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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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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하능겨?


BY 雪里 2002-03-19


"뭐하능겨?
그거 뭐할껀디?"

퉁명한 할머니의 목소리에 머쓱해져서 겨우 쪼그려 앉은
허리를 힘들게 일으켜 세웠다.

"닭이 두마리 생겨서 닭에게 주려구요, 이거 버리는거 아녔어요?"

채소 쓰레기가 한쪽으로 밀려있는 곳에서 깨끗한 배추잎 몇개를
줍고 있던 내게 허스키한 목소리의 할머니는 채근하듯 물으셨다.

"닭에게 주려면 줄기는 잘라내고 이렇게 묶어서 매달아 주능겨!"

배추잎의 부피를 늘려서 두꺼운 줄기를 손으로 뚝뚝 잘라내신후
비닐끈으로 가운데를 꾹 묶어 야무지게 배추단을 만들어 내게
건네 주시는 할머니의 손에서 비닐끈을 건네 잡으며 할머니의 손에
내시선이 멈췄다.

이미 흙과 구분이 가지 않을 만큼 색깔이 바뀐,
손등만 덮은 목장갑 아래로
까만 핏멍이 든 엄지손톱과 손가락이 보였다.

새벽부터 일어나 밭에서 뽑아 왔음직한 흙이 많이 묻어 있는 파를
다듬고 계시다가 어설픈 내 손놀림이 답답 하셨던게다.

"저도 파좀 천원어치 주세요."
꼭꼭 말아 넣은 비닐 봉투를 두세번 풀어 거스름돈을 꺼내주시는
할머니의 얼굴엔 주름살 사이사이 하얀 분가루가 그대로
끼어 있었고 아주 조금 입술도 빨개 있었다.

팔아줘서 고맙다시며 올려다보시는 할머니에게서
눈부신 봄햇살 사이로 여자가 보였다.

할머니에게도 꽃같은 처녀 시절이 있으셨겠지!
봄날이면 가슴 설레며 들녘에 봄나물을 캐러 다니던 댕기머리
길게 느렸던 곱디곱던 그시절에
할머니는 무슨 생각을 하셨었을까!

가늠할 수 없는 미래를 화려하게 생각 하셨을지도 몰라.

할아버지 만나서 자식 낳아 기르시며
꿈같은 시간도 갖어 보셨을까?

자식들 다 커서 짝 찾아주고는
소일거리 찾으시느라,
손주놈 용돈 받아 들고 기뻐하는 모습 보고 싶어서,
저리도 나와 앉아 계시는 걸거야.

건강이 허락하시니 저일도 하실 수 있겠지.
굽은 허리가 예사로 보이지 않는데도 가뿐가뿐 움직이시는걸
보면 저만큼까지 용돈 만들어 쓰고 계신 게 행복 하실지도 모르지.

분홍색 비닐끈을 손가락에 말아쥐고서
배추잎을 달랑 거리며 매달고 오는동안 내내
할머니 얼굴의 하얀 분가루가 내가슴 깊은 곳 까지
날아 들고 있었다.

눈부시게 화창한 봄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