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맏며느리다.
어머님이 계실때는 시골로 내려가서 온갖 일을 다했다.
결혼 한지 얼마 안되서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두부만드는 일. 메밀묵 쑤는 일. 강정 만드는 일. 가래떡 빼는일등
온갖 일을 어머님과 같이 해야했다.
남자들은 동창들끼리 어울려서 잘도 노는데
신출내기인 나는 익숙하지 않은 부엌에서 정말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았다. 하지만 어떡하랴. 나는 아직 신혼의 며느리이니...
그 후 어머님이 결혼 5년차에 접어들때 갑작스런 사고로
돌아가셨다. 앞이 캄캄했다.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님의 제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평상시에 목록이라도 적어둘 걸.
나는 후회했다.
주체적이지 못하고 언제나 어머님이 시키는 일만
이거저거 하다보니 무엇을 장을 봐야하는지
또 무엇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 둘 기억을 되살리고
어머님이 하시던 것을 종이에 적기 시작해서
한 해, 두 해, 차례와 명절을 치러냈다.
이젠 결혼한지 14년차로 접어들어 왠만한 일은 척척 알아서
처리할 줄도 알고 조금은 배포도 크지고 마음도 많이
넓어졌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문제는 마음은 넓어진데 반해서 체력이 자꾸 떨어지고
일이 하기 싫어지는 게 자꾸 꾀만 내게 된다.
동서네 식구가 내일 온단다.
세끼 밥 해 먹일 일이 차례 음식 장만하는 것 보다 더 걱정된다.
"어차피 혼자 해도 되는 일인데 차라리 모래왔으면" 하고
바라는 내 속마음을 들키기라도 한 듯 나는 놀랜다.
나는 왜 갈수록 이렇게 인간이 못 되어가고 있는걸까?
한 마음에서는 사람 사는 집에 사람이 많이 들락거려야
복이 온다고 했는데 하고 생각하면서도
설이면 한 20명 이상 모이는 손님이 솔직히 부담스럽다.
아이구 차라리 명절이라는 게 없으면 이런 고생 안 할텐데.
나는 죽어도 맏며느리 하기는 싫었는데
이것도 무슨 팔자인지 선을 보는 사람 마다 장남만 걸렸다.
이왕 하는 거 좋은 마음으로 넓은 마음으로 해야지.
오늘은 우엉채. 물김치. 식혜. 멸치조림. 무우생채.
우선 밑반찬을 좀 만들어 놨다.
내일. 모레. 저모레. 할일 태산같이 많다.
빨리 지나가버렸으면 좋겠다.
이렇게 생각하는 저. 맏며느리 자격이 좀 없는 것 같지요.
아컴방 아지매 여러분.
설 지나고 다가오는 진짜 새해.
모두 모두 건강하시고 행복한 가정 이루십시요.
그리고 아컴방에서 자주 만나뵙기를 바랍니다.
부천에서 행우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