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골에 산다.
울 신랑은 농사를 짓는다.
농사를 지으면서 농약은 치지 않는다.
흔히들 말하는 유기농,
아니 정확히 표현하면 친환경농법이라고 한다.
다 좋다.
그렇게 해서 흙도 살리고,
흙이 살아야 물도 살고 사람도 산다.
또 우리 가족이,
특히 아이들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먹거리를
만들어주는 데에야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랴.
하지만!!
한 가지, 참을 수 없는 일이 있다.
화장실-
일명 푸세식 화장실!
전에 살던 곳은 재래식이라도
그나마 깔끔하다고 봐줄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사는 집에서는
솔직히 화장실 가는 일이 거북하다.
아마도 도시에서 수세식 화장실만 쓰던 사람들은
우리 집 화장실은 못 갈 것이다.
작은 통 하나 묻어놓고
그 위는 판자로 짜서 얹어 놓았다.
필요(?)에 따라서는 그걸 통째로 들어올릴 수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나무판이 울렁거려서
혹시나 빠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더군다나 내가 필요 이상으로 넉넉한 몸매이다 보니 더욱.
다행히 아직 빠지지도 않았고
나무판이 부러지지도 않았지만, 하하.
겨우내 우리 식구들이 먹은 증거들로
작은 통이 가득 찼다.
올 봄의 이상 기후로 유난히 따뜻하더니
우리 집에선 2월에 파리가 날아다니는 기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그 때 알아봤어야 했다.
4월이 되자
우리 화장실은 도저히 눈 뜨고는 봐줄 수 없는
상황이 되고야 만 것이다.
파리에게는 나름대로 이쁠 지 새끼들,
이름하야 구데기.
이런 것은 아마 보지 못한 사람들은 상상도 못 할 것이다.
시골에서 태어나 지금껏 자란 나지만
아직까지도 벌레같은 징그러운 것들에
호들갑스럽게 반응하는 마누라에게
신랑은 그저 한번씩 퉁이나 주곤 한다.
감자를 캐다가 나오는 굼벵이,
옥수수 껍질을 벗기다 나오는 벌레,
배추를 다듬다 나오는 배추벌레,
고추를 말리다 보면 슬금슬금 기어나오는 고추벌레,
비만 오면 숨쉬러 나오는 지렁이들,.....
벌레, 벌레, 하여튼 이 벌레에는
면역도 안 생기고 적응도 절대 안 된다.
그런 나이기에
이런 화장실 상황은 거의 최악이다.
위생차 불러서 수거해 가라고 전화 한통하면 끝날 일인데
무슨 문제냐고?
휘유,
문제는 바로 신랑이다.
아까운 거름을 왜 돈 들여 퍼내느냐고
절대 안 된단다.
그러면서 자기가 어찌하지도 않은 채
사태는 이 지경까지 오고야만 것이다.
통이 차지 않아 깊은 곳에서 생기면,
다시 말해 잘 보이지만 않아도 어찌 참아보련만
바로 밑에서 꼬물거리는
수백, 수천(까지는 되는지 잘 모르겠다만)의 생명들,
흐억!
허걱!
거의 숨이 막힐 지경이다.
아니, 변비가 생길 지경인 것이다.
그래서 독하게 맘 먹었다.
신랑이 뭐라든 수거차를 부르리라 선전포고를 했다.
그리고 그날 오후,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읍내로 가서
목욕을 하고 아들 녀석 머리를 깍인 다음
시장을 좀 봐서 집에 들어오니
벌써 해가 산 너머로 숨고 어스름한 무렵이다.
저녁을 서둘러야겠다고 생각하고 차에서 내리니
남편은 아직 밭에서 돌아오지 않았는지 기척이 없다.
그런데 화장실에 불이 켜져있다.
"여보, 당신 화장실에 있어?"
대답이 없다.
가 보니 사람은 없고 통이 커다란 입을 쩍벌리고 있다.
헉! 드디어 일을 벌이고 있구나.
잠시 후 남편이 똥지게를 지고 나타난다.
요즘 시골에서도 보기 힘든 모습이다.
지게처럼 생겼지만
등쪽이 아니라 양쪽 옆으로 길게 팔이 달린 그런 모양이다.
아마도 드라마 같은 데선 물지게지는 모습이 많이 나왔을 텐데
물양동이 대신 똥통을 양쪽에 걸고 나르는 것이다.
에고, 저 무슨 사서 고생인고?
하지만 저 똥(?)고집을 누가 말릴 것인가?
짐승들 중에 제 똥을 맑은 물에 씻어내는 건
사람밖에 없다고 열변을 토하는 남편,
나중에 새 집을 지어도
절대 수세식 화장실은 짓지 않겠다는 남편,
그 때, 우리집에서 또 어떤 모습의 전쟁이 벌어질 지
아직은 상상을 할 수가 없다.
내가 적응이 되던지,
신랑이 좀 포기를 하던지,
아님 팍 따로 살어? $@#$%$%#
마지막으로 이 글에 거부반응을 보이실 분들께
죄송한 마음 전합니다.
이런 적나라한 이야기로 우아한 에세이 방을
분뇨냄새로 진동을 하게 했으니
벌을 내린다면 달게 받아야죠.ㅎㅎㅎ
그렇지만 뭐 이런 게 다 사람 사는 모습 아니겠습니까?
그저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구나 하고 봐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