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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은...22


BY 후리지아 2002-03-22

새벽녁에 잠에서 깨어 참으로 우스운 생각이 났습니다.
남편의 5주기 추도일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벌써 햇수로
6년이나 되었군요.
긴세월이라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제겐 한가지라도
빨리 잊어버리고 싶은 그러한 세월들이였습니다.

중환자 보호실에서 13日을 지키던 전 어쩌면 지루하고 긴 싸움이
하루라도 빨리 끝이 나기를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바보가 되어도 좋으니 제발 곁에 살아만 있어 달라고 기도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만약 코마상태로 제 인생의 끝날까지
함께 한다면...전 감당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매정하다 말 할지 모르지만, 사람이란 그렇습니다.
아무런 의식도 없이 누워있는 남편을 하루에 두번 면회를 하면서
일어나길 바라고, 불쌍하단 생각보다는 제가 겪는 고통과
남아 살아야 하는 이기적인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남편을 보내고, 영안실에서 보내는 동안도 힘들거나 고통스럽진
않았습니다. 잠자지 못하고, 사람들 들락거리는 것은 영안실이나
중환자실이나 마찬가지 였으니까요.
다르다면 중환자실에선 의식은 없어도 남편을 볼 수 있지만
영안실에선 영정으로 대신 해야 한다는 것 뿐이였습니다.
남편이 갔어도 제 마음에는 변한것이 아무것도 없었으니까요.

사람은 갔어도, 남아있는 사람은 밥도 먹어야 하고, 배설도 해야
하니까...화장실에 가서 거울을 보는데, 피식하고 웃음이
나오더군요(꽁트방에서 땡삐를 읽으신 분들은 아실것입니다.)
그때 전 생각을 했습니다. 사람이 가고나면 슬퍼야 하는것이
당연한 것인데, 전 왜 슬프지가 않았는지를...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 사랑하던 남편이 세상을 등지고나면
실신을 해서 병원에 입원을 하고, 한동안 깨어나지를 못하고
혼미한 정신으로 남편을 찾곤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제겐 아무것도 찾아오질 않는 것이였습니다.
이틀쯤 지나면서 부터 시어머님이나 시댁식구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하더군요, 이렇게 맹숭한 정신으로 할 것을
다하고 있는 제가 미워지기까지 했습니다.
울어보려고 해도 눈물이 나질 않는 것이였습니다.
아마도, 삼년의 투병생활을 지키며 제 나름대로 마음의 준비를
이미 마친 상태가 아니였나 생각을 했지요.

사람은 그렇습니다.
자신이 겪어보지 않으면 이론으론 알고 있지만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전, 지금도 입덧을 해 헛구역질을 하고, 아무것도
먹지 못하며 힘들어 하는 임산부들을 보면 이해를 하지 못합니다.
그들의 고통이 얼만큼인지 가늠할 수가 없기 때문이지요.
전 아이둘을 낳으면서 단 하루도 입덧이란 것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험난한 풍파를 만나는 사람들 마음은
헤아릴 수가 있습니다.
제가 수많은 종류를, 다 셀 수 없는 많은 풍파를 겪었기 때문입니다.
제 마음을 다스리듯 위로도 할 수 있고 가끔씩은 지혜도 나누어
줄 수가 있습니다. 어쩌면 입덧을 겪는 것이 훨씬 더 수월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세상일이 임신을 했을동안 잠시 들르는 입덧 같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전 지금도 가끔씩 사람들에게 제가 영안실에서 웃었던 이야길
해주곤 합니다. 그것은 소위 말하는 남자들이 장가한번 더 들게
되었다는 통속적인 의미가 아닙니다.
아니! 저도 솔직히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꿈결처럼 살아보지 못한 결혼생활이였기에 근사한 남자만나
정말 꿈처럼 행복하게 살아야지...정말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웃음도 났구요, 어이 없는 일이긴 하지만 제가 아니라
그 누구라도 그런 생각이 잠시 스치는 것은 당연하다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영안실의 웃음은...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지 못한
남편의 배신에 대한 실소였을 것입니다.
어찌되었던 하늘에서 부부의 연을 맺어 주었으니 백발이 될때까지
함께 해야 함에도, 의지력이 부족해 먼저 간다는 것은 명백한
배신이니까요...

새벽에 웃은 이유가 영안실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그때가 아니라 남편이 지금 간다고 해도 전 영안실에서 웃을것만
같습니다. 새로운 인생이란것이 아무리 계기를 만들고 싶어도
사람의 의지로는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니까요.
전, 남편이 먼저간 이유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제게, 지금까지 다 하지 못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해 보라는
알파의 의미로 말입니다.

산다는 것은...
끝이라고 생각되어질때 새로운 무엇인가가 기다리고 있다고...
그러므로, 절망하지 않고 새로운 길로 걸어가는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