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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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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이고 자식이었던 아침에...


BY 배꽃 2001-04-14

날 닮아 아침잠이 많은 우리아들.
오늘아침도 역시나 15분마다 오는 버스를 놓칠까봐 허둥지둥
애는 신발신고 나는 엘리베이터 누르러 뛰어나가고...
내려가는거 보고 한숨돌리며 집으로 들어와 작은녀석을 깨울려고
하는데 신발장에 고스란히 걸려있는 실내화주머니가 보였다.
순간 베란다로 뛰어나가서 보았더니
아직 버스는 오지않았고 아들은 버스정류장에 서있는게 보였다.
(우리집은 버스정류장앞동 10층)
아들의 학교는 50년도 더된 중학교라 실내화없이는 도저히
안되어서 학교로라도 갖다 줘야 할판이었다.
아무생각없이 실내화들고 슬리퍼신고 막 뛰어나갔다.
아파트주차장을 벗어나는데 막 버스가 도착하는게 보였다.
우리아들이 올라타는걸 확인하고 막 뛰었더니 버스기사아저씨가
사람들이 다 탔는데도 내가 뛰어오는걸 보고 기다려 주었다.
아침시간 1, 2분의 다급함을 알기에 얼른 아저씨한테
"죄송합니다아저씨 애가 실내화를 안가져가서"하고는
버스계단에 엉거주춤 한발을 올리고
"현찬아, 실내화 여??다, 현찬아~ 현찬아~"
그 순간 버스속의 사람들시선이 모두 나 한테로 몰렸고
버스속은 바늘이 떨어져도 들릴만큼 조용했다.
아무리 뻔뻔한 아줌마지만 저절로 얼굴이 붉어졌다.
아, 그럴땐 왜 사투리는 더 심하게 나오는지...
1초가 몇시간같은 어색함에 몸둘바를 모르겠는데
아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고, 아들의 목소리도 들리지않았다.
그래서 그 조용한 버스속에서 혼잣말처럼 "실내화 여다 두께"하며
운전기사 아저씨옆에다 두고 내렸다.

곧바로 출발하는 버스가 내 옆으로 스치듯지나갔다.
그 창으로 내 아들이 나를 보며 갔겠지...
버스 정류장에서 집으로 천천히 걸어서 오는데 눈물이 나려고 했다.
그 옛날 길에서 마주친 초라하고 지친 내 엄마를
옆에있는 사람보기 부끄러워 모른척하고 지나갔던 그 기억이
떠올라 오랫동안 가슴앓이 했던 죄책감이 다시 살아났다.
꼭 20년만에 내가 아들한테 되돌려 받는구나.
에구..
아침부터 주책떨지말고 그냥 조용히 학교로 갖다줄걸.
이녀석이 현찬이 아닌척하려고 그 실내화 끝끝내 줍지않고
그냥 내리면 어떡하지..
버스앞쪽엔 죄 여학생들 이던데...
집에 와서 커피한잔을 마시며 오후에 아들이 돌아왔을때
실내화를 들고왔던, 버리고 왔던 모른척하기로 했다.
그 이십년전에 길에서 만난 우리엄마도 그랬으니까...
그리고 그짓을한 나도 너무 길게 가슴이 아팠었으니까..
내아들이 주책없는 나땜에 그옛날 나처럼 가슴아픈건 더더욱
싫으니까..
자꾸 엄마 생각과 실내화생각에 애가 올때까지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오후 5시쯤 현관문열고 아들이 쑥 들어오는데
평소때 처럼 실내화주머니는 신발장앞에 휙 던지며 들어왔다.
얼마나 반갑고 마음이 놓이던지..
아들은 아침일을 다 잊어먹은양
"엄마, 오늘 미술실기 평가 A맞았어, 엄마가 어제 도와준 덕이야"
하며 싱글벙글 하며 말문을 열었다.
그순간 엄마에 대한 죄책감과 아들에 대한 서운함이 웃음이
되어 터져나왔다.
그래, 우리엄마도 이런나를 한점원망도 없이 용서하셨겠구나...

다시 좋아진 기분으로 저녁먹여서 학원 보내는데
신발신다말고 이녀석 갑자기,
"아참, 엄마 아침에 왜그랬어? 버스 앞쪽에 다 여학생들인데
신주머니 주우러 가니까 다 나만 쳐다봐서 쪽 팔려 죽는줄 알았어."
"야,이놈아! 그럼 대답도 안하는데 아침부터 버스안에서
혼자 떠든 엄마는 쪽 팔리는것도 모르는줄 아냐, 한번만더
없는척 하면 죽어!"
씩 웃고 가는 우리아덜..
자식노릇도 좋고, 부모 노릇도 좋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