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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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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리지아 향기 *


BY 쟈스민 2002-03-11

그녀와 나
우린 둘다 글쓰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그녀는 더 이상 아마추어가 아닐 정도로 섬세하고 감성적인 시를
난 그냥 생활속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쓰는 에세이를 ...

얼굴도 모르는 사이버상의 만남이었지만
그렇듯 서로에게 이끌릴 수 있었던 건
수 많은 사람들중에 우린 보이지 않는 인연의 다리를 건너서야
그런 만남의 시간들을 가질수 있지는 않았나 싶다.

그녀를 만나기로 한 날
기다림이 가져다 준 설레임 때문이었을까?
잠 많기로 소문난 나는 새벽녘의 천둥번개 소리와
후두둑 비내리는 소리에 잠시 잠을 깼던 것도 같다.

그 와중에도 오늘만큼은 정말 화창한 하루였으면...
나는 작은 소망을 말하고 있었다.

마음속에 간직하여 둔 나의 그런 바램때문이었을까?
오후로 가면서 점점 더 빛 고운 하루로 탈바꿈되어 가는 화창한 날이었다.
바람이 다소 불긴 했어도 ...

우리의 만남을 축복하듯 햇빛이 내리는 걸음 걸음이 그저 행복했다.

그녀를 마중하기 위하여 허름한 역사주변에서 잠시 사람들의 물결에 동승하며
이곳이 정녕 내가 살고 있는 도시였던가 ...
낯선 이방인처럼 나는 그렇게 서서 그녀를 기다렸다.

사진으로만 본 얼굴 ...
아마도 내가 먼저 그녀의 얼굴을 알아보아야 했으리라...

그녀가 타고 온 기차가 도착하고 사람들의 행렬이 길게 꼬리를 문다.
그 속에서 반가운 얼굴 하나를 드디어 찾아낸다.

노오란 후리지아 꽃 한아름 안고 선 그녀의 미소가 왠지 하나도 낯설지가 않았으며,
그저 오래전부터 알던 친구를 만나듯 그런 느낌이었다.
자그맣고 앙증맞은 그녀의 딸 아이와 함께였다.

그녀도 일을 하는 사람이니 휴일엔 그저 편히 쉬고 싶었을텐데,
나를 보러 멀리서 와 준 그녀의 맘이 고마웠다.

밖에 나가 점심을 먹을까 생각도 해 보았으나,
왠지 맛은 없을지도 모르나 내가 정성껏 따뜻한 밥 한그릇을 해 주고 싶어져서
마음이 가는데로 그리하기로 한다.

그녀와 내가 그렇게 처음 만나는 사람 같지 않았던 이유는
그 이전부터 서로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함께 나누며
서로 공감하는 부분이 많아서가 아닐까 싶었다.

세상에 태어나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지는가
나는 새삼 그런 생각을 잠시 해 보았다.

내 가족, 내 친지가 아니면서도
어떤 인연으로 만났던 서로에게 좋은 마음으로
언제까지나 그 인연의 끈을 아름답게 엮어가며 산다는 일은
얼마나 흐믓하고, 가치있는 일이던가 ...

나는 그녀를 만나 이야기하는 내내 그런 생각으로 기분이 절로 맑아지고 즐거워졌다.

그저 살기에 바빠서 앞만 보고 내달리던 내 삶속에 찾아든 잠깐의 휴식같은 만남
그런 만남은 나로 하여금 너무도 축복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해 주었다.

그녀에게선 어쩌면 그렇게 사근사근하고 여성스러운 섬세함이 느껴지는지
정말 그 어느 자리에서도 사랑받을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느껴졌다.

나 보다 몇 살 아래인 그녀는 나이 또래에 비하여 생각도 무지 깊고,
무엇보다 세상을 바라다 보는 시각에 편견이 없는 것 같아서
나는 앞으로 그녀가 많이 좋아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9시간 남짓되는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휴일 하루 짧은 외출을 하기도 하면서
이런 저런 삶의 대화들을 우린 나누었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삶의 모습은 비록 아니지만
어떤 빛깔로 빚어내는가는 저마다의 자유스러운 선택이니
나는 이런 모습으로, 너는 저런 모습으로 서로를 토닥이며
어깨를 함께 부딪는 일은
힘들고 지친 세상살이에 아주 커다란 휴식이나 위안을 주지 싶다.

무한한 정보의 바다 인터넷을 접하게 되면서
나의 수첩에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숫자를 하나 둘씩 늘려가는 일은
각박한 세상에서 건져 올리는 우리들만의 보석상자를 만드는 게 아닐까 싶다.

내 가족이나 친지가 아니고서도 얼마든지 돈독한 사랑과 우정을 나누며 사는 일은
우리가 받은 삶이란 선물에 대한 작은 보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떠나 보내는 길목에 선 그녀의 하얀미소가
언제까지나 내 가슴속에
신선한 한 줌의 아침공기처럼
상큼하게 남아서 좋은 기억으로 자리할 것만 같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에도
그렇게 오랜 여운을 남겨주는 향기가 분명히 있음을
나는 어제 비로서 알게 되었다.

그녀가 남기고 간 후리지아 향기를 나는 오래도록 내 가슴속에
간직해 두련다.

후리지아를 보면 나는 아마 그녀를 떠올릴지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