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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게 늙어가는 방법 67


BY 녹차향기 2001-03-24

가게에 나가 일을 하고 있는데, 저보다 늦게 집에서 출근하려던 남편이 전활 했어요.
"새가 집에 들어왔어. 베란다 바깥 난간에 앉아있길래, 문을 열었더니 안으로 날아들어왔어. 정말 신기하지?"
남편의 목소리는 꼬옥 아이처럼 들떠 있었어요.

"예? 아니, 아파트 베란다로 새가 날아들어 왔단 말이예요?"
"그래... 그랬다니깐. 잉꼬새야."
"잉꼬새?"
"우리집에 좁쌀있어? 무척 배고파 보인다."
다용도실에 있다고 가르쳐 주고 나서는 얼마나 그 새가 궁금한지,
어떻게 그 새가 우리집에 들어오게 되었는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을 지경이었어요.

1시간후, 가게에 도착한 남편의 설명은 이랬어요.
자고 일어나 바깥을 내다보니 베란다 바깥쪽 스텐레스로 되어 있는 난간에 잉꼬새가 앉아있더래요.
기웃거리며 안을 들여다 보면서 꼭 게처럼 옆으로 걸음을 하며 왔다갔다 하며 남편을 자꾸 쳐다보는 듯 하더래요.
주황색과 초록색이 알록달록 예쁜 잉꼬새가 창 밖에 앉아있다니 정말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었겠지요?

창문을 열자 안으로 훌쩍 날아들어 온 잉꼬새 한 마리.
어디서 날아왔는지, 도대체 며칠째 저렇게 집을 잃고 다녔던 것인지,
유난히 동물에 대해 사랑이 많은 남편은 집 잃은 아이 돌보듯 자상하게 살피고 왔더라구요.

남편은
"우리가 잉꼬부부처럼 다정하게 사니깐, 잉꼬가 날아왔나봐!"
(윽!)
그 소리에 함께 일하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다 살을 비벼대고,
"대패 좀 가져와!"
하고 몸서리를 쳤지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일이 끝나고 오후에 집에 도착하자 마자, 저 또한 베란다로 달려갔지요. 새장 바깥으로 나온 새에게 푸른 하늘이 더욱 좋았겠지만, 베란다의 작은 공간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던 것인지 이쪽에서 저쪽으로 날고, 화분 여기저기에 옮겨 앉으며 귀여운 부리로 바닥을 콕콕 쪼고 있더군요.
참새만한 크기의 앙증?ㅐ?잉꼬새가 저절로 집으로 날아들어 오다니, 살면서 몇 번 겪을까 말까한 재미있는 우연.

남편은 우리가 반찬그릇으로 쓰는 예쁜 접시를 두 개를 꺼내다가 한 접시엔 물을 주었고, 한 접시엔 좁쌀을 가득 놓아두었더라구요.
'자상하기도 하지...'
작년 여름내 볕가리개로 쓰던 발을 한 구석에 돌돌 말아놓았었는데, 그 발위에 앉아 있는 잉꼬새가 정말 귀여웠어요.

이웃집 여기저기에 전화를 해 놓았더니, 한밤중에 드디어 새 임자가 나타났어요.
"아줌마, 그거 20층 초아네 새래요."
"어머어머..!!! 그랬구나. 어떻게 바깥으로 나갔대?"
밤 늦게 동네꼬마들이 신기하다고, 재밌다고 몰려왔지요.
그 잉꼬새, 스스로 자기 새장 문을 들어올렸다, 내렸다 하기도 하고, 묶어놓은 철사를 뱅뱅 돌려 잠금을 해제하고 새 장 밖을 수시로 드나들었던 모양이었어요.

환기시킨다고 베란다창문을 아주 조금 열어놓았는데, 그 틈새로 잉꼬새는 푸른 하늘을 향해 둥실 날아오른 모양이지요.
그러다 멀리는 못가고, 3층 아래에 있는 저희집으로 들어왔구요.
만약 남편이 문을 열어주지 않았더라면 또 다른 삶이 놓여있었겠지요?
어떻게 보면 다행이고, 어떻게 보면 불행일 수 있는 선택이었겠지요.

지금은 저희집 베란다에서 잠들어 있어요.
너무 영리하고 귀찮게 굴어 어쩔 수 없이 키우고 있었던 초아네서 저희집으로 얼른 새장과 모이를 가져다 주었구요.
아이들이 아주 좋아하네요.
저도 아침나절 베란다에서 들리는 새 소리가 싫지 않구요.
잉꼬키우는 방법을 좀 알아봐야겠어요.

가끔 일어나는 우연한 일이 우리의 생을 바꿀 수 있다는 거,
삶 그 어딘가에 숨어있는 오아시스를 만나는 거,
그때 그 순간에 선택한 삶이 우리의 모든 것을 변화시킬 수 있는 거,
만남과 헤어짐, 우연과 필연으로 엮어지는 거.

새장을 깨끗하게 청소하면서 하루를 시작했고, 이틀간 베란다의 자유를 누리던 새를 다시 새장안에 넣는 것으로 하루를 마감했네요.
새장안의 새...
내안에 갇혀있는 나...

잉꼬 한 마리를 우연히 얻으며 참 많은 것을 생각하네요.
모두 좋은 주말 보내세요.
전, 내일 기차타고 오빠네 놀려가려구요.
조카주려고 남대문 시장에서 예쁜 옷도 샀어요.

넉넉한 마음으로 일욜 잘 지내시구요.

안녕히 주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