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산소에 심은 잔디가,
이 비를 맞고 잘 살아 날것 같다.
오랜 가뭄으로 푸석 거리는 흙의 먼지를 재우기만 할 양으로
내리는 비는,
주룩주룩 쏟아져서 하루정도에 해갈을 원하는 내 마음을 비웃듯,
아침 눈을 떴을때부터 그대로, 꼭 그대로만 내리고 있다.
우산을 받고 지나는 사람들의 모습, 그냥 맞아가며 지나는 모습.
손님 둘이서 가게로 뛰어 들어와 일회용 우의를 주문하며 그칠것 같지 않은 하늘에대고 투털 거린다.
검은 양복차림으로 다리에 삼베를 두른걸 보니 상주인가 보다.
삼년 가뭄에도 하루만 참아 달라 한다더니....
오늘은 토요일, 그이의 날이다.
평일 오전은 항상 화실에 가는 댓가(?)로
토요일과 일요일은 온종일 그이에게 할당해 놓고도
나는 행여 하는 맘에
아침 이부자리속에서 그이에게 나긋나긋하게 한마디 건네본다.
"밖에 비가 오는데, 자기 오인리 갈거예요?
비가 와서 가봐두 아무것도 못할텐데.... 아!! 보일려 돌려 놓구
비오는거 보며 푹 쉬고 싶어라!!"
나는 그이의 속마음에 들어 앉아 있으면서도
애잔하게 내리는 비를 보며 잠시 유혹에 빠진다.
겨우 물 줘가며 심어논 연산홍이며 어리디 어린 주목들이
비를 맞아가며 발하는 생기를 보고싶고,
작년내내 덤불속에서 숨막혔던 나무들이 움틔우는 새순을
우산을 받고, 장화발을 한채로, 둘러 보고도 싶고,
꼭 한바가지 정도의 물웅덩이에서 며칠에 한번씩 보태어지는
지하수에 의지하며 살아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송사리떼들이 이렇게라도 내리는 비를 맞으면서 좋아하는 광경을 보고 싶은데...
그이는 이불속의 아늑함을 겨우 뿌리치고 일어나지만
가게는 정말 나가기 싫다고 얼굴에 써 붙이고 거실로 나온다.
"나이만 먹었지 완전히 늙은 어린애!"
식탁에 앉아 수저질하고 있는 그이의 표정에서 나는,
순간 갈등하는 그이의 마음을 훔쳐보면서
그이 얼굴에 주름만 만들어가는 시간의 흐름을 실감한다.
조금도 속도를 바꿀 줄 모르는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동행해서 나오는 차안에서, 나는 다시한번 놀부 심보가 되어
그이의 뻔한 심사를 살짝 건드려 본다.
"가게 볼래요? 오인리 갈래요? 둘중에 고르라구요!
나~~~ 쉬고 싶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