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가 애완동물이라는 것은 나도 잘 안다.
하지만 애완동물이라고 해서 그 개를 보는 모든 사람이, 그 개를 다 사랑하고 귀여워해 줄 것이라는 생각이야말로, 얼마나 잘못된 생각인가 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아파트에서 개를 기르는 일은 원칙적으로 규칙에 위배된 사항이다.
아무리 애완용이라 해도 그것이 일반적인 개와 특별히 다르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조금의 인기척에도 막무가내로 밤낮을 잊은 채 짖어대는 개를 보면 순간적이나마 화가 치솟는다.
엘리베이터가 멈춰서고, 그렇게 사람이 나올 기색만 보여도 어김없이 짖어대는 개를 볼 때마다, 사람과 달리 사는 환경이 달라져도 그 본성을 버리지 못하는 개의 속성에 대해 생각하는 바 많다.
그것이 어쩌면 사람과 동물을 구분하는 중대한 이유같기도 해서, 사람으로 태어난 것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내가 너무 지나칠까?
그래서 아예 짖지 못하도록 성대를 제거하는 수술을 시키기도 한다는데, 그것이야말로 더 끔찍한 일 아닐까.
사람에게는 그 개가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워 함께 살고 싶은 애완동물이라 할지라도, 사람의 이기에 의해 기형적인 삶을 살아가야 하는 그 개에게는 그보다 더 큰 불행이란 없을 것이다.
요즘은 애완용 개에 대한 사치와 호사가 극에 달해, 어떤 경우에는 사람 팔자보다 더 나은 개도 있는 모양이다.
그렇다고 사람마다 취향이 다른 데, 굳이 남들이 애완동물을 요란스레 기르는 것을 내가 뭐라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처럼 개에 관한 한, 아예 처음부터 겁을 집어먹고 접근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이 세상엔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을, 그들이 알아주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는 하고 싶다.
나는 내가 나이는 기억할 수 없지만, 그만큼 아주 어린 시절에 개에게 물린 적이 있었다.
장소는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막다른 골목에서였고, 그 골목 끝까지 개를 피해 달아나다가 결국은 물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 개의 크기도 내가 어릴 때여서였는지는 몰라도, 무척 컸었다고 생각된다.
그 기억때문인지,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동물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던 것 같다.
난 원래부터가 개는 커녕, 노란 색이 귀엽다며 누구나 좋아하는 작은 병아리조차 만지지 못할 정도로 유난히 심한 편이다.
어쩌면 만지기는 커녕 가까이에 조차 가지 못하는 게, 좀 더 정확한 표현이라고나 할까.
하여튼 나에게는 동물들이 동화책이나, 동요에서나 귀엽고 사랑스런 존재지, 현실로서는 전혀 그렇지 못한, 오히려 공포스런 존재임에 분명하다.
내가 왜 그렇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도시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흔히 그렇듯, 자주 대해보지 못한 것들에 대한 원초적인 거부감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래서 나는 외부에서 마주치는, 남이 기르는 애완견에 순간적으로 놀라거나, 겁을 집어먹고 허둥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젊은 아가씨들 중엔 그것도 무슨 유행인지, 애완견에게 리본까지 묶어 치장한, 털이 긴 강아지를 가슴에다 품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
딴에는 자신의 애완동물임이 남에게 자랑스러운지, 남의 눈치도 아랑곳없이 그 애완견을 아무 곳에나 풀어놓기도 한다.
그러나 그럴 때는 자기에게나 귀엽고 깜찍스러운 강아지일 뿐, 나에게는 그저 두렵고 끔찍스런 존재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그들은 전혀 모르는 것 같다.
그래서 그렇게 풀어놓은 강아지가 내 앞으로 오거나, 얼쩡거리는 순간에는 나도 모르게 '어머!'하며 짧은 소리를 지르게 된다.
그렇지만 이런 나의 절박한 겁먹음엔 관계없이 별 대수롭지도 않게, 그저 '안 물어요!' 이 한마디로 간단히 나의 공포심을 일축하는 것 또한 그들이다.
오히려 어쩔 땐 이렇게 귀여운 강아지 한마리를 가지고, 뭘 그렇게까지 무서워하냐는 듯한 표정으로 시쿤둥하게 날 바라보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땐 나 역시도 그 개는 물론, 그 개 주인에게까지 이미 기분이 상한 뒤이기도 하다.
자신에겐 애완견일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에겐 전혀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렇게 함부로 개를 데리고 외출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임산부나 노약자에게는 애완동물이 좋지 않다.
감염의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임산부가 애완동물이 옮긴 균에 의해 기형아를 출산했다는 것이 결코 없는 이야기가 아니니까.
여러 사람이 모여드는 쇼핑 장소나 공원에서, 아무렇게나 개를 데리고 나와 심지어 풀어놓기까지 하는 몰상식은 제발 사라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유난히 애완동물에 집착하는 여성 중엔, 性的인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데, 요즘 젊은 여성들의 지나친 애완견 사랑이 혹, 나쁜 오해를 받을 빌미는 되지 않을까. 이건 물론 기우지만.
어쨋든 난 엘리베이터 안에서, 어느 애완견이 실례했는지 모를 개 오줌 흔적을 발견할 때면 불쾌감이 먼저 앞선다.
무심코 고개 숙이고 걷고 있을 때나, 지나다가 실수로 남과 부딪쳤을 때, 내 코 바로 앞에 낯선 개가 턱 버티고 있을 때의 당황스러움은 이젠 제발 피하고 싶다.
어느 때, 어느 상황에서 그런 곤혹스러움을 당하게 될까봐,사람들이 몰려드는 곳에선 으레 본능적으로 경계심이 먼저 든다.
어째서 남들은 그토록 귀엽고 깜찍스럽다는 그 애완견들이 나에겐 공포 대상인지 모르겠다.
실로 유감이 아닐 수 없다.
한 평생 생명이라고는 식물과 사람 외엔 情을 못주고 살아가게 될 내 운명이 안타깝다고나 할까.
끝으로, 애완동물이 비록 내게 두려운 존재기는 하지만,결코 내 마음에서까지 싫어하는 것은 아니라는 변명을 남기고 싶다.
단지 두려운 존재일 뿐이지, 싫지는 않다는 것이 내 진심이다.
그래서 알버트 슈바이처의 글에 공감하여, 그 짧은 글에 여기에 소개한다.
-- 어린아이였을 때 나는 내가 왜 오직 사람들만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머니가 내게 잘 자라고 밤인사를 할 때
면 나는 모든 살아 있는 존재들을 위해 내가 직접 만든 침묵의 기도를
올리곤 했다. --
칵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