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나절 흐린 하늘의 구름이 걷히고
아름다운 오후가 우리 앞에 펼쳐졌습니다.
사무실 식구들과 점심을 먹으러 칼국수집엘 갔습니다.
조그만 식당이었는데 앉을 자리가 없이 사람들이 빼곡히 들어차서
저마다 다들 이야기꽃을 피우느라 국수가락이 어디로 들어가는지 정신이 없었지요.
방이 하나로 터져 있어서
옆 테이블의 대화가 간간히 들려올 정도로 서로들 바짝바짝 앉아 있었던 터라
우리 사무실 식구들은 조금 나지막한 목소리로 가만가만 담소를 나누며
맛나게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모처럼 사무실 상사들을 모시고 여직원들과 함께 간 식사시간이었기에
여직원 셋이 모두 아줌마들이었지만 우린 애써 조용조용 이야기를 했어요.
식당 한켠에서는 먼저 도착한 아줌마들이 계를 하는지 왁자지껄한게
마치 싸우는 듯 목소리의 톤이 점점 높아만 갔습니다.
이웃에 사는 아줌마들, 또는 친구들끼리 모처럼 모여서 사는 이야기를
한껏 수다로 풀어버리는 듯 했습니다.
그래도 그럴 수 있다는 게 참 다행인지도 몰랐습니다.
집에서 살림만 하는 사람은 그 사람대로,
직장일과 집안일을 함께 하는 사람은 그 사람대로
다 나름대로의 스트레스를 받으며 사는게 아닌가 싶어요.
그래요... 그렇게라도 풀어버리고 다시 일상속으로 돌아가 자신의 자리를 잘 지켜낼 수 있다면
그런 시간도 꼭 필요하리라 생각되더군요.
식사도중 우리 과장님이 날 보고
"0 0 씨는 전혀 스트레스 안 받고 사는 사람 같아 ..." 그렇게 말씀을 하셨어요.
난 그냥 웃음으로 답을 대신하였지만,
그 말은 듣기에 따라서 성격이 좋을 것 같다는 칭찬이 될수도,
때론 너무 만사에 태평하고, 느긋하여 안달복달할 일이 없는 사람처럼 보여서
자칫 나태해 보인다는 말로
나는 나름대로 두가지의 해석을 해 봅니다.
요즘들어 자꾸만 살이 쪄서 얼굴 좋아졌다는 소리를 곧잘 듣는 나였기에
그 말이 가만히 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살다보면 누구나 그날의 기분에 따라 유난히 기분이 가라않는 날과,
뭔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이 기분이 경쾌한 날도 있을 것입니다.
마구 화가 나는 날도 게중엔 있을 테지요.
사람의 기분도 아마 날씨의 변화만큼이나 오락가락하는 게 아닌가 합니다.
가만히 내가 나를 관찰해 보면
사무실에서만큼은 그 감정의 기복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아마도 다른 사람들 눈에는
그냥 무던한 사람으로 비추어 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이 세상에 스트레스 안 받고 사는 여자가 있을까요?
아니 그런 사람이 있을까요?
한 사무실에 근무한다고 누구든 그 사람을 100% 다 이해한다는 건
큰 오산이 아닐까 해요.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도 어쩌면 무엇인가 쌓아두기 싫어서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조용히 풀어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나서다가
우연히 만난 친구 같은 그런 만남이 아닐까 합니다.
하루를 살면서 열마디의 말을 해서 그 중에 버려질 말들이 섞여져 나올수도 있다면
나는 아마도 서너 마디의 말만을 하며 버려지는 말들은 조금 아끼면서
살고 싶어할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모릅니다.
내 안의 깊은 생각의 바다에서 내가 때때로 얼마나 자유롭고
나름대로의 깨달음으로 몸서리치듯 즐거워 하는지를 ...
나는 말이 없습니다.
나는 그런 사람입니다.
하지만 나도 다른 사람들이 받는 만큼의 스트레스를 받으며
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다만 나는 그것을 표현함으로 인하여
옆에 있는 다른사람이 받을 스트레스를 생각하여
조금은 참고 살수도 있는
그런 사람이 아닌가 합니다.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길목에
화단 곁으로 삐죽이 고개를 내민 개나리의 꽃망울이
수줍은 얼굴로 나를 쳐다 봅니다.
그 옆에 선 산수유도 낯선 얼굴로 노오란 꽃을 피우며 말없이 바라봅니다.
우린 누구나 가끔씩은 그렇게
수줍은 얼굴로 약간은 고개숙일줄도 아는 아량의 키를
자신의 내면에 키우며 사는 것은 어떨런지요?
나로 하여 누군가 혹 스트레스트를 받고 있는 건 아닌지
주위를 한번 찬찬히 둘러 보는 시간도
꼭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