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봄날이다.
하늘에선 꽃비가 내리는데 난 갈곳도 없고 시간도 없다.
청소나 해 볼까?
침대커버를 벗겨내고 큰맘먹고 장만한 보랏빛도는 새 커버를 입혔다.
덩그마니 천정을 바라보고 잠시 휴식.
그러다 장농위에 놓인, 잊고 살았던 나의 애장품 1호 발견.
그래, 저거나 뒤적여 볼까?
중학교때부터 써 왔던 일기장, 성적표, 각종 상장, 육아일기,
그리고 각종 편지들. 무작위로 써 대던 여러 장르의 글(?)들....
그땐 그랬었다.내 나이 40살이 되면
이것들을 모아 책으로 엮어보리라 했는데...
고등학교때의 일기장을 펼쳐 들었다.
그런데 뭔가 주르르 떨어져 주워보니 빛바랜 꽃잎과 나뭇잎들.
이건 뭐였지??
아! 이건 수국꽃잎, 이건 장미, 이건 목련..엄머, 네잎글로버도 있네.
기억이 새록새록 솟는다.
정들었던 친구들.
수국꽃잎이 젤 많이 들어있는 페이지를 열었다.
80년 7월 23일.
교실문을 들어서니 영숙이가 반긴다.
책상위에 "숙아, 축하한다."라는 글이 씌여있고.
영문을 몰랐다.
그러나 곧 영숙이의 축하말.
"숙아, 너 또 1등 했더라" 한다.
"정말? 이번 시험은 정말 어려웠었는데...."
조금 있으니 선생님께서 들어오셨다.
"학교에서 보조금이 조금 나왔는데 순옥이와 너 중에 줘야하는데..."
하시며 말끝을 흐리셨다.
나도 가정 형편이 무지 어려웠지만순옥인 아버지가 안계신단다.
"선생님, 순옥이 주세요.했다.
눈안 가득히 눈물이 고였지만 어쩐지 마음은 뿌듯해 졌다"
방학을 하루앞둔 어느 여름날의 일기였다.
벌써 몇년 전이가?
그때의 친구,
영숙이란 친구는 남편과 아이를 한꺼번에 잃고는
그 슬픔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했다는 말이 있었는데.
많이 궁금하고 많이 보고싶다.
그때 담임을 하셨던 선생님께서는 지금 대학에서 강의를 하시는
교수님이 되셨다.
얼마전 신문을 보다가 선생님의 기사를 읽고는 축하 인사를 드리러 전화를 했더니 20년이 넘은 지금도 우리들을 기억하셨다.
"누구누구? 키 좀작고 얼굴 동그랗고 공부 잘하는 친구..그럼 기억하지" 하신다. 넘나 반가운 말씀.
선생님의 연세는 46살이랜다. 첫 부임지셨으니.
"선생님, 그럼 우리 같이 늙어 가는거네요."하고
정말 오랜만에 소리내어 웃었던 날이었다.
그때의 생각을 하며 오늘도 난 웃었다.
웃을수 있었다.
참으로 어렵고 힘겹게 살았던 날들이었는데.
지금 그때를 회상하며 행복한 웃음을 지을수 있다.
그때의 노트를 보고 친구들의 편지,
모르는 이들과의 펜팔편지, 첫사랑 그사람과 나누던 편지들을
보며 난 지금 행복한 미소를 지을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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