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편 사표내고 싶어 "
아침 밥상머리에서 쏟아놓은 남편의 말입니다.
그냥 못 들은척 우적거리며 밥을 목구멍에 밀어넣습니다.
요즘들어 남편은 드러나게 방황을 합니다.
" 나 아무래도 인생을 헛 살은거 같아 "
그렇게 시작된 남편의 말은 시도, 때도 없이 입밖으로 튀어 나옵니다.
" 요즘은 그런 생각이 들어 "
" 무슨... "
" 이 나이 먹도록 내가 무얼하며 살았나~ 하는 "
" 뭘하긴 뭘해 밥먹고 똥싸고 살았지 "
심드렁하니 대답을 하는 내게 남편은 눈길한번 주더니
다시또 말을 잇습니다.
" 내 인생이 참 재미없어 "
" 누군뭐 특별나우? "
" 그래도...당신은 멋지게 살잔아 "
" 내가 뭘? "
" 친구도 많고 (아랫집 아저씨 얘기 같음 ) 술도 즐기고..."
" 당신도 친구만들고 술 마셔 "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정말로 남편이 심각해 할까봐
가볍게 남편의 말을 받습니다.
하지만 요즘들어 남편이 마음적으로 힘들어한다는걸 압니다.
아마도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탓이겠거니...
그리 생각을 해도 정도가 갈수록 심해집니다.
남편은 어느날 또 말합니다.
" 나 여행좀 갔다올께 "
" 어디루? "
" 아무대나. 발길닿는데로...바람부는데로 "
" 마음대로 하셔. "
" 돈좀줘 "
" 얼마나? "
" 한 백만원쯤... "
" 알았어. 다녀와 "
정말로 나는 남편에게 혼자만의 시간을 주고 싶었읍니다.
하지만 남편은 말뿐.
여행을 떠나려 하지는 않습니다.
" 외롭다 "
또 남편의 푸념입니다.
" 가족이 있는데도? "
" 응. 자꾸만 외로움이 느껴져 "
" 내가 뭘 어떻게 해줘야해? "
" 그냥...아무것도 "
남편은 날...조금씩 힘들게 합니다.
" 난 기계였어 "
" 무슨... "
" 돈 버는 기계 "
" 이 세상 남자들 거의가 다 그런거 아니유? "
" 글쎄. 근데 왜 나는 사람이 아닌 단지 돈버는 기계라는 생각이 들지? "
" 그럼 좀 쉬어볼래요? "
" 훌쩍 떠나고 싶어 "
이젠 슬슬 남편의 투정이 지겨워 지려합니다.
무언가 위로의 말이라도 건네야할거 같은데.
하루, 이틀도 아니고 벌써 며칠째를 저러고 있으니
자꾸만 마음 저 밑에서는 짜증이 올라옵니다.
누군뭐 특별나게 살았으며. 누군뭐 맨날 재미있어 룰루랄라~ 하는지...
그러던 남편이 오늘 아침에는 급기야 남편노릇 아빠노릇 안하고 싶답니다.
그러며 덧 붙입니다.
" 어디 깊은 산속에라도 들어가 한 일년여 푹 쉬고 싶다 "
딸아이는 놀란 눈으로 즈이아빠를 바라만 보고.
그말을 듣는 나는 참으로 기가 막혔읍니다.
해도 너무한다 싶은 마음에 불쑥 한마디 합니다.
" 가! 안말려. 당장 오늘이라도 산속이건 굴속이건 들어가 "
" 정말? "
" 웃기지마. 당신말이야 당신없으면 딸년하고 마누라 그 자리에서 굶어죽는줄 아는데
천만의 말씀이야.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고.
내몸이 가루가 되고 부서져도 딸년하나 먹여살릴수 있고
나 역시도 밥 안굶어.
툭하면 듣는소리 이젠 아주 지겨워.
당신처럼 무책임한 아빠 있으나 마나하니 가! 가버려 "
남편은 머쓱한지 피식하고는 웃습니다.
힘들고 어려운거 알지만 어느누구는 뭐 특별납니까?
사람 사는거 다 거기서 거기인데 유난히 엄살을 떠는 남편이 밉깔맞습니다.
정말로 남편이 저~엉 힘들어서 쉬고 싶다면 쉬게 해주고 싶습니다.
막말로 남편 없다~ 생각하면 되는것을.
위로받고 싶어서 한 말이겠지만 결국 남편은 내게 본전도 찾지 못한채
밥상머리에서 일어났읍니다.
남편의 투정...받아주자니 한도 없고 끝도없는거 같아
싹을 잘라버린것이지요.
무엇이 남편을 힘들게 하는지는 모르겠읍니다.
물어봐도 그냥... 없다는 말만을 하면서 사람을 자꾸만 지치게 합니다.
전화기도 꺼 놓고 사라지기도 벌써 몇번이고.
연락도 없이 새벽에 들어오기도 몇번...
암말않고 모른척 했읍니다.
때론 새벽세시에도 들어오고 네시에도 들어와도
그냥 지금오냐는 말을 하던가 아니면 잠이든척. 그렇게 모른체를 하였읍니다.
실상은 오장이 모두 뒤집어 지는대도 말이지요.
그냥 참아봅니다.
사춘기 어린아이마냥 끈임없이 투정하는 남편이 밉쌀맞아도
아내라는 이름으로 어쩔수가 없읍니다.
아이라면 팡팡 두들겨 패주기라도 하겠는데.
그래도 믿어봅니다.
얼마후면 남편은 다시금 제자리로 돌아올것을요.
사춘기가 끝나면 언제 그랫냐는듯 그렇게 돌아오듯 말입니다.
그날이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지금 이순간도 내 머리는 지끈지끈 아픕니다.
점심이나 제대로 먹고 다니는지.
아니면 어디서 차를 세워놓고 마누라와 딸을 떠날 준비를 하는지...
꺼져있을 전화를 속는셈치고 한번 해 보렵니다.
그리고 말해주렵니다.
" 당신 사표 수리할수 없어 "
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