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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슬픈 사모곡


BY juinju 2002-03-25

나이테 하나를 더해갈때 마다
산다는 것은 그렇게 난해 하지 않은 단순한 순리 속에 녹아 있는
보편성을 가지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엄청날것 같은 상황에 맞닥드리면,
이제 세상이 끝장 날것 같은 위기감으로 떨기도 하고
해결 방안이 없을것 같아 , 이 참에 생을 포기하고 싶다는 유혹에
빠지기도 하지만 ,
그런 경험은 누구도 생을 살다보면 만날수 있는 지극히 일상적임을
우리는 알게 된다.
이제 그럴 나이가 되었다는 것일께다.

나는 마치 남편 같은 존재의 친정 어머니를 모시고 산다.
I.M.F 이후 부터 쭉 몇년째 고생의 길을 어머니와 함께 하고 있다.
여자 혼자 사업 하는 길이 쉽지는 않아서
풍족한 생활비를 드릴수 없었다.
그래도 올해 부터는 어머니 에게 한동안 뜸하던 운동을 다시 하시라고
수영복을 사 드릴수 있게 되었다.
돌아보니 , 내가 선택 해서 하고 있는 고생을 누구에게도 탓할수 없는 것이지만,
덩달아 어머니의 작은 보금자리 마저 홀딱 없에버린 딸년이 무슨말을
하리오. 어찌되었건 빨리 회복해서 어머니의 잔주름이 더 늘지 않게해드리는 수밖에는 . . .
기다리자, 엄마 조금만 참아줘요,이제 곧 . . .
이 말을 벌써 몇년째 하고는 있지만 참아주는 어머니에게 늘 미안할뿐이다.
그런데 , 이번 주말 청도에 있는 여 동생집 을 함께 다녀 오면서
어머니가 늙어 가고 있음을 깊게 느끼며 , 지난날의 엄마를 그려 보는
계기가 되었다.

초등학교 시절
어머니는 육성 회장이 셨다. 소풍 때면 담임 선생님 도시락 ,교장 선생님 도시락 까지 챙기는 현대판 극성 어머니 셨다.
군인 이셨던 아버지의 승진을 위해 대대장 사모님 고붕도 잘 하셨고,
부하 졸병들 에게도 잘 하셔서 부대에 좋은 선물이 있으면 우리집으로 가지고 오는통에 나의 어린 시절은 풍족하게 지냈다.
나이론이 처음 나오던 시절 ,
옷 짓는 솜씨가 좋으셨던 어머니는 예쁘게 직접 원피스를 만들어 주셨고, 겨울이면 손뜨게로 505 장미사 라는 굵은 실로 쉐타를 만들어 주셔서 언제나 우린 부자 인줄 알고 살았었다.
그러나 그런 알뜰살뜰한 어머니도 남편복이 없었나보다.
퇴근후 군복을 벗고 저녁이면 때빼고 광내어 ?M은 반짝 거리는 구두와
하얀 외이셧츠와 멋진 넥타이 , 춤추러 가시고 바람피러 가시는줄
번연히 알건만 잘난 당신의 남편 이기에 , 질투도 없이 남편을
보냈다고 하시는 그 말 뒤엔 얼마나 아픔이 있으리란 짐작 밖엔 . .
그 세월도 아버지의 넘치는 끼에 . 지금도 기억 나지만
얼굴이 기미로 얼룩지고 그 30대 나이에 허리가 24인치 라는 말은
그 나이가 넘은 여자인 내가 생각해고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래서 인지 지금도 나는 다른 부인을 만나 미국에서 사시는 75세의
아버지가 용서가 되어지지 않아 전화를 안 하고 있다.
어쩌다 한번 통화를 하게 되면 "내가 얼마나 너를 사랑하고 예뻐 했는데 이렇게 섭섭하게 전화도 안하냐? "" 하신다.
첫딸 이였던 나의 어린 기억 속엔 아버지의 지극한 애정의 순간들을 잊고 있지는 않다.
무릎에 나를 앉치시고 고기를 골라 먹이 시던 아버지에 대한 향수도 나에게 남아는 있지만 같은 여자로써 엄마의 일생을 아프게 하셨다는
그 이유 하나로 용서가 안되는 것이다.

