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374

전업주부라는게....


BY mspark0513 2002-03-08

하늘은 푸르고 잔설이 남아 있는 지금 따뜻한 이웃이 봄을 가볍게 어깨에 걸치고 들어섰다.

 

\"봄이에요. 냉이를 조금 가져왔는데 어제 밭에서 캔 거예요. 향긋하더라고요. 초고추장에 뭍쳐 드시라고요\"

 

밭의 흙을 모두 털어내 씻은 다음에 물기를 뺀 뒤 그녀는 내 앞에 놓았다.

 

얼굴에 봄빛 웃음과 봄빛 목소리로 작은 거실이 울릴 정도로 활기가 넘쳐 있었다.

 

\"제가 집사님을 무지 좋아하고 있는 거 아시지요? 요즘 좀 우울해 보여서요.\"

 

나보다 서너 살 어린 그녀는 빠른 감정의 변화를 눈치채고 다가선 것이다.

 

\"난 변덕쟁이야... 천하를 얻은 듯 행복해하다가 불행해하다가 내가 조금 그래 아직 철이 없는 게지. 별일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으니 신경 쓰지마. \"

 

\"순수하셔서 그래요.\"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곳에 이사와 서 시골냄새를 내게 많이 가져다주는 그녀였다.

가까이에 그녀의 밭이 있었고, 이곳 아파트에 이사 와서도 그녀는 부지런하여 자기 밭에 여러 가지 야채를 심어 나를 이 따끔 보채기도 하며 밭일을 시키고 싶어 하기도 했다.

한 번도 호미를 잡아 보지 않았던 나는 그녀의 밭에서 호미로 잡초들을 뽑아내기도 했고

시금치며, 고추며, 상치들로 이른 여름부터 가을까지 식단이 풍성하기도 했다.

그녀가 봄날 또 다시 기지개를 피기 시작한 거였다.

 

\"올봄엔 정말 농사를 잘 지어 보려고요 그래서 친정 언니에게 밭을 더 얻어내어서 야채 장사도 해볼까 해요.\'

 

고운 얼굴의 그녀는 기지개만 펴고 있는 게 아니라 이미 팔을 겉었고 사업(?)계획까지 세워진 상태였다. 그녀에게서 흙 냄새가 났다 어릴 때 땅 따먹기를 하기 위해 하루종일 커다란 공터에서 흙을 손에 뭍치며 놀 때의 그 흙냄새... 아련한것 같기도 하고...고향 같기도 한...

 

그녀가 부자로 느껴져 왔다.

 

난 두 아들을 입학시키고 방학 내내 의 분주함에서 익숙하게 맞이했던 집안의 고요가

어설픈 안주함으로 경쟁력 없는 일상들에 대한 무능함을 느꼈음이다.

 

머릿속 내내 계획들이 세워지고 있는데 행동엔 둔 했던 것 은 의욕상실이었다. 난 그 게으름을 아프게 즐기며 내 남편 내 아이들에게 신경질적으로 내 자리의 위치를 인정해달라고 했다

 

남편은, 새벽밥을 하기시작 한 고등학교 학부모 된 내게 지금부터가 정말 전업주부의 자리가 필요하다며 밖의 일에 대해서는 포기(?)하라고 했다.

 

포기라는 말이 내 자존심을 건드린 모양이었다.

봄이 되어 난 부업이라는 것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려고 했다.

아르바이트를 넘어 일을 가지고 싶었는데 남편은 내게 그랬다

 

\"이미 당신은 너무 오래 집에 있었고 당신이 해야 할 일이 있을 것 같니?

세상은 변했고 당신이 설자리는 만만치 않을 거야 몸으로 해야 할 일 뿐 일 텐데

난 아이들에게 소홀한 것은 정말 싫어 집안 구석구석 당신의 자리가 너무 많은데

빈 구석 보는 것도 싫고 돈을 벌려면 진작 그랬어야지...\"

 

기가 막혔다. 아이들 어릴 때는 아이들 기관 같은 곳에서

맡겨져 길러지는 게 싫다고 했었는데 유능하지도 못했던 내가 그나마 사무능력까지 잃어버린 지금 진작...이라는 말을 사용하다니...

그의 내면에 가득 찼던 맞벌이에 대한 기대감을 포기라는 단어로 나를 완전히 초라하게 한 그래서 그동안의 내 일상들을 아무렇게나 취급당한 그런 느낌...

그것은 내 안에 늘 함께 했던 열등의식 같은거 였는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난 자존심이 심하게 상했다

 

큰 평수로 이사한 남편 친구네로 집들이 갔을 때 남편이 이런 말을 했다

 

\"와이프가 그동안 벌었잖아 그 퇴직금으로 이사를 한다나봐...\"

 

\"생활비 부족분에 대해선 당신이 어떻게 꾸려야 해 내게 말하면 소용없는 거야

알지만 내가 어떻게 하겠니... 월급 고스란히 네 통장에 들어가는데

내가 술을 먹니 담배를 피니 노는 것 좋아하니..?.\"

 

\"두 녀석 만만치 않게 학비가 들어갈 거야 퇴직금 줄여가며 살아야겠지...

연금으로 두 아들 결혼시키고 퇴직금과 이 집으로 노후를 보내고...

가난한 노인이 되는 거지만 뭘 어쩌겠어... 건강만 지키라구..

그리고 진짜 가난한 이웃이 얼마나 많은데 당신의 주변이 너무 화이트라서

당신 지금 꿈 꾸는거라고 정신차려...이사람아... 돈도 쓰기 나름이라구..\"

 

그 동안 내 경제관리에 대해서도 만족하지 않았다는 말이 되었다.

 

그랬다.

그래서 난 요즘 많이 위축이 되어 있었다

봄볕이 따사롭고 우리 집을 방문한 그녀랑 호박죽을 먹었다

그리곤 난 수다처럼 남편의 말을 모두 일렀다(?)

 

나보다 어린 그녀 내게 그런다.. \"모두가 사는 게 다 그런 것 같아요...

난 오히려 남편이 그렇게 포기한다는 게 편할 것 같은데요? 듣기 나름 아닌가요?\"...

 

부끄러움...

봄볕을 안고 베란다에 놓인 탁자로 커피잔을 옮겨 마시며 한참을 수다를 떨었다.

 

 

이번 주 일이 지나면 난 계획들을 수정하여 일상의 단조로움에서 벗어날 작정이다.

삼십대의 그녀가 커다란 아름다운 이웃이 되어 또 나를 일깨워주었다.

그가 가진 사랑의 부가 내게도 전달되어 나도 그녀처럼 봄빛 웃음을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