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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354

남자친구!


BY 소낙비 2001-04-13

이웃아줌마들과 식당에서 점심먹고 커피 마시며
수다떨고 있는데 저만치 떨어진곳에 몇사람의 남자들중
한 사람이 나를 보고 웃으며 다가왔다.

아, S 였다.
S 는 결혼전 내 남자친구다.

학교때부터 머리에 새치가 많았었는데 지금은
검은머리보다 흰머리가 훨씬 많은 중후한 중년이
되어 내게 다가와서 꺼리낌없이 손을 내밀었다.
얼떨결에 나도 손을 잠깐 잡았고,
서로 반가웠지만 옆사람들 눈치가 보여서인지
별말도 못하고 꼭 전화해 달라며
명함만 한장을 내밀고는 제 자리로 돌아갔다.

학교를 2년늦게 들어가서 또래보다 두살위인
S는 항상 어른스러웠고 진취적이었다.
친구들과 어울릴때도 내옆에만 앉으려했고,
둘이만 있고 싶어했지만 의도적으로 피했던 나를
그래도 줄기차게 따라다녔다.

축제때의 파트너는 항상 나였고,
영화나 연주회보러가면 내손을 못잡아 안달을 했었다.
매몰차게 뿌리치는 나를 그래도 좋다고 따라다녔었다.
어느 해인가 크리스마스날이 다가오자
크리스마스이브를 한번만 같이 보내면 죽어도 소원이
없겠다며 애걸(?)하는 그애에게 '죽은사람 소원도
들어주는데 산사람 소원은 못들어줄까' 며 성탄전날
날 따라 오라했다.

S는 뜻밖에 쉽게 수락하는 나를 보며
얼씨구나하며 따라왔었다.
당시 성가대원이었던 나는 자정미사에
성가를 부르러 가야했기에
S를 데리고 성당으로 갔다.
뒤를 돌아보니 S는 질렸는지 아무말도 못하고 그자리에
못박히듯 서 있었다..

그뒤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할거라고 얘기 했더니
2년만 더 기다려 달라했고 나는 솔직히 '너를 결혼상대로는
생각한적이 한번도 없었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헤어지는 자리에서 울먹이는 S를 보며 마음이
안좋았지만 어쩔수 없었다.
정말 친구 이상의 감정이 생기지 않았었다.

결혼후 그애의 이름이 적힌 카드한장이 책갈피에 끼워져 있는게
남편에게 발견되어 거의 10 여년 동안 S 는 나의 약점이 되었다.
싸우다가 밀리면 어김없이 그애의 이름을 들먹였고,
나는 아무리 친구이상이 아니었다고 강변을 해도
남편은'남녀간에 친구가 어디있냐'며 몰아세웠었다.

몇해전에 남편직장따라 고향쪽으로 오게되어
S의 처가집과 같은 아파트에 산다는 친구에게서
모교에 적을두고 있다는 소식을 간간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궂이 연락을 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었다.


대학 교수라고 적힌 명함을 보던 이웃 아줌마들은 궁금해했고
옛날 친구였다고 말하는 나에게
의미심장한 눈초리를 보냈지만 반갑다는 생각외에는
달리 다른 감정이 일지 않았다.

집에 돌아오면서 명함을 찢어버렸다. 이제는 잊혀진 일을
괜히 남편에게 들켜 또다시 분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