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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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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만남


BY 쟈스민 2002-05-06

결혼을 하여 대구에 살고 있는 동생이 오랜만에 언니네집엘 왔다.
자라면서 우린 무척이나 싸우면서 컸던 기억이 있다.
이젠 그 아이도 17개월된 아들의 엄마가 되었으며,
한 가정의 분위기를 이끌어가야할 주부가 되었다.

제부가 벌어다주는 얼마안되는 수입임에도
동생은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카톨릭 신앙을 열심히 하며 아이를 키우는일에 열심이다.

자그마한 키에 밥이라고는 반공기도 채 먹지않을 정도로 입이 짧은 그 아이는
그래도 언니라고 ... 우리 집에만 오면 그저 마음이 편안한가보다.

하루종일 집안에서 아이와 씨름하며
남편오기만을 기다리는 시간들이
가끔씩은 짜증스러울때도 있다고 했다.

"언니는 매일 직장에 나가니까 그래도 스트레스 덜 받을꺼야..." 그런다.
그러면 "나는 안팎으로 스트레스 받는다"며
지레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엄살을 부리기도 한다.

딸이 셋이지만 유독 그 아이와 난 언제부터인가 그렇게 친구처럼 지낸다.

비쩍 마른 몸으로 아이를 안기에도 버거워 보이는 그 아이가
모유를 먹이는 걸 보면서
엄마라는 존재가 얼마나 강한것인가를 실감한다.

어쩌다 우리집에 한번이라도 올라치면 안스러운 마음에
난 계속해서 이것 먹어라 저것 먹어라 하는 말만 주로 하게 된다.

서툰 살림솜씨에 어린 아이를 키우려니
초보주부, 초보엄마는
제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을 만들어 먹을 여유조차 없어 보였다.

어제는 밤늦도록 그 아이와 포도주 한잔씩을 나누며 오랜만에 실컷 수다를 떨었는데
할말이 어찌나 많은지 오늘 출근만 아니라면 밤을 샐것 같은 분위기였다.

오늘은 아이들의 운동회가 있는 날이라 새벽에 일어나 아이들의 점심도시락을 준비하려 하니
동생이 이른 잠에서 깨어나 자기가 준비할테니 언니는 더 자라고 한다.

어린시절 그렇게 필사적으로 싸우던 동생은 간데 없고,
그 아이도 이젠 나이를 먹어가는지 언니를 배려하는 마음이 이뻤다.

한참 엄마... 하며 엄마곁을 떠나지 못하는 조카를 데리고서
어떻게 도시락을 만들까 싶어
그냥 내가 다 해두려 했는데 잠귀 밝은 아이는 기어이 새벽잠을 설쳤나보다.

하루밤을 그렇게 보내고는
그냥 이대로 보내기엔 너무 아쉬움이 남는지라
하루밤을 더 묶어 가며 그간 못다한 이야기나 실컷 하자고 약속을 해 두었는데 ...

아침부터 울리는 초인종 소리...
아이들의 운동회를 보러 오신 시부모님들의 도착 ...

출근한다고 나간 언니도 없는 집안에서
얼마나 서먹서먹 했을까 ...
동생은 점심나절에 아이를 안고 오빠네 집으로 갔다고 한다.

어제 저녁 전화통화에서 분명히 아이들의 이모가 온다기에
사무실에 휴가를 못낼 사정이 있어서 아이들의 점심을 좀 먹여달라 한다고 말씀드렸는데도 ...
새벽밥 드시고 손주들 운동회 보러 오신 어른들...

당신들은 아들네 집에 오시는 것이니 아무때나 당연하다는 것인지...
전후사정을 다 듣고서도 당신들 하시고 싶은데로 하시는 분들께
나는 할말을 잃었다.

자신이 있음으로 해서 어른들 불편하실까봐서
주섬주섬 아들래미 짐 챙겨서 서둘러 오빠네로 가야만 했을
배웅해주는 언니도 없는 집을 그렇게 나서야 했을
동생이 자꾸만 마음에 걸린다.

어쩌다 마음 먹고 별러서 한번 다니러 왔는데...

여자는 결혼을 하면 정말 남의 식구가 된다더니 그 말이 맞는 것일까?

누구의 잘못은 분명 아닐진대
왜그런지 흐린날씨만큼이나 마음이 갑갑하고 그렇다.

어느새 그 아이와 난 서로 다른 성씨의 가족이 되어 살아가는 일이
몸에 맞는 옷을 걸친듯 자연스러워지고 있었던 것이리라.

뭔지모를 서글픔이 자꾸만 고개를 쳐드는 오후...

어쩌면 넘치는 사랑으로 한없이 감사해야 함에도
그 사랑이 조금쯤 버거운것은 어째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