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늦잠에서 깨어나니
소리없이 이른 봄비가 내리고 있네요.
올 겨울 유난히 눈도 비도 소식이 없더니
부끄럼 타는 새색시처럼 이른 봄비님이
조용히 늦은 아침을 깨웠습니다.
'다녀오겠습니다'
명랑한 하이톤의 목소리로 딸아이는
피아노 학원으로 뛰듯이 달려가고
혼자 남은 나는 오랜만에 마음이 한가로와져서
마음껏 혼자인 나를 즐깁니다.
오로지 나 혼자만을 위해
얼마전 지인으로부터 선물받은
쟈스민차 한스푼을 넣고 새로 장만한
소박한 다기에 차를 준비합니다.
깊고 은은한 차 향기가 집안을 감싸 앉습니다.
요즈음 가슴 한켠 나를 힘들게 했던
감정들도 이 차 한잔에 다 녹여버리고
순하디 순한 처자의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찻잔을 어루만집니다.
따뜻한 찻잔의 온기가 얼어붙었던
내 손끝을 천천히 녹이고
이젠 차가웠던 나의 마음까지 서서히 보듬어 앉습니다.
소리없이 비 내리는 오후
문뜩,이런 생각이 듭니다.
나에겐 가까운 친구 하나가 있습니다.
그 친구는 항상 자기를 표현하려고
무던히도 몸부림을 치는 친구입니다.
항상 무언가에 목말라 하고
또 항상 갈증을 표현하려 애쓰는 친구를
곁에서 지켜보며 저는 함께 안타까워 했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은 그저 그 친구의 모습만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난, 그런 친구의 모습이 어느땐 무척 맘에 안들었나 봅니다.
왜 그다지도 발버둥을 치는지 이해 할 수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친구인 저는 그 모습을 싫어 하면서도
나도 모르는 사이 닮아 가고 있음을 부정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러면서 친구가 되는가 봅니다.
갑자기 그 친구가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