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하러 나가면서 말끔히 집안을 정리해 두었었기 때문에, 들어서는 순간부터는 편안하게 쉬고 싶은 마음 뿐이라는 것은 아마 일하시는 주부들의 공통된 심리일거라고 생각해요.
저두 오늘 그랬지요.
날은 우중충하게 흐렸고, 몸도 찌뿌둥한 게 이런 날은 그저 라면이나 만두같은 것으로 저녁을 대충 때우고, 뒹굴거리며 쉬고 싶은 마음 뿐이었지요.
아이들과 함께 텔레비젼을 보며, 그렇게 대충 저녁을 먹고 났을 때 작은애가 시험지를 한 장 들고 나타났어요.
"엄마, 이게 분명히 답이 맞는데, 틀리다고 채점했어요."
제 딴엔 아는 문제였건만, 채점에 억울한 마음이 있었던 가 봐요.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니 받아내림을 계산하는 방법이 평범치 않더라구여.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더라는 식의 계산법 같아서 자세히 다시 설명을 해주니 그제야 고개를 주억거리며 알아듣고 빙긋이 웃으며 정답을 썼는데....
(여기까지는 참을만 했지요.)
옆에서 우리들의 상황을 주시하고 있던 큰아들이
"엄마, 저두 시험봤는데요, 좀 못 봤어요."
하는 거 아니겠어요?
6학년짜리 큰 애는 수학쪽엔 제법 두각을 나타내는 편이라 그리 걱정하지 않고 있었는데, 그 말을 듣자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 오르더라구요.
'얘들이 엄마가 집에 없을 땐, 전혀 공부를 하지 않는가보다..'
하는 걱정이 들자, 아이들에 대한 배려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지요.
시험지를 받아보자, 뻔한 문제들을 틀렸더라구요.
"이걸 몰라서 틀렸니?"
"아뇨... 검산과정을 잘못 썼구요, 이건 단위를 안 썼어요..."
분명 백점 맞을 수 있는 문제들이었는데, 실수를 한 아이는 쥐구멍이라도 있음 들어갈 표정이 되었지요.
"너 요즘 학습지 안 밀리고 잘 하고 있어?"
"........"
아이가 가져온 학습지는 지난 주 것도 완성이 되어있지 않았고, 이번 주에 했어야 할 것은 완전 백지상태였어요.
갑자기 기가 탁 막히며 할 말이 없어졌지요.
"그래.... 이젠 너희들이 하고픈대로 하며 살아라. 엄마 잔소리에 공부한다고 그게 공부가 되냐? 컴퓨터 게임 너무너무 하고 싶을텐데 굳이 참을 필요도 없이 아무때나 하고, 아무렇게나 살아라.. 엄마도 아무렇게 살란다..."
설거지를 하며, 청소를 하며 계속 궁시렁궁시렁 니들 맘대로 해라의 2절, 3절,4절이 반복되었지만 두 아들은 꿈쩍도 않고 책상에 붙어앉아 그제서야 무언가 열심히 해댔지요.
속상한 마음에 잘자란 뽀뽀도 안 해 주고, 꼬옥 안아주지도 않고, 그저 가계부쓰고, 책읽고 앉아있었더니 두 아들이 번갈아 가며
"엄마, 안녕히 주무세요...."
하고 잠자리에 들더군요.
예민한 성격의 큰아이는 맘이 편칠 않았던지 자다가 벌떡 일어났다가는, 다시 자기 침대로 돌아가 누웠어요. 잠뜻을 하는거지요. 제 맘이 편칠않게 잠이 들었으니.....
그 모습을 보자 애들 시험점수에 연연해서 잔소리를 해 댄 제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웠어요.
자는 아이 책상위엔 일기장이 놓여있었지요.
"엄마가 안 계실 때 공부를 열심히 안 한 것을 후회하고, 사실 오늘부터 열심히 하려고 마음을 먹었었다. 하지만, 엄마는 어떻게 그 사실을 아셨을까? 무척 후회스럽다. 엄마, 죄송해요... 혹시 이 일기장을 보시거든 저를 용서해 주세요..."
부모가 안 보는 사이에, 알게 모르게 저렇게 커나가는 아이들을 놓고, 까짓 점수와 수학문제 풀이에 왜 그렇게 열을 올렸을까?
그것두 자식사랑이란 이름으로 포장될 수 있는것일까?
못한 것두,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것두 무조건 용서할 수 있는 것일까?
공부를 열심히 해야하는 이유가 삶에 최선을 다하라는 것으로 가르친 것으론 부족한 것일까?
나보다 열악한 환경에서 살고 있는 아이들의 몫까지 다하라고 이른 것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일까?
깊이 잠들어 있는 아이의 볼을 만져보니 아직두 갓난아기의 살결처럼 보드랍고, 솜털이 보숭보숭하기 까지 했어요.
체격만 커다랗게 컸지 속내는 아직두 덜 자란 아이들을 놓고 너무 채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밤이 많이 깊었네요.
부모의 역할, 정말 아이들이 커나가면서 점점 더 어렵기만하고,
점점 더 큰 책임을 느껴지네요.
우리를 키워주신 이 땅의 모든 부모님들이 참 존경스러워요.
더 나쁜 환경이었고, 더 어려운 경제적 상황에서 얼마나 참고 견디시며 희생해 온 삶이었을까요?
착잡한 마음을 달래려 이렇게 글을 쓰며 하루를 접어야겠어요.
모두들 평안한 밤 되세요.
안녕히 주무세요.
* 봄날 밤에 오는 빗소리가 정말 좋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