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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세에서 내집까지


BY cosmos03 2002-05-01

월세에서 전세까지
남편과 저는 양가 부모님의 반대로 결혼식도 올리지 못한채 동거생활에 들어갔읍니다.
그때가 1983년도 였읍니다.
처음 시작한곳은 보증금 없는 월 25000 원 짜리의 달세 방이 었지요.
한낮에도 불을 켜지 않으면 깜깜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런 어두컴컴한 방에서
한 일년여를 살았읍니다.

그동안 부지런히 남편은 벌었지요.
남편은 택시 기사였는데 그때만해도 정식기사님이 아닌 스피아 기사였읍니다.
정식 기사님이 일을 펑크내면 남편이 펑크낸 그 자리를 때워주는 그런 사람 이었읍니다.
그러니 수입이 고정적으로 있는게 아니고 매월 들어오는 돈은 들쭉날쭉 이었읍니다.
그래도 남편은 매일을 하루도 거르지 않은채 회사에 출근을 하였읍니다.
일을 할수 있으면 하고 기사님들이 모두 출근을 하면 그냥 집으로 돌아와야하는
그런 직업이었읍니다.
많게는 십수만원에서 적게는 몇만원까지.

그러니 우린 아무런 계획을 세울수가 없었읍니다.
전세로 옮겨간다는것도 적금을 든다는것도...
그저 하루하루 벌어서는 먹기에도 바빴읍니다.
그러던 중에 회사에서 남편의 성실성을 인정해 주었는지.
정식기사로 채용을 해 주었읍니다.
오일간을 일을 하고는 하루는 쉬는...
그러니 우리에게도 월급이라는 명목이 있었고 들어오는 수입도 고정적이 되었읍니다
그에따라 우린 계획도 세울수 있었지요.
이 악물고 돈을 모았읍니다.

삼분의 이는 보리쌀이 들어간 밥을 해 먹고 연탄불도 불구멍을 거의 막아서는
꺼지지 않을 정도로만 해 놓았읍니다.
어쩌다가 행사라도 닥치면 돼지고기, 그것도 한근이 아닌 반근으로 우린 만족해야 했읍니다.
그당시는 세상에서 제일로 맛있던것이 돼지비계 조금 넣고 끓인 김치찌계가 아니엇나 싶습니다.
친정 엄마가 오셧을때는 그냥 차비 한푼도 못 드린채 그렇게 서울로 올라가시게 만들었지만
그래도 시골에서 시 어머니께서 올라오시면 그때로서는 거금일수 있는 오천원의 돈을
어머님의 괘 주머니에 넣어 드렸읍니다.

그렇게 생각지 않은 오천원이 나가면 우린 며칠은 고추장 하나로 밥을 먹어야 했지요.
그때의 꿈은 작아도 좋으니 매월 월세를 내도 되지않는 전세로 이사가는것이
우리의 쵀대 목표였고 꿈이었읍니다.
그 전세방을 얻기위해 우린 피나는 노력을 해야 했읍니다

그렇게 어느만큼의 시간이 가니 우리의 수중에는 백만원이라는 목돈을 쥘수가 있었읍니다.
온 대전시내를 샅샅이 훑고 다니니 산성동이라는 동네에 110만원짜리 전세방이 난것이 있었읍니다.
모자라는 십만원을 남편의 맏형님 곧 시 아주버니께 빌려서는
꿈에도 그리던 전세로 우린 옮길수가 있었읍니다.

처음 그집에 이사했을때만 해도 너무 기쁜 마음에 불편한것은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지만
하루, 이틀 날이 지나다 보니 불편한것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읍니다.
첫째는 화장실이 주인집을 통해 드나들었어야 하는데.
주인댁이 문을 잠그고 밤에 잠을 자러 들어가면 아픈배 움켜쥐고는
아침까지 참아야만 했읍니다.
등에서 식은땀이 나길 여러번...

그런데다 한겨울이 되니 방에 위풍이 너무심해 저녁에 떠다놓은 물이 아침이면 꽝꽝
얼어붙는 거였읍니다.
걸레를 빨아 꼭 짜 놓아도 아침이면 동태처럼 꽁꽁 얼어붙고
남편과 둘이 이야기라도 나눌라치면 입에서는 하얀 입김이 푸실거리고 나는거였읍니다.
아무것도 없이 시작한 살림이니 변변한 이불도 없었고
오메불망 전세로 옮기는 꿈만꾸다보니 방 얻는거 외엔 아무것도 살림을 장만할수 없었읍니다.

가스렌지도, 세탁기도 아무것도 없는 집에서 밥은 연탄불에 해 먹고 내의를 빨아널으면
고드름이 손바닥 길이만큼을 얼어서는 그 내의를 말리는데만해도 며칠씩을 걸렸읍니다.
얼며 녹으며 얼며 녹으며...
단벌의 내의가 우리를 심한 추위속에 떨게 했지만.
그때 우리에게는 또 다른 꿈이 있었읍니다.

조금더 열심히 벌고 절약해서는 위풍 없는 방으로 이사를 가자고요.
그렇게 그집에서 이년정도를 버티고는 우리는 정말로 위풍도 없고.
화장실도 바로 갈수 있는 근처의 300 만원짜리 전세로 늘려갈수 있었읍니다.
꿈만같았던 세월 이었읍니다.
지금 다시 그 세월을 살라고 하면 솔직히 지금은 자신이 없읍니다.
그때만 해도 젊음이 있었고 그 젊음에 맞게 열정도 있었으니까요.
힘들고 어렵게 시작한 동거생활에서 삼년만에 양가 부모님의 허락과 축복속에
결혼식도 올렷고 삼백만원 짜리 전세방으로도 갈수 있었고.
그리고 19년째인 지금은...
시내에 작은 평수의 아파트도 남편 명의로 한채 있고.
그 아파트가 시멘트 냄새난다고 전세를 주고는 변두리에 흙밟고 살수있는 주택을 전세로 얻어
이사와 지금은 딸아이 하나와 알콩달콩 잘 살고 있읍니다.


여성시대 신춘편지쑈 에서 미역국 먹은 글입니다.
휴지로 버리자니 아까워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