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사망 시 디지털 기록을 어떻게 처리 했으면 좋겠는지 말씀해 주세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234

나의 남자


BY 아기토끼 2002-03-05

철이 들 무렵부터 항상 나의 곁을 지켜주던 남자가 있다.

난 그 분에게 안기는 것이 좋았다.

TV를 보다가 밤늦게 잠이 들거나 감기가 걸려 한참을 기침을 하고 지쳐 잠이들면

나를 양팔로 번쩍 안아서 편안하게 나의 침대까지 데려다 주고는 했다.

물론 예민한 나는 그 분의 손이 나에게 닿자마자 잠은 깼지만 계속 자는 척을 했다.

그냥 그 자체로 너무 좋았기에 그대로 있고 싶었다.

침대에 눕히고 뽀송한 이불을 반듯하게 펴서 덮어주고 커튼을 치고 불까지 꺼주고

내가 잘 잠이 들었음을 확인하고 나가시고는 했다.

아플 때면 그냥 자신의 옆자리에 눕혀놓고 밤을 새워서 나의 상태를 보셨다.

숨소리 기침소리 하나하나에 귀기울이고 순간순간 놀라기도 하면서 날 보셨다.



중학교 시절 예술학교인 탓에 집근처가 아닌지라 이 분의 보살핌을 계속되셨다.

새벽에 학교에 나를 데려다 주시고 안산에 있는 자신의 직장에 나가셨다가

퇴근하자마자 다시 날 데리러 오셨다. 왜 내가 학교 다닐적에는 지하철 공사는

그리도 많이 했는지 정말 너무나 막히는 길을 뚫고 다녀셔야 했다. 게다가

막히지 않는 곳에서는 얼마나 서둘러 오셨을런지 지금에서야 조금 상상이 된다.

왕복으로 따지면 4시간은 족히 넘는 그 길을 그렇게 아무런 말씀도 없이 다니셨다.

그 분 나와 같은 학교에 다니는 나의 동생이 졸업할 때까지 10년정도를 나의 모교에

등하교를 하셨다. 난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나를 데려다 주신다고 새벽에 깨우시는

그것만이 짜증스러웠을 뿐. 어쩌다 못오시는 때 택시를 잡아야 하는 피곤함이 싫었을 뿐.

그 분이 힘이 들것이라는 것은 생각지도 않았다.


나의 연주회나 공연에서 가장 예쁘고 좋은 꽃다발을 주는 분도 그 분이셨고

빠짐없이 나의 공연을 챙기시는 분도 그 분이셨다.



그렇게 날 지켜주던 남자가 있었다. 그러다가 내가 커버렸다고 생각한것은

그 분이 날 안아서 방에 데려다 주지 않을 때였다.

어느 날부터인지 날 흔들어 깨우셨다.

"안아야 방에 가서 자라."

아마도 많이 커버린 나를 2층에 있는 방에 데려다 주기기가 힘드셨던가보다.

난 그 분이 날 안아주지 못한다는 사실이 실망스러웠다. 별로 안무거운데.....



내가 시집을 간다고 했을 때 , 그 분은 걱정스러우면서도 너무 좋아하셨다.

그리고 "가려면 빨리 가라."그러셨다. 난 그런 말하는 그 분이 너무나 서운해서

"안그래도 빨리 갈꺼니까 걱정하지 마라, 뭐"

그리고 난 결혼을 했고 결혼식 때도 그저 싱글거리며 웃었다.

누군가 나의 결혼에 맘이 아플꺼라고는 생각못했다.

하지만 결혼 후 얼마가 지나지 않아 그 분의 이야기를 들었다.

결혼하는게 그렇게 좋으냐고 그러시면서 서운해하셨단다.

내 동생에게 너는 그렇게 빨리 시집가버리고 그러지말라고 하셨단다.

그렇게 사랑해주시고도 나에게 미안하다하신다. 못해줘서 미안하다고 .



이제야 내가 그 분을 사랑했음을 안다.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 , 내가 제일 아끼는 아버지, 그 분의 사랑을

그 길고 깊은 짝사랑을 이제야 난 깨닫는다. 그 동안 내가 왜 그랬는지.

표현이 서툰 그 경상도 남자의 사랑을 이제야 깨닫는 나는 얼마나 둔한지.

결혼을 하고 이제야 난 그 분이 날 사랑했음을 안다.

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받아만 왔던 사랑 안에서 나는 지금도 아무말 못한다.

당신을 사랑했노라고 그리고 지금도 사랑한다고 난 말하지 못한다.

말하지 않아도 알고계실까? 이렇게 무뚝뚝하기만 한 나의 사랑을 알고계실까?

조금 약해진 듯한 아버지의 음성에서 연세가 느껴진다.

이제 받은 사랑을 돌려드려야 할텐데 아직까지도 받은데만 익숙한 나는 어찌할바를 모른다.

언젠가 말할 기회가 있을까?

당신을 사랑한다고 몰라서 죄송하다고 자꾸 화만내서 정말 죄송하다고

말은 잘 못하지만 표현은 너무나도 서투르지만 앞으로 잘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버지 당신을 사랑합니다.

건강하게 아주 오래오래 제 곁에 계셔주세요.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