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벙어리 냉가슴 앓기]"야야! 다른 할매들은 딸네들도 찾아와 한 턱내고 해쌌는데 하나 밖에 없는 니는 이 어미도 안 보고잡나?" "난도 팔십이 낼 모렌데 인자 손자 손녀 뒤치닥거리도 힘에 부친다. 혼자 방 하나 얻어나가서 끓여먹다가 죽고접다." 진심인지 지나가는 말씀이신지 여직 분간을 못 해 혼자 끙끙거린다. 이 번에 처음으로 입 밖으로 뱉어시는 게 아니고 올들어 벌써 몇 번 째 졸라대시니 난감한 마음만 앞선다. 그래도 만만한 게 딸이랍시고 속내를 내비치시는데... 원래 성정이 강한 분이신지라, 출근하는 아들 내외에게 더 이상 도움이 안 되고 짐만 된다고 자탄을 하시는 건지? 한 번 해보시는 소리인지? 딱 짚어내지를 못한다. 구정에 내려온 동생이 지나가는 말로 엄마가 속을 많이 썩인다는 말을 했지만 동생댁 앞에서 그 깊은 골을 꼬치꼬치 캐물을 수도 없고 "늙으만 다시 얼라가 된다카더라!" 고 얼버무리기만 했다. 증조모, 조부모, 고모 다섯, 우리 형제들, 사랑에 드는 손님, 일꾼, 베틀일... 머슴처럼 소처럼 일만 하시다가 층층시하 죽음일 다 치루시곤 아들 직장따라 서울살이를 하셨다. 손에서 일을 놓은 적이 없는 양반이 서울 해가 너무 길다고 근처 공장에 가셔서 소일도 하시고, 식당일도 거들어셨단다. 곧 아들한테 발각이 되어 그만 두긴하셨지만... 아들 결혼하곤 둘이 오붓하게 살아라고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셨다가, 한 이태 지나 손자가 태어나 키워달라고 하는 통에 어쩔 수 없다시며 상경하신 지 벌써 십 오 년여...... 빨래에, 부엌일에, 다림질에, 청소에, 출근하는 동생내외를 대신해 살림을 도맡아 하시며 젊은 새댁도 힘들어하는 아기 둘을 키워내셨다. "아이들 어리고 내 손끝에 기력이 있을 적엔 안 그랬는데 인자 다 커고 내 몸에 병이 드니 야들이 나를 대하는 기 예전캉 다르다." "안정된 직장 있겄다, 반듯하게 살아주는 것만 해도 복이지 빌 소리를 다 하시네!" "퇴행성 관절염, 요실금, 백내장, 두통, 불면증... 양 사방 안 아픈 곳이 없다." "엄마! 연세가 많아지만 자연적으로 오는 것이지 그 건 병도 아니라예! 당뇨가 있심니꺼? 혈압이 높심니꺼?" "둘 다 집안 일엔 관심도 없지, 아침에 일찍 출근한다고 휙 나가고 나면 아 둘 학교보내기도 버겁다. 인자 채리주는 밥 먹기도 힘든 나인데......" "날 따시면 고향에 집있겠다 전지있겠다 바람이라고 쏘이고 오이소!" "아파트에 들어앉아 있으니 질을 아나? 니라도 와서 날 한 번 데려다 다고!" 당장 하루라도 할머니 안 계시면 두 조카들이 막막한데 쉽사리 그러마 대답도 못 하고 여태 혼자 벙어리 냉가슴만 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