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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혼


BY cosmos03 2002-02-25

토요일의 결혼식을 위해 금요일에 서울에 갔다.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고속도로는 심한 정체를 보였다.
고속도로와 국도를 병행하며 도착한 서울은 오빠 두 내외외엔 아무도 없다.
결혼식이 바로 내일인데 이렇게 썰렁할수가
우리라도 잘 왔구나 싶은 마음에 늦은 저녁을 먹었다.
그 밤은 그렇게 깊어가고.

이튿날은 미장원에가서 머리를 하고
얼굴도 한껏 꽃 단장을 하고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으니
오빠와 올케언니의 감탄사가 나온다.
어여쁘다고.
한복이 예쁜것인지 아님 한복을 입은 내 모습이 이쁜것인지...
그건 내 모르겠지만
어찌되었든 기분은 좋았다.

시간의 여유를 두고 예식장에 도착을 하니.
신랑, 신부 외엔 아무도 오지 않았다.
아마도 너무 이른 시간 때문이엇으리라.
조금 있으면 식이 시작 될것이고.
그렇게 되면 신부에게 인사를 못할거 같아 드레스실로 가니
상아빛 드레스를 입은 신부의 모습이 내 눈을 부시게 만든다.
내 조카딸이지만..
너무도 곱고 예쁜 모습에 벌린 입이 다물어지지를 않는다.
" 너무 예쁘다. 정말로 곱구나 "
" 고마워 고모 "
신부는 감사의 말을 하며 내게 미소를 보낸다.

얼마의 시간후 결혼식은 진행이 되고...
신랑 입장에 이어 신부의 고운 자태가 오빠의 손에서 신랑의 손으로 넘겨간다.
어디서나 똑 같은 결혼식이 식순에 의해 진행이 되는데...
문득 해서는 아니될 말이 내 입에서 남편의 귀로 옮겨졌다.
" 첫번 결혼식엔 그냥 예쁘기만 했는데 지금은 완숙미가 더해져서는
우아하니 고상하기까지 하네 "
" 쉿! 이 사람이...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
" 듣기는... 당신이니까 얘기하는거지 "
" 그래도 그렇지 "
남편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내 손을 아프도록 꼭 쥔다.

조카딸은 지금의 결혼이 재혼이었다.
꽃다운 나이 26살에 처음 결혼을 하였다.
그러나 그 결혼은 채 6개월도 되지않아 파탄으로 가고 말았다.
처음부터 그 아이는 싫다는 것을.
양가 부모님의 성화에 어쩌면 반 강제로 결혼식을 올린것이다.
지금세상에 무슨 소리냐고 할지 몰라도...
양쪽 어른들끼리 서로 좋다고 사돈을 맺자고 한것이다.

아이는 참으로 착했었다.
그저 부모님 말씀에 순종하고 따라야하는 것으로 알았으니까.
많은 갈등을 하며 수시로 내게 도움을 청했지만..
한치건너 두치라고.
난 그 아이에게 아무런 도움을 줄수가 없었다.
조카딸일뿐 내 속으로 낳은 내 자식은 아니었으니.
그냥 방관만 할밖에...

그때 말렸어야 했다.
아무리 큰 오빠 내외분이 내 자식일에 넌 상관 말라고 했어도...
한 여자의 일생이 걸린 문제였는데.
정말로 내 자식이 아니라는 이유로 말릴수도 없이
어른이라는 이유로 함께 등을 떠 밀어댄것이다.
그것이 잘못 되었다는것을 알아차리는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 아이는 결혼식을 하고 나름대로 잘 해보려 부단히 노력했지만...
그 아이의 남편 되는 사람. 곧 나의 조카사위 되는 사람은
이미, 정을준 여자가 있었고.
그 속에서 낳은 아이도 있었다.
그 남자의 부모는 알고 있었을까?
그 사실들을?
지금도 나로서는 모르는 일이지만.
모든걸 감수하고 어차피 맺은 인연이라며 조카딸은
제 운명으로 받아드리려 하고 있었지만...
문제는 사내놈이었다.
도데체 내 조카딸에게 눈길과 마음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부모의 강요에 의해 어거지로 한결혼...
부모님 소원을 들어주었으니 이혼을하고는 먼저의 여자와 살고 싶다고 했다한다.
몹쓸놈.
욕이 저절로 나왔다.
내 자식의 남편이라면 쫓아가 멱살잡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나는 처 고모 아닌가?
조카딸의 일생이 그리도 막막하니 안되어 보였었다.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지금의 시절이 어느시절인데...

난 조카딸에게 종주먹을 대기 시작했다.
이쯤에서 네 인생을 찾으라고.
이제그만 부모님의 그늘에서 벗어나 홀로서기를 하라고...
신혼여행을 가서도 사내구실조차도 하지 않았다 하는데 더 미련둘것이 무에 있느냐고...
그만 살아라.
그집에서 나오거라.
조카딸 아이는 어느날 내게 최후통고를 해 왔다.
" 고모야 나 이혼한다 "
" 그래 잘했다 잘 생각했어 "
이혼한다는데 쌍수들고 환영하는 사람이 잘못된것인지...
아니면 그 아이의 판단을 옳다고 박수라도 쳐 주어야하는지.
판단은 정확히 서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냥 잘했다고 박수를 쳐주고 싶었었다.

그런 세월들이 벌써 7년이 지났다.
친정집으로 들어와 못다한 대학원 공부를 하며
경쟁률이 심하다는 공무원 시험에도 합격을 하여 씩씩하게 제 삶을 살고 있던 녀석이
어느날
직장동료가 괜찮다는 연락을 해왔다.
한가지 나이가 좀 많은게 흠 이라면 흠일까
다른 조건들은 모두가 좋다한다.
이미 상대의 나이는 사십을 넘었지만.
결혼은 초혼이라 했다.

일년여의 연애기간을 거쳐 올리는 결혼식.
신랑의 입은 귀 밑까지 걸려 연신 싱글벙글.
조카딸 아이도 좋은 모양이다.
얼굴하나가득 퍼지는 미소속에서 나는 느낄수 있었다.
그래! 잘 살거야.
잘 살수 있을거야.
무던히도 마음 졸였던 첫번의 결혼.
이제는 모든 옛일 잊고 힘차게 새 출발해야지.
결혼식 내내 내 머리속은 조카딸아이의 행복과 안녕을
빌고 또 빌었다.
( 얘야 남편의 사랑 듬뿍 받고. 정말로 정말로 행복하거라.
다시는 네 고운눈에 눈물같은거 보이지 말고
늘... 오늘 같이 행복하기를 고모, 정말로 빌어줄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