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281

나의 길(96) * 내 어릴적 고향에서는 ... *


BY 쟈스민 2002-02-08

내가 태어난 곳은 아주 두메산골이다.

파아란 하늘이 마을을 평화로이 내려다 보고 있었으며
집 뒤에는 병풍처럼 둘러쳐진 산이 사시사철 푸르렀다.
집 앞 개울가에는 유리알처럼 맑은 물이 졸졸 흐르던...
내 기억속에 자리한 고향의 모습은 너무도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처럼
그랬다.

예전에는 설날무렵이면 눈이 참 많이 내렸다.
논두렁에 밭두렁에 자그마한 마을이 하얀 눈으로 온통 뒤덮이곤 했지 ...

설날이 다가오면
집집마다 떡 하는 냄새로 온 동네가 구수했다.

그 시절에는 사랑채 옆에 있던 디딜방앗간에서 방아를 찧는 사람,
떡 반죽을 이리저리 뒤집는 사람, 고운 무늬의 떡살을 박아 내는 사람, 등등
떡만드느라 온 가족이 동원되곤 했었다.

나도 고사리손이지만 어깨너머로 연신 바라다 보기도 하며 뭔가를 돕곤 했었다.

하나에서 열까지 사람의 손으로 빚어낸 그 떡에는
전혀 인공적인 힘이나 감미료가 가해지지 않고서도
그맛은 정말 예술에 가까웠다.

지금은 떡집에다 맡기기만 하면 주르륵 기계로 만들어 내는
다소 찔긴듯한 가래떡이 눈깜짝할 사이 만들어지지만,
예전의 떡 만드는 일은 사람들의 수고로움과 땀으로 만들어졌다.

까만 무쇠솥에다 고구마, 옥수수등으로 엿을 고아 만들곤 했다.
엿을 만들때 만들어둔 조청을 항아리에 담아 두고 겨우내 드나들며
떡에 발라 먹던 기억도 난다.

멧