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보다 조금 일찍 집에 오신 아버지가, 저녁 식사 초대를 받으셨다고,
우리 모두 준비하라 하셨다. 아버지와 고교 동창이신 친구분이 근처에
사시는데, 우리 가족이 왔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저녁이나 한번 같이
하자고 집으로 초대하셨단다.
미국 오신 지 3년 만에 오토바이 판매로 제법 성공하신 친구분의 집은
무척 근사했다. 오밀조밀 꾸며진 앞 정원엔 따뜻한 지방답게 3월인데도
파란 잔디와 이름모를 여러가지 꽃들이 피어있었고, 아담한 수영장과
몇가지 과일나무가 잘 어울리고 있는 뒷뜰은 우리들의 입을 자연스레
벌어지게 만들었다.
"야 ! 영화 속 집 같다 !!"
현관 문을 열고 들어서니, 우윳빛 대리석 바닥이 우리를 맞았고,
오른쪽으로 베이지색 카펫이 깔린 넓직한 거실(living room)이 눈에
들어왔다. 왼쪽으로는 방 네개가 있는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였고
계단 옆으로 돌아가선, 뒷마당이 시원스럽게 보이는 밝은 부엌이 있었다.
이층에 있는 방들은 집에 비해서 조금 작다는 느낌을 주었지만, 창문
너머 보이는 잔디와 나무들의 아름다운 모습이 방크기를 금방 잊게했다.
안방(master bedroom)은 그런대로 다른 방 보다 컸고, 한쪽편으로 있던
걸어 들어가는 큰 옷장과 화장실이 딸린 제법 큰 욕실(bathroom)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부분 조명 탓에 집이 조금 어두워 보인다는 느낌을 빼곤 아주 훌륭한
집이었다. 속으로 계속 '우린 언제 이런 집에서 살아보나?'를 뇌며
집구경을 마치니, 아주머니께서 부엌 옆에 딸려있는 식당으로 우리를
안내하셨다.
식탁에는 사진이나 그림으로나 볼 수 있었던 장면이 펼쳐져 있었다.
통채로 구워진 칠면조(turkey)가 먹음직스럽게 상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었고, 그 주위로 으깬감자(mashed potato), stuffing(칠면조
뱃속에서 함께 요리된 야채범벅), 빵, green salad, cranberry sauce
(칠면조와 같이먹는 약간 시면서 달달한 미국식 반찬) 등이 있었으며,
어른들을 위한 와인과 우리들을 위한 큰 유리병에 담긴 레몬쥬스(lemonade)가 멋진 잔들과 함께 그 큰 식탁의 남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우리가 자리에 앉자 친구분의 자녀들(고2, 중3인 두 딸과 중1인 아들)이 내려오고 곧 식사가 시작됐는데, 눈으로 보며 기가 질렸는지, 아니면
기대가 너무 컸었는지 우리 입맛에는 별로 맞지않는 식사였다.
하루종일 준비하시느라 수고하신 아주머니께는 미안한 일이였지만.
식사 후 후식으로 나온 호박파이(pumpkin pie)는 그런대로 먹을만
했는데, 내용물은 호박빛이 났으나 맛은 전혀 새로웠고, 그 후에 그것이
미국 고구마(yam)로 만들어진다는 얘기를 듣고 놀랐다.
비록 한국분이 준비하셨지만, 보기에 아주 그럴듯했던 처음의 미국식사가
우리 입에 안 맞아 별로 많이 먹지를 않았던 동생들과 나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라면을 끓여 김치와 함께 먹고 나서야 저녁을 먹은 듯 했다.
"그래 ! 우리 입에는 이게 제일이야 !!"
양식에 익숙해진 지금도
일주일에 한두번은 꼭 한식을 먹어야 하는 걸 보면,
어릴 때 익숙해진 입맛은 변하기 힘든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