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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외양간에서...


BY 샤인 2000-08-14

전남에 있는 시댁엘 다녀왔다.
해마다 방학이면 아이들을 데리고 시어머님을 뵈러...

우리 형님은 전형적인 농사꾼이다.
여자이면서 못하는 일이 없다.
동네분들이 하나같이 입이 닳도록 이야기를 하신다.

첫밤을 자고 난 오전
소가 새끼를 낳았단다. 혼자서...
그 순간엔 그 소식을 못듣고 나중에서야 가 봤는데
신기하다. 언제나 그런 줄 알고 있지만 짐승이 태어나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태어나자마자 일어서는 것이...
우리 사람은 어떤가
세상에 태어나 부모의 보살핌이 없으면 저혼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

그런데 송아지도 그러고 있었다.
어미소의 뒷쪽에 쪼그리고 앉아서 꼼짝도 안하고 있는 것이다.
형님이 다가가서는 간신히 일으켜 세워 어미소 곁으로 데려간다.
어미소도 제가 낳은 새끼의 존재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웅크리고 앉아 있다가 엉덩이를 한참 두드리니
그제서야 일어난다.
송아지가 젖을 먹으러 어미소 밑으로 들어가더니
자연스레 입으로 젖을 빤다.
한 삼일을 그렇게해야 어미소도 자신의 새끼를 챙긴단다.

몇마리의 소가 끈에 묶인채로 외양간에서 한가로운 오후를 보내고 있다.
파리가 득시글 거리는 곳에서...
서쪽으로 넘어가는 햇살이 눈부시도록, 터져있는 창을 통해 쏟아져들어온다.
그 무더위를 어찌 견디고 저토록 유유히 서 있을까
계속 달라붙는 파리들을 꼬리로 휘둘러 쳐내면서
나름대로 고통을 참아내고 있으리라...

예전처럼 논밭으로 끌려나가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주는 사료 먹으며 한가로이 하루를 그렇게 서서
그러다 힘들면 앉아서 보내고 있는 소
배설이나 하면서 되새김질 하면서...

아~~ 난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얼마나 행복한가
희노애락을 느낄 수 있는 감정을 가지고...
무엇이든 찾아 나서서 즐거움도 찾고 그러다 슬픔에 봉착도 하면서
그래도 내게 주어진 그런 감정의 굴곡속에 있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른다.

어제 고속버스로 돌아왔다.
차창밖으로 내다 보이는 하늘
시골에서나 서울에서나 그대로인 하늘
뭉게구름 하얗게 둥실거리며 떠 있는 높아진 하늘
녹음은 짙어져 검푸른 녹색을 한껏 자랑하고 있는데
그 속에서 느껴지는 봄과는 다른 느낌들
내 감정이 달라져 있음에도 그것 또한 다르게 보이기도 한다.
희열로 가득차 있던 봄
새 순이 막 돋아나서 연초록으로 물들이던 봄산이
그토록 아름다웠던 것은 아마도 내 마음의 상태 또한 그러했기에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돌아온 내 자리
컴앞에 앉자마자 도착해 있는 메일 한통
기대도 못하던 편지 한통에 난 그만 감정에 복받쳐 울고 말았다.
너무도 반갑고 기뻐서...
난 이런 내가 좋다.
이대로의 내가 좋다.
소가 아닌 것에 감사한다.
메일 한통에 가슴이 벅차서 얼굴을 감싸쥐고 울 수 있는 나.. 인것에 감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