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쯤의 시간들이흘렀다
친구들은 영화관으로 전람회로 음악감상실(당시엔음악감상실이유행)등으로 전전하며 각자에게 주어진 힘찬젊음을 마음껏 만끽했다
그러나 내운명의 수레바퀴는 그때 이미 모든 작동을 멈추고 말았는지도모른다
언니가 결혼3년만에 정신질환이란 병을얻어 남편과이혼하고 친정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언니로인한 고통과 괴로움을 속으로만 삭히던 엄마에게 치매가 오기시작했던것이다
평화.그것은 이제 우리집과는 너무 먼거리로 달아나고 있었다
그와중에서도 어느날 아버지께선 옆에서 고민만하던 내게 결혼을 권유하시며 좋은남자가 있으니 선을보라고 말씀하셨다
선듯 내키지는 않았지만 한번쯤 어쩌랴싶어 상대의 남자를 만나기로했다
남자는 흔쾌하게 승락하며 만족해했다
며칠후 그쪽 부모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언니와 엄마의 처지를 핑계대며 그결혼을 허락할 수 없다는 통보를해온것이다
앞을 분간할 수 없는 내인생
난 아무것도 생각하기 싫었고 생각나지도 않았다
갑자기 불어닥친 거센 비바람을 이겨낼만한 용기가 턱없이 부족했고 세상이 온통 무섭기만했다
난 조금씩 사서 모아놓은 다량의 수면제를 털어 입안에 몰아넣었다
"깨어나셨네요 다시는 그러지마세요 큰일날뻔 하셨잖아요"
내 나이와 비슷 할것같은 예쁜간호사가 내손목에 주사바늘을 빼내며 상냥하게 말했다
난 다시금 살아나고 있었던것이다
결혼이란걸 포기했다
그리고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던지고 난 작은 가방하나만을 든채 집을 나섰다
태중에서부터 교회는 다녔지만 신앙심과는 무관했던 난 승려가되어 살겠다는 결심을 굳히고 아는 여승을 찾아 길을 떠난것이다
그녀를 알게된것은 어려서 우연히 친구들과 수덕사로 여행을 갔을때
만나게 되었는데 그때 그녀는 행자생활을 마치고 막 머리를자른 초년생의 여승이었다
그녀는 영남유지의 둘째딸로 이화여대에서는 학생회장을 맡아할 정도의 실력파였는데 중도에 학교를 자퇴하고 수덕사로 왔다고했다
우리는 밤이 맞도록 그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웃는모습이 너무예뻤다
아직도 그녀외에 웃는모습이 그토록 예쁘고 아릿다운 여인을 만나보지 못했다
당시 수덕사 환희암에는 신여성으로 이름을 떨치던 김일엽씨가 청춘을 불사르고(?)승려 생활을하고 있어 많은여성들이 수덕사로 몰려들었다
그때 우리는 환희암에 올라갔다가 김일엽을 가까이서 만나볼 수 있었는데 그의 얼굴은 잘생긴 소년과 같았고 그의 몸집은 작은산을 옮겨다놓은만큼 풍채가 대단했다
어렸던 우리는 실물의 김일엽을 만나보곤 모두 실망스러운 눈치들이였다
이후에도 그녀와는 몇번의 편지를 서로 주고 받았지만 곧 잊혀진채 소식을 알지못했는데 수소문 끝에 그녀가 제주도 어느 절에 있다는걸 알게됐고 난 그녀를 찾아 부산에서 제주로 향해가는 객선에 몸을 실었다
제주도 중문면 조그마한 절에 그녀가있었다
그녀는 나를 잊지않고 반가이 맞아주었다
세월의 흐름탓인지 그녀눈가에도 어느듯 주름이 늘어있었다
그곳에는 남자승려들뿐이였고 여승이라곤 그녀혼자였다
"꼭 중이돼서 살려고 할 필요는 없어 자기인생은 어떤 모양으로 살든지 저세상에서 받는건 다 같은 분량아니겠니 중이란 아무나 되고싶다고 되는건 아니거든 이게 아니다 싶으면 언제라도 떠나는것이 절집이란다 여기서 조용히 쉬면서 생각하는 시간들을 가져보렴"
내가 그곳에서 느낀것은 세상살이가 싫고 사람들이 보기싫어 절방에나 먹물옷속에다 자기를 숨기기위해 중이 되겠다고하는것은 아주 잘못된 생각이라는거였다
불교의교리가 좋고 고행이좋고 석가의진리가 좋아야 비로소 중이 될 자격이 있다는거였다
사람들은 흔히 모든 종교는 같다고한다
산을 오를때는 모두 각자 다른방향에서 올라가지만 결국 정상에가면 같이 만나는것처럼 종내엔 똑같은것이다라고
그러나 내가 거기서 느낀것은
우리는 각기 다른 산을 오르고 있다는것이였다
모든종교 아니 흔한 기독교와 불교는 같은산을 올라가고 있는게아니였다
뭔지 확실한것은 말할 수 없었지만 이제껏 내가 알고있던 기독교와는 사뭇 다른 진리앞에서 난 더이상 머뭇거리고 싶지않았다
남자승려들만 드나드는곳에 오래 머물기도 싫었고 집생각을하면 정신이 아득했다
어느날 아침 스님이 출타중에 그녀앞으로 짧은 편지만을 남기고 난 아무 미련없이 총총 서울로 돌아오고 말았다
제주에 머문지 3개월만이였다
아버지께선 그동안 집을 팔고 셋집으로 옮겨앉으셨다
경제적으로 얼마나 많은 괴로움이 가족들을 괴롭혔을지 알것같았다
그러나 내방황은 끝나지않았고 계속 이어져만갔다
-----never en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