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나무와 단풍나무 밑으로 한평 남짖한 흙밭이 있다.
이사온 몇년간을 그냥 흙이아닌 흙으로 방치해 두었었다.
땅이아닌 땅 같았고 텃밭아닌 텃밭같기만한 그곳을
며칠에 나누어 흙을 고르고 돌을 골라내어 작은 텃밭으로 만들었다.
매일을, 크게 하는일 없이 집안에서 살림만 하던 내가 흙을 퍼다 나르고
호미로 돌을 골라내어 담 밖으로 던져놓고
겨우내 썩은 나뭇잎도 덧 뿌려주고 태운 재도 파 묻고 하여
드디어 오늘은 씨앗을 뿌렸다.
아욱씨, 상추씨, 그리고 울타리콩에 고추까지 심어놓고 허리를 펴니 허리가 뻐근하다.
기계도 부지런히 사용을 해야만 녹이 슬지 않는것인데
그동안 내 몸은 너무 편하고 쓰여지지 않았나보다.
그 작은 일에도 구슬같은 땀이 흐르며 헉~헉 대는 숨소리가 거친것을 보니.
아이가 아직 어린 서너살무렵부터
우리는 이백여평의 대지가 있는 집에서 살았었다.
비록 남의집 전세였지만 그 넓은 대지위엔 유실수도 많았고
( 감나무, 대추나무, 앵두나무 살구나무등 )
울타리는 무궁화꽃으로 만들어졌으며
주거공간도 지금의 집보다는 거의 두배 가까이나 되어서는
나를 잠시도 쉬게 하지 않았다.
요즘같은 계절이오면 나는 그 너른 대지위에 땅을고르고 거름을 주어서는
온갖 푸성귀를 가꾸었었다.
상추나 쑥갓은 기본으로 감자에 고구마에 고추농사까지.
정말로 농사라 칭할수 있을만큼 모든것을 내 손으로 하였었다.
거기에다가 짐승들은 또 얼마나 많았었는지...
개와 고양이는 기본으로 십 수마리
거기에 오리, 토끼 닭까지
난 작으나마 농장의 주인일수 있었다.
괭이를 들고는 땅을 팠고.
호미를 들고는 김을 맸고.
가을이면 일일이 배추벌레와 무벌레도 손으로 잡아주던.
그때는 힘이 드는줄도 몰랐다.
그냥 당연한 내 일이었고.
작으나마 뿌린 씨앗들이 열매되어, 혹은 반찬이 되어 밥상으로 올라오는 기쁨도 있었지만.
시내권에 사는 지인들이라도 오면은 한보따리씩 싸주는 재미도 쏠쏠했으니 말이다.
한결갖이 모두가 돌아가며 하는말은
" 꼭 친정에 다녀가는거 같애 "
함박 웃음들을 안고 갔으니...
그들의 웃음에, 기쁨에 힘이드는줄도 몰랐고
그때만해도 내겐 젊음이 지금보다는 더 있었다.
잡초를 호미로 긁어주다가도 허리한번 쭈~욱 펴면 그걸로 그만 이었는데...
타는 갈증에 시원한 막걸리라도 한사발 쭈~욱 들이키면 세상 부러울것이 없었는데..
재 개발로 인해 그 동네가 아파트촌이 되고.
그 시절을 그냥 추억만 하다가는 집안에 있는 작은 공간이라도 활용을 해보자 싶어
며칠간을 그렇게 난 혼자서 작업을 했던 것이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이야 아이들 소꿉놀이밖에는 안 되겠지만.
그때와는 달리 지금은 그깟 몇번의 흙 나름으로 인해
숨이차고 몇번씩 오르내리는 계단으로 인해 다리도 후들거린다.
야속한 세월 같으니..
불과 십여년의 세월만에 내 몸이 이리도 쇠약해 졌는지.
아니면 그동안의 게으름이 이만큼이나 컸는지...
가는세월, 오는백발 뉘라서 막을수 있을까?
영양제 섞은 물에 물뿌리개로 푸성귀들의 식량인 물까지 뿌려주고는
나혼자 내심 흐믓하다.
얼마 안 있으면 저것들이 종자가 아닌, 아욱이 되이 된장국을 끓여먹을 수가 있고
상추가 되어 메어져라 입 벌리고 쌈장에 싸먹을수가 있고.
방금딴 풋고추로 된장찍어 한입 먹을수도 있을테고.
쑹덩거리고 썰어넣고는 ?쩜敭載壅?끓여먹을 수가 있을테니
아~ 지금 생각만 해도 입안에 하나가득 군침이 도는데...
배시시 묻어나는 웃음을 뒤로하고 현관안으로 들어오다 바라본
배란다의 풍경은 매실나무에 맺혀있는 작은 꽃들이
비가 되어, 눈이 되어 흩뿌리고 있었다.
내릴때는 분명 꽃비 였는데 쌓인것을 바라보니 그것은 꽃눈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