꿩의바람꽃(꽃다발을 만든 들꽃과 비슷함)
항아리엔 이름모를 하얀 들꽃과
보라색 붓꽃이 꽂혀 있습니다.
햇살이 들어와
이름모를 들꽃을 빛나게 합니다.
딸아이가 졸업을 했습니다.
외할머니가 준 돈으로 제가 꽃집에 들어가
아무도 고르지 않는 들꽃을 선택해 꽃다발을 준비했습니다.
꽃집엔 이름날린 꽃들이 양동이 가득씩 있었습니다.
화려한 장미,
화사한 튤립,
다정한 카네이션,
향기로운 후리지아,
지적인 붓꽃,
고귀한 카라...
딸아이는 아침에 학교에 가면서 그러더군요.
흔한 장미꽃이나 듈립은 싫다고...
잔잔하고 단촐하고 비싸지 않은 꽃으로 사오라고...
딸아이와 전 취미와 취향이 비슷합니다.
전 망설임없이 진열장 뒷쪽에 있는
하얀 들꽃을 지적했습니다.
너무 하얗기만 해서
붓꽃 다섯송이를 섞어서 꽃다발을 만들어 달라고 했습니다.
꽃집 아줌마가 그러더군요.
"들꽃을 좋아하시는군요?"
딸아이는 꽃다발을 받아들더니 맘에 든다고 들꽃처럼 하얗게 웃었습니다
또 감사했습니다.
3년동안 별 탈없이 중학교를 마친거에 대해 감사했고
비싸지 않지만 소박한 꽃다발을 반갑게 맞아 주어 감사했습니다.
가슴 한 켠이 저렸습니다.
딸아이의 교실도 처음 와 보고
딸아이의 담임 선생님도 오늘 처음 보았습니다.
한번쯤 딸아이의 학교를 방문했어야 했고
담임 선생님의 얼굴을 뵈어야 했는데...
제가 이렇답니다.
낯선 사람만나기를 꺼려하고
잘 다니겠지 하고 태평하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담임 선생님을 뵙지 않은 건.
딸아이가 안 와도 된다고 오지말라고 해서 입니다.
쓸데없이 학교에 오는게 싫다고 하더군요.
사춘기라 그런지....
하긴 저도 그랬습니다.
학창시절 엄마가 학교에 오시는게 너무 싫었습니다.
엄마가 학교에 오면 반친구들이 이상한 소리들을 했습니다.
엄마가 오셔서 내가 그림도 잘 그리고 우등상도 주고
상이란 상은 다 엄마가 학교에 오셨기때문에 탔다고
뒤에서 수군거리던 억울한 기억.
딸아이의 꽃다발 이야기를 하다가 다른 이야기로 빠졌습니다.
딸아이는 상을 받은게 없습니다.
개근상도 받지 못했고....
아마도 내가 학교에 가지 않아서 그런가봅니다.
이건 절대 아닌데...
괜히 내 학창시절의 억울함이 되살아나서 말한겁니다.
오해없으시길...
전 다른 건 바라지 않습니다.
우등상도 선행상도 개근상도 안 받아도 됩니다.
밝고 착하게 크기만 하면 되니까요.
바라는 게 있다면 딸아이가 좋아하는 그림을 열심히 해서
자기가 원하는 길을 가길 바랄뿐...
나와 많이 닮은 상아.
몇번씩이나 꽃이 참 이쁘다고 말하는 딸이 더 예뻤습니다.
항아리에 꽂아 놓으니
아이들 둘이서
흐뭇하게 바라다 봅니다.
사진도 못 찍어 주었습니다.
난 얘들 아빠가 카메라를 가지고 나간 줄 알았고
얘들 아빠는 내가 가지고 온 줄 알았답니다.
어긋나는 일들이 많지만
그래도 아빠가 왔다고 좋아하는 딸의 표정을 교실 밖에서 보았습니다.
항상 바쁜 아빠가 왔으니 얼마나 든든할까요.
아빠는 가족의 기둥입니다.
엄마는 가족의 방바닥이구요.
자식은 베란다에 놓인 꽃같고
거실장에 놓인 텔레비젼같고...그런가?
오후의 햇살이 따사롭습니다.
햇살을 받아 먹고 꽃들이 활기찹니다.
이제 차 한 잔 마시고 라디오를 켜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