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하는 일이 이제 본격적인 시즌을 맞아 눈코뜰새 없이 바쁜 사월을 보내고 있다.
그러면 그럴수록 나는 그만큼 더 많이 남편의 빈자리를 느끼며 지내야하는 시간이 늘어만 간다.
바쁜 남편을 도와주시겠다고 시아버님께서 하루 시간을 내어 주셨다고 했다.
전문적으로 늘 그 일을 하시는 분도 아니시니 서툰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몰랐다.
그런데 일을 하시다가 손가락을 좀 다치셨다고...
남편에게 전해 들었다.
남편과의 전화에서 밤늦게 그 소리를 전해 들은 터라
이튿날 전화를 하여 다치신데는 좀 어떠시냐고, 힘든일 하시느라 몸살은 안 나셨느냐고,
내 딴엔 진심에서 우러난 안부전화를 드렸다.
외손주 병간호 하러 가신 시어머님과의 전화통화에서 ...
"아들 다 소용없더라... 아버지가 다쳤는데 여사로 여기고 제 볼일 보느라고 정신없더라..."
많이 서운하셨는지 아버님은 그런 말씀을 하셨다는 말을 들었다.
내가 먼저 안부전화를 드린 사실을 모르고 계신 어머니께
사실은 이만저만하여 전화를 드린터라 말씀을 드리니
금방내 목소리가 환해지심이 느껴졌다.
당신들께서는 툭 하면 늙으면 애가 된다느니 뭐 그런말씀을 하시면서도
내심 자그마한 일에도 서운해 하시는 걸 종종 보게 된다.
아들 일 도와 주러 오셨다가 어딘가를 다치셨다고 하면
분명 염려스러운 맘이 이는 건 당연지사였겠지만,
얼마나 바빴으면 이런 저런 이야기 나눌 시간도 없었을까 ...
조금만 입장을 바꾸어 아들을 이해하실수는 없었을까?
며느리인 나도 내 입장에서만 보면 그렇게 생각하시는 자체가
서운할수도 있는 문제였다.
하지만 난 끝까지 입밖으로 그런 서운함을 비치진 아니하였건만
어머니께선 그 이야기를 아마도 큰딸, 작은딸, 큰며느리인 나에게까지
온통 다 알게 하셨다.
다 저녁때 큰 시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용건은 아버님께서 많이 서운해 하신다며 남편이 전화를 드려서 마음을 풀어드리라는 거였다.
그래서 난 이미 내가 전화를 드렸다고 하니 그럼 한거나 다름없다는 말을 한다.
그럼 도대체 이야기가 어찌 돌아가는거야...
며느리로부터 당연히 있어야 할 염려전화를 그때까지 하지 않고 있었다면
결과적으로 나만 나쁜 며느리가 될뻔(?)한 것이었다.
세상엔 마음이 있어도 쉽게 표현하지 못하고 사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이 꼭 나쁘다고 말할수만도 없는 게 아닐까 싶다.
천성적으로 상냥함을 타고 났다면 더 없이 좋겠지만,
무뚝뚝한 사람이라고 하여 아무런 생각 없이 세상을 살진 않는다는
사실을 그분들은 미처 모르시는 걸까?
살다보면 부부지간에야 자식이 이만저만하여 서운하다는 이야기를 하실수는 있겠지만
그 이야기가 자식들에게 전해졌을 때 일어나는 파급효과에 대하여 조금만 생각을 하셨더라면
훨씬 더 서로간의 관계가 매끄럽게 살아지게끔 도와주시는 게 아닐까?
때로는 좋은 마음으로 서로를 염려해 준다는 게
본의 아니게 오해를 사게 되어 떨떠름한 감정의 찌꺼기를 남기게도 하는 걸 보면서
생각없이 내뱉는 몇마디의 말이 얼마나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를 소원하게도 하는지
새삼 알게 된다.
담장안에서만 이야기해야 할 말과, 담장밖을 넘어가도 좋을 말들이
분명히 따로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시누이의 전화를 받고 보니 솔직히 기분이 적잖이 상했다.
출가외인이면 자신의 집안이나 잘 챙기면 그만일텐데
친정집일에까지 사사건건이 나서서 일일이 전화를 해 주어야 할만큼
나이값을 못하고 사는 이들도 아닌데 ...
염려도 때론 지나치면 아니하느니만 못한 듯 싶었다.
나는 문득 "시"자 들어가는 음식조차 먹지 않는다 했던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으며,
나도 정말 그러하려나 약간의 염려스러움을 숨길수가 없었다.
감정이 시키는 대로라면 당장이라도 전화를 걸어 왈가왈부 따지고 싶었지만,
결국은 또 말에 말이 꼬리를 잇고, 서로의 관계만을 서먹하게 만들게 자명했으므로
결국은 내가 참고 넘어가는쪽으로 마무리를 지어 보지만
영 개운하지 않은 걸 보니
나도 어쩔수 없는 며느리는 며느리인 모양이다.
아무리 잘 하려고 해도 결국은 거기까지가 며느리와 딸과의 한계선인지도 모를 일이다.
서로 모르는 부분이 없을 정도로 아주 친근한 사이일수록
말을 가려서 해야 한다는 가르침이 어제는 왜 그리도 내 귓전을 맴돌던지...
너무 화가 나서 저녁 운동도 거르고, 싱숭생숭한 내 마음을 내가 붙들고 있자니
참 사는게 녹녹치만은 않음을 다시금 절실히 느껴본다.
저녁늦게 축 쳐진 어깨를 하고 집에 돌아온 남편에게
무참히 나오든데로 지껄여지는 언어들의 난무를 난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 파편 다 맞으면서도 끝까지 허허 웃을수 있는 그가 바보같기도 하고,
뭔가 나보다는 한수 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슬슬 약이 오르기도 했다.
누구 말마따나 사람좋은 내가 참아야 하는 걸까?
나이 사십이 넘어서도 물가에 내어 놓은 어린아이로 사는 일은
참으로 쉽지가 않다.
정말 서운한 일이 있으면 서로 얼굴 마주하고 이야기 해도
다 알아들을 수 있는 사십이라 여겼건만
세상살이가 모두 내 마음 같지 않음이 점점 늘어만 가는 일도
나이먹어 가는 과정이라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며느리라는 자리는
언제 어디서 도마위에 오를지 모르는 준비된 생선 마냥
살아야만 하는 존재일까 정말 답답하기만 하다.
아무리 사는게 힘들어도 힘든 내색하지 않고 살아내는 것이 진정한 효일꺼라고
늘 그런 생각으로 살았었는데 ...
마음속에서 우러난 말들이 술술 나온다면 더 없이 좋겠지만,
앞으로는 마음이 담겨진 이야기가 아닌 빈말일지라도
좀더 많은 말을 하며 살아야 할런지도 모른다.
그것이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를 부드럽게 해 준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