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385

스물 몇살과 서른 몇살


BY tnsududal 2002-04-07

스물 몇살 때는 내가 지금 스물 몇 살이지하면서 나이를 되새겨 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그때는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고, 매사가 신나고 재미있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겨를이 없었다. 내가 서른 몇살의 나이에 이르러 이런 생각을 자주 하는 것을 보면 지금 나에게 재미없게 보내는 시간이 많은 것은 아닌가 싶다.
내 나이 스물 몇살 때는 학교와 직장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지금도 생각컨데 그 당시 나는 이상한 객기도 있었고, 돼먹지 않게 당돌함도 있었다. 나는 학교를 졸업하던 무렵에 작은 주간 신문사에 취직을 하였다. 그곳에 들어가니 이제 막 시작하는 신문사라 나처럼 기자를 하겠다고 처음 달겨든 신출내기도 있었고 다른 신문사에서 근무하다 스카웃 된 선배 기자도 있었다. 게다가 구색을 맞추기 위해 이사에는 정년퇴직을 했음직한 분이 앉아있었다. 사장은 어느 지방도시에서 철강업을 하여 돈을 꽤 벌었다는 사람으로 번드레한 차림의 젊은 남자였다 그때 생각하기로는 돈이 있으니 명예도 갖고 싶어, 그러니까 돈과 명예를 고루 갖추고 싶어서 신문사를 차렸겠구나 싶었다. 하여간 이 신문사는 내가 졸업을 하기도 전에 나를 취직시켜준 좋은 직장임에는 틀림없었는데, 처음 시작하는 단계라 신출내기인 내 눈에도 많이 어설퍼 보였다. 가장 어설픈게 이사님의 말투었다. 이사님은 나와 같이 입사한 신출내기 기자들의 호칭으로 '미쓰'라는 말을 썼다. 미쓰라는 말이 듣기 싫던 차에 어느 날 이사님이 서로 화합하는 의미에서 하고 싶은 말을 해보자고 하였다. 돌아가면서 한마디씩 하는 거였는데, 나는 마침 그 문제를 거론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일어섰다.
"이사님께 드릴 말씀있습니다. 이사님은 저를 회사에서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라 생각하십니까? 저는 이사님의 커피를 타드린 적도 없고, 심부름 한 적도 없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취재하고 기사를 쓰기 위해 입사를 한 기자입니다. 아시겠어요? 기자란 말입니다. 저는 미쓰한 이라는 말을 듣기 싫습니다. 시정해 주세요."
나이가 좀 드신 분들은 입이 벌어졌고, 나의 동료들은 좋아라 박수까지 보내주었다. 이사님은 무안하셨는지 아니면 어이가 없었던지 담배만 태우고 계셨다.
나 같은 당돌한 사람이 많아서 일이 순조럽게 진행되지 않았는지 그 회사는 얼마안가 문을 닫았다. 그런 다음에도 나는 하나도 기죽지 않고 여러 회사에 이력서를 보내고 면접도 보았다. 그때마다 나는 못하는것은 못하고 잘하는것은 잘한다고 당당히 말했었다. 뭐 직장이 여기밖에 없나 하는식으로...
나는 지금 어디 이력서를 내고 싶지도 않고, 일자리를 구하러 다니고도 싶지 않다. 기껏 만들어 준 자리도 자신없다 물릴판이니 나이 스물과 서른의 차이는 천양지차라 아니할 수가 없다. 모르는게 많은 데도 모른다고 말할 용기도 없고, 잘하는게 있어도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 많겠지 하며당당히 말도 못한다. 그리고 호칭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누가 나를 아줌마라 부르든 뒷모습만 보고 아가씨라 부르는 실수를 하든 별로 게의치않는다. 어떤 이는 '아주머니'도 아니고 '아줌마'라고 불렀다고 펄펄 뛴다고 하던데 그것도 서른 후반에 들어서면 다 그러러니 하고 체념을 해버린다. 내가 지금 사업을 하고 있는 것도 남편의 반강제적인 강요가 있어서 하긴 하지만서도 이렇게 끝까지 하기 싫다고 우기는 나는 분명 스물 몇살의 여자가 아닌 것이다. 그리고 간혹 사무실에서 전화를 받다보면 호칭을 뭐라 해야 하냐고 그 쪽에서 물어올 때가 있다. 이럴 때 나는 조금 얼버무린다. "그냥 편한대로.." 하다가 그 쪽에서 "팀장님 아니면 사장님 실장님,, 뭐 그런거 있잖아요." 한다. 그럼 "저는 여기 운영자 거든요" 한다. 내가 만약 스물몇살이었다면 사장이라 불러 주세요, 했을 것이다. 나이 서른이 넘었다는 것, 어느덧 마흔에 가까워졌다는 것이 나를 꽤 주눅들게 한다. 스러져 가는 나이라 생각하면 자신감도 떨어지고, 내 자신이 두리뭉실 아무렇게나 보여져도 된다는 식이다.
내가 스물몇살에 길가에 핀 작은 풀꽃을 밟았다면 별로 개의치 않고 발로 한번 더 걷어 찼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내 발에 짓뭉개졌든지 말든지 신경 안 쓰고 가던 길을 갔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내가 길을 걷다가 누군가 밟아서 다 죽게된 풀이나 가녀린 작은 풀꽂을 보았다면 안타까이 쳐다 볼 것이다. 만물이 스러져가는 계절이 되면 나도 인생의 그 나이가 된 것 같아 가슴 아프고, 떨어지는 잎새가 나인 것 같아 같이 떨어져 버릴 것 같은 불안감이 휩싸고 도는 게 사실이고 보니 작고 보잘 것 없는 것은 특히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스러져 가는 것, 자기 색을 잃고 있는 것, 별로 시선을 끌지 못하는 작은 것... 이런 것들과 같은 선상에 있는 나를 발견하는 시점이 바로 나이 서른 몇 살 때가 아닌가 싶다. 서글프지만 이런 나의 위치를 알아야 인생에서 내가 어떤 자리에 있는지 확실히 알고 넘어가는 서른 몇살이 될 것이고, 결국 강한 마흔 몇살로 접어들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