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른봄 집을 짓기 위해 우람한 참나무를 베 버렸다.
수십 년 자라난 나무가 전기 톱날의 우뢰와 같은 진동소리로 밑둥이 잘릴 땐 산도 신음하듯 흉측스럽게 일그러져가고 있었다.
새둥지가 우듬지 끄트머리에 소담하게 자리잡은 나무 앞에 이르렀을 땐 가슴이 조마조마 하기까지 했다.
이맘때쯤이면 분명히 알에서 부화한 아기 새들이 날개 짓하며 따스한 봄볕에 비상을 꿈꾸고 있을 텐데...
나는 산중턱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남편에게 소리소리 질렀다.
"혜린이 아빠! 그 나무는 건드리지 말아요, 아기 새들이 살고 있을 것 같아요."
동네 아저씨들은 아마도 까치집 일 테니 무익한 까치쯤은 요즈음 일부러 총사냥도 해서 없애버린다며 내 말쯤은 일언지하에 묵살을 해버리고 말았다.
언젠가 TV에 방영된 내용은인즉 전봇대에 지은 까치집은 정전의 원인이 되어 연간 막대한 전력 낭비를 초래한다니 한전에서는 잡아온 까치 한 마리 당 얼마씩 돈으로 셈쳐 주기도 한다는 것과 급속히 늘어나는 까치 때문에 농작물 피해에도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둥 대충 그런거였다
아침나절에 까치가 울면 손님이 온다는 속설로 동구 밖을 바라보며 막연하게 누군가를 가슴 설레게 기다렸던 어린 시절 길조의 까치도 세월과 함께 흉물스런 미물로 변해가고 있다.
솔직한 심정은 죽을 때 죽더라도 이런 방법은 싫었다.
무참히 쓰러지고 마는 둥지 속에선 예견했던 대로 깃털도 채 자라지 않은 새끼까치들이 큰 충격으로 인해 목이 축 널브러진 채 고스란히 죽어있었다.
'내가 대신 사과하마.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어쩔 줄 몰라 애태우다 양지 바른 곳에 꼭꼭 묻어주었다.
오르락내리락 산 주변을 맴돌며 울부짖는 어미 새의 처절한 소리를 한동안 가슴아프게 들어야만 했다.
혹시라도 광풍에 쓰러져 새집으로 덮칠까 지레 겁먹고 몇 그루 베고 난 뒷산은 훵하니 볼품없게 되 버렸다.
거목을 벤 자리에 어린 나무를 심어 울창하게 가꾸고 싶었다.
꽃동산을 만들고 싶었다.
속죄하는 마음으로 종일토록 산새가 놀다가도 훼방하지 않는 숲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며칠전 남편은 묘목을 차에 가득 실어 왔다.
비탈진 산기슭 에 자리잡은 산수유나무는 천연덕스럽게도 만개해버렸고 개나리가 군데군데 노랗게 피어나는 사이로 한 뼘 정도의 잣나무 수십 그루를 푸르게 심어놓았다.
훌쩍 커버린 아들도 연신 물을 나르며 도와주었고 붉으죽죽한 단풍나무도 산중턱까지 골고루 심었다
진달래를 어깨에 잔뜩 짊어지고 산 너머에서 내려온 남편은 뒷산 허전한곳에 진달래를 빼곡히 심었다.
정말로 꽃동산을 만들려나보다.
화초가꾸기 좋아하는 둘째삼촌이 이번에도 석류,포도나무,작약,배나무를 사가지고 와 새집의 기념식수를 한다고 거들어 주었다. 고마운 삼촌
어머님 창문 앞엔 석류와 흰목련을 우리 창 앞에는 연산홍과 라일락을 딸아이 창문 앞에는 매화와 모과나무를 아들 창 앞에는 연산홍 한 무더기와 개나리를 심고
산자락 아래로는 빙 둘러 복숭아나무, 살구나무, 사과나무, 배나무, 앵두, 개복숭아,대추나무,은행나무를 심었다.
꽃밭에 심어놓은 장미와 수선화, 흰 백합 그리고 산에서 옮겨 심은 야생화 보랏빛 각시붓꽃과 긴 목이 하늘거리는 주홍빛 원추리가 보드라운 흙 속에서 움틀 거리며 얼굴을 내밀고 있다.
언덕받이엔 달래를 군데군데 심고 뒷 뜰에는 어머님이 씀바귀 가세씀바귀 고돌배기 밥보재 취나물을 캐워와 심어놓았다.
시골에 살아서인지 우리 집 식구는 나물도 잘 먹는다.
오늘 아침에 콩가루를 묻혀 끓인 쑥국은 참 구수했다.
맛있기도 하지만 무더기로 핀 고돌 빼기의 하늘거리는 노란 꽃잎과 잘디 잔 취나물 꽃의 흰빛은 무더운 여름날 그 어느 꽃보다도 내 눈을 아찔하게 만든다.
꽃 속에 안긴 우리 집 그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가족
나무그늘에 앉아 몇 년 후 우리 집을 상상해 보았다.
하루종일 나무 심느라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은 행복으로 가득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