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기를 돌리고 화분에 물을 주고
세탁기를 돌리고 부지런을 떠는데
따르릉 전화가 온다.
소정암에 깨떡 먹으러 가자.
친구의 전화다
아니야 오늘은 집구석 점검 좀 해야겠다.
화분들이 데모를 한다. 목말라 죽겠데
지난달 집들이로 보내온 부겐베리가
목이 말라 곧 무슨 일이 날걸 같은
힘겨운 모습.
아니야 너의 아파트까지 데리러 가겠다.
아이구 못 말려 친구의 고집.
소정암은 배밭이다.
배밭 가운데 자두꽃 산벗꽃 살구꽃
복사꽃 메실꽃 자목련 하얀 목련
흐드러진 개나리
둥실둥실 새싹을 틔우느라 나무들이
앞다투어 아름다움의 별천지다.
4월이 잔안하다고 했던가
그 푸름을 장식하려는 몸부림
꽃들의 난무 때문에 시야가 어지럽다.
아름답게 환희의 기쁨으로
막힌 길도 짜증이 나지않는다.
시야에 보이는 산과 나무와 들꽃이
내 마음까지 여유롭게 만드는 것일까?
4월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길을 달린다.
꽃길을 꼬불꼬불 올라가는 길
향기와 흰 옥양목의 길.
배꽃의 향연이 펼쳐진다.
와아...
배꽃은 당찬 고고하고 우아한
중전의 아름다움이라고나 할까
소정암의 점심상은 예술
녹색의 곱게 접은 머우잎
들깨가루를 친 양념장
쑥부쟁이의 된장 고추장 깨소금 무침
총각김치의 사이다의 원조인가 톡쏘는 맛
사각사각 입에서 녹아나는 배추김치
씨암탉같은 통통한 풋고추 삭인 것 무침
깻잎의 혀에 척척 감기는 맛
바지락을 넣은 배밭의 쑥국
반지르르한 검은 콩조림 달콤고소
작은 시루에 찐 검은깨와 팥을 고명한
얇고 얇은 깨팥떡.
아이구 이게 무슨 맛이여.
배가 터져도 떡 들어갈 구멍은 있다고
또 먹고 또 먹고
배를 두드리며 돗자리에 누으니
창넘어 배밭이 손짓한다.
보드라운 봄바람과 햇볕과 꽃무리들
부른 배를 안고
쑥을 캔다.
지난 해 떨어진 배잎들은
다갈색 죽음이지만 사각사각 투명하다.
낙엽을 헤치면
보송보송한 쑥이
한웅큼씩 손안에 잡힌다.
살이 통통한 하얀 쑥.
저녁밥상의 이벤트가 된다.
후루룩후루룩 맛있게 먹는 식구들의
쑥국 먹는 소리는 봄을 구가한다.
회심의 미소를 띄우며 나는
배밭의 쑥을 생각하며
녹초가 된 몸은 이른 잠을 청한다.
구태어 돈들여 별장이 필요할까?
별장같은 소정암의 하루가
접어갔지만,
산사의 공기와 물 맛
깨떡의 고소함이여
배꽃의 우아함이여
눈앞에
평화와 행복의 순간이 가슴에
잔잔히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