이제 내 나이가 내년 이면 50 이 된다
(끔직한 현실, 아직 나의 감성 시대는 20대 인데도 말이다.)
언제나 마음 한구석 ,이제 벌써 30년이 지난 일인데 딸로써 이해하고
받아 드려야지 하면서도 아직은 먼저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기에는
망서려 진다.
그 긴세월 어머니가 걸어야 했던 아픔의 시간들이 잊혀지지 않기에..

그 모진 세월을 견디시면서도 어머니는 당당 하셨다.
아픔의 시간이 흐른뒤 잡초처럼 강해지셨기 때문이다.
지금도 이혼이나 홀로된 여인네들이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니
그 이전의 세상살이가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편견과 홀로서기가.
딸들이 성장 하고 조금씩 부담이 덜어지면서
엄머니는 자신의 삶을 찾는 방식을 택 하셨다.
요즈음도 지적 호기심으로 모르는 것이 있으시면 바로 질문을 하신다.
새로운 용어와 현대의 방식을 그리고 자신의 삶의 성장을 위해
끊임없이 공부 하신다.
붓글씨를 하시고 영어를 배우고 . . .
그런 어머니에게 나는 나의 감정 조차 숨기지 못했다.
모두 읽어 내시니까.
"남자들은 모두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는 동물들(?) 이니까, 너두 조심해라 넌 정이 많아 상처 받기 쉬우니, 정주지 말고 심심하면 남자친구나 하나 만들어서 . . . ."
나두 혼자 산지 10년이 지나고 있으니 그 심정을 얼마나 잘 헤아리실꼬.
그런데 갑짜기 올해 부터 부쩍 건망증이 심해 지시더니.
이젠 나의 감성을 읽지 못해 내가 거짖말을 해도 알아채시질 못하신다.
언제나 혼자 있으시다가 내가 퇴근후 돌아오면 하루에 있었던 일과를 보고(?) 하시면서 말씀을 하신다.
피곤한 나는 귓등으로 말들을 흘리면서 끄덕이곤 하지만 ,난 하나도 기억을 못한다.
그래도 어머니는 말동무를 만났기에. 계속 말씀 하신다.
속으론 가끔 은 죄송함을 느끼지만 말이다.

그런 어머니 가 요즈음 부쩍 건망증이 심하시더니 그래도.. ?I찮다고
생각 했었는데, 지난 주말 함께 800 여 Km 의 장거리여행길을 함께 하면서 순간 순간 어머니와의 대화 속에서 .아차 하는 순간들이 나를
놀라게 하였다.
말은 못했지만 순간 치매? 라는 엷은 긴장감이 나의 뇌리를 스쳤다.
아직은 그냥 견딜만 하지만 언제 그 순간이 . . .온다면 ? . .
내내 돌아 오는 길에 ,운전을 하고는 있었지만 걱정으로
잊고 있던 봄이 가깝게 왔음을 알리는 도로변의 개나리와 붉게 물들어 가는 산야를 보면서도
마음은 쏴 하는 아픔이 밀려와 이렇게 토해 내고 있다.
세월을 막을 장사는 세상에 없다고 한다.
그렇지만 아직은 더 나를 지켜 주셔야 할텐데 . .딸년의 이기심일까?
말고 포근한 하늘을 바라보다가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 내생 에선 내딸로 태어나라,엄마가 해준것 보다 내가 잘해 줄테니까." 피식 웃으셨다. 나의 어머니가,
<어머니 진심 입니다. 아직은 더 건강 하게 사세요.좋은 세상이지 않습니까? 못다한 효도 해드릴수 있게 조금만 더 생생하게 계세요>
결국 이말은 내가슴 속에만 맴돌고 있었다.
"너두 늙어봐라 , 늙어 지니까 자주 음식물도 흘리게 되고 그릇도
떨어뜨리게 되고 하게 되니까,"엄마가 어제 하시던말 .
그래 나두 곧 그렇게 엄마처럼 되어 가겠지?
얼마 남지두 않았네.. 내자신을 보니 . . . . . .
어느새 나두 곧 할머니 소리를 들어야 하는 시간이 닥아오구 있구먼,
아직은, 아직은 , . . . 아직은 . . 아직은 . . . .

내 곁에 계실 동안 이라도 잘해 드려야 겠다는 생각만 절실해 온다.
이제 이별의 시간들이 곧 닥아 올것 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