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하늘이 올려다 보니 아주 청명하게 맑은 하늘에 새털 구름이
바닷가쪽으로 향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 모습이란 마치 한폭의 수채화를 그려놓은것 같다.
늦은 아침식사를 마친 후 뭘할까 잠시 생각을 하다가
밀양으로 시외전화를 걸었는데 잠시후 고모가 받았다.
"고모..나다.."
"어..그래"
"추석은 잘 보내고?"
"그래 너도..고생하제?"
"괜찮다 재미있다.."
고모와 인사성 대화를 짧게 나누다가 잠깐 들린다고 했고
오후 1시경이면 도착한다고 도착시간까지 이야기를 했다.
가방 하나만 챙겨서 부산역에 도착하니 10시 40분,
마침 45분에 서울로 떠나는 기차가 있기에 탔는데 입석이다.
밀양까지 40분인데 서서 가는것도 괜찮았다.
도시를 벗어난 기차는 낙동강을 따라 열심히 달린다.
평소보다 많이 불어난 강물이 하늘처럼 푸르고
강변에서 좋은 자리를 잡고 낚시하는 강태공들의 모습이
여러군데서 보이는 한가로운 풍경이라고 할까
밀양역에서 내린 난 역에서 버스를 타고 터미날로 갔는데
마침 15분전에 고모집으로 들어가는 버스가 출발을 했기에 50분이나 기다려야 했다.
마침 장날이였는지 사람들 손에는 시장 바구니며 온갖 물건들이 들려져 있다.
지루한 기다림 끝에 5분을 남겨두고 버스는 들어왔고
시원하게 뻗어있는 시골길을 40분여를 달렸을까,
고모가 살고 계셔는 청도면 구기리 종점에 도착했다.
몇 백년 된 은행나무가 보이고 한적한 시골길을 걸어가면서
내가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이 있는데 그 동네에서 하나뿐인 정육점이다.
난 항상 1년에 2번 고모집에 갈때 늘 사돈 할머니 생각해서
쇠고기를 사간다.
주인 아주머니에게 쇠고기 국거리용으로 1만원 어치를 주문했고
검은 봉지에 들어간 쇠고기를 들고 고모집으로 들어가는데
멀리서 방앗간 뒷편에서 감을 따고 있는 한 여인이 내 시야에 들어온다.
가까히 가보니 고모다.
고모는 나에게 점심을 차려준다면서 주방으로 들어가시고
난 사촌이 있는 방으로 들어갔는데 정작 내가 찾아 온 이유라면
사촌을 위로하고 싶다는 마음에..
1년전 진주 모 대학교 농학과 실험실에서 갑자기 쓰러졌다는 사촌,
그때 마침 옆에 병원에 있었기에 다행이였고
머리 대수술을 받기 위해 사촌의 누나가 있는..나에게도 사촌 여동생이 되는..
아주대병원으로 올라가서 대수술을 받게 되었다.
머리 뚜껑을 여는 수술을 하면서 6개월동안 병원 신세를 졌다.
그러는 동안 몸의 왼쪽 부분이 마비가 되었고 눈 또한 이상하게 되었다.
병원에서 집에 내려온 사촌은 다시 일어날 생각으로
아침 저녁으로 경치좋은 산쪽으로 운동겸 산책을 한다
그날 저녁 사촌과 같이 운동하는 길로 동행을 하게 되었다.
감나무가 많이 열려있고 시냇물이 흘러가는 곳으로 걸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모른다.
일주일에 3번씩 밀양에 있는 종합병원에 재활치료를 다니고
난 사촌에게 기적이 있을 수 있으니까 열심히 살자고 했다.
지금의 아픔에서 벗어나자고 기원하고 싶었다.
그런데 큰 고모부마저 얼마전에 암 수술을 받게 되는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위암 3기 말이라는데 다행이 수술은 잘 되었고
항암제 주사를 몇번 맞으시고는 지금은 활동을 잘하신다.
왜 좋은 사람들에게 그런 불행이 다가오는지 모르겠다.
사람이 행복하게 살고 늘 웃음으로 산다고 불행은 비켜가는 것이 아닌가 보다.
그날 저녁 고모에게 난
"고모야..쇠고기 저거...맛있게 해서 고모부에게 드려라.."
빨래를 개구있는 고모는 내 말에 웃음을 보일뿐,
쇠고기 1만원 어치 한 덩어리겠지만 고모부가 다시 예전처럼 기분이 좋으시고
제삿날 우리집에 오셔셔 밝게 웃을 수 있다면 난 그것으로 만족한다.
오랜만에 뵙는 사돈 할머니는 여전히 나에게 높은 말을 쓰시지만
난 말씀을 낮추라고 하지만..
아들과 손자가 몸이 좋지 않으니까 얼마나 마음이 아프실까.
그리고 남편과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 아파할 고모는 씩씩하게 생활을 하신다.
월요일 아침,
사촌이 재활훈련을 받기 위해 시내로 나가는 날이고
나도 집으로 가야 한다.
난 나를 배웅하러 나오는 고모에게 작은 선물 하나를 주었다.
열쇠고리를..
고모의 어깨를 처음으로 만져주면서
"고모..밥 잘먹고.."
"지랄하네..니나 잘 먹고 알았나?"
사촌은 제종형이라는 사람이 차를 대기시켜놓고 기다리고 있었고
나도 그 차를 타고 밀양 시내로 나올 수 있었다.
종합병원 앞에서 내리는 사촌에게 열심히 하면 반드시 다시 일어날 수 있다
그리고 다시 연구실에서 연구를 할 수 있다면서 이야기를 한 후에
병원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그 분이 나를 역까지 고맙게 태워주셨기에
즐겁게 기차를 타고 내가 사는 도시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2001.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