우 담배에 불을 당길 수 있었네요. 그리곤 내게
말한 <이.제. 그.만.해.요.> 그 말에 나는 당신이 맘에 없는 소리를
한다고 생각 하고, 오히려 조금 미소를 흘렸던 기억입니다. ‘뭔가
화났나 부지? 우리 처음 싸웠네, 무조건 내가 항복, 우리 사랑스
러운 당신 무슨 이야긴데? 천천히 말 해바바. 그렇게 말하면 나
놀라잖아…’

그리고 다시 시작된 침묵의 끝에 고개를 들어 당신의 얼굴을 보
았을 때, 그 길고 하얀 목덜미를 타고 흐르던 눈물과 얼룩지기
시작하는 마스카라와 조금씩 흔들리는 당신의 어깨에 나는 당황
하였습니다. 다시 한번 당신의 눈을 들여다 보았을 때, 나는 마치
유리알 같이 생명 없는 당신의 눈동자를 보았고, 그제서야 당신
이 마음에 없는 소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마음이 사라진
것을 알 수 있었답니다. 처음 만나던 그날처럼, 당신의 눈을 바라
보구 뭔가 이야기를 하긴 해야 겠는데, 입안을 헝클어진 채, 맴도
는 단어들의 덩어리로 머리가 웅웅 거리고 손이 후들거리던 무척
이나 어지러운 저녁시간 이었습니다.

오늘 거울을 보았습니다. 당신이 열심히 발라주던 mediumblue병
의 크림로션은 그때로부터 단 한 방울도 줄지 않았고, 몇 번의
이사 끝에도 따라 다닙니다. ‘아유 눈가의 주름 좀 바바. 내가 이
걸 멋지게 펴 줄께요. 당신 나 만나서 행운인줄 아세요.’ 네 그래
요. 당신을 만나 행복 했습니다. 당신을 만나서 행운 이었습니다.
당신이 없어 눈가에 주름도 돌보지 않고 수염이 꺼칠한 한 사내
가 유리알 같은 눈동자로 나를 바라 보구 있습니다.

당신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굉장 하군요. 굉장 해요. 난 도저
히 그럴 수가 없었네요.


Nini Rosso 의 연주가 가슴을 조각 내버린 도곡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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