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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아닌 강정잔치


BY 프리즘 2001-03-21


어제는 친정아부지의 진갑날이었습니다.

혼자서 병치레하시는지라 별 선물보담도 밥한끼 좋은걸로 사드릴라고

팔공산 끝자락까정 올랐지요.

아이 셋, 어른 넷....

식도따라 넘기기 편하시라고 닭백숙이랑 닭죽이랑 시켜 눈희번득하게

뜨고 새끼들 챙겨먹이랴 내입에 집어넣으랴 혼자 바쁜척 하고있는데,

울아부지 식사도 안하시고 조용히 계시더라구요.

철없는 딸년...그나마 한소리 한답시고



"아빠 그렇게 드실라믄 담부턴 뭐 먹으러가자 안할거야요"



쩝....그소리 다하기도전에 아버진 고개를 돌리시더니만 우리한테

표시안낼라고 노력하시다가..... 기어이 구역질을 하시더만요.

그만큼 안좋으신지 몰랐지요.





이래저래 기분 꽝으로 산을 내려와선 요상한 기분으로 우울하게

집으로 들어갔더니, 시엄니 시아빠 시누이 시동서...줄줄이 거실에다

신문지 한바탕 펴놓고 강정만든다고 난립디다.

할수있습니까....팔걷어부치고 거들었지요.

엿같은 ^^ 엿퍼다가 끓이고 설탕 한바가지 부어넣고, 깨며 땅콩이며

볶은거 집어넣고, 판에다 쏟아서 밀대로 밀고, 집안에 도마란 도마,

칼이란 칼은 다 가져다가 썰고 굳히고 지랄을 다 떨고나서는 뻐근한

허리어깨 주물러가며 자리에 누웠습니다.

아부지한테 한봉지가져다 드릴라꼬 챙겨야겠다는 생각을 하다보니....

쩝...닭죽도 못드시는 분이 이노무 강정을 드실 수 있겠습니까요...

강정만들기가 끝나고서 별 개떡같은 인생론이 머리속을 헤집고

다닙디다.






그 딱딱하고 고소하고 달디단 강정...

오래묵혀 눅눅해지면 단단히 붙어있던 엿물이 흐느적거리고 그속으로

바람들고 사람들한테 괄세받으며 이리저리 치이다가 달랑 한개 내지

몇개 남으면,



"뭐 아직까지 이게 남아있어?"



하면서 냉장실로 냉동실로 내돌리다가 어느날 갑자기 생각나 봉지채

쓰레기통으로 직행하는...

인생살이가 왜이리 멋지지가 못한겁니까.

밥잘먹고 평소엔 뒷구멍서 호박씨만 까다가 오늘은 뭔일루 호기롭게

계산대앞에서 지갑 열어제끼고 부르조아 흉내좀 내보고, 저녁땐

맛있는 강정 잘만들어 아구리터지게 오물대다가 침대위에 큰 대짜로

뻗어서 한다는 생각이 인생드럽단 생각만 하다니...

도대체가 이노무 생각머리는 어찌댄게 비관적으로만 더듬이를 갖다

대는걸까요.




도닦는거까지는 바라지도 않습니다.

기냥 편하게 좋은게 좋은거려니....

나쁜건 '어? 너 나쁘냐? 알았어"

그러면서 세월가는대로 바람부는대로 편하게 살고 싶습니다.

강정 한바가지 퍼다가 여기에 휘릭~ 돌리고 싶지만 그러기엔 너무나

중노동이었기에, 만약에 먹다 남으면 골목길에 전이라도 벌려서 내

노동비 보상이나 받을랍니다.






강정장수 프리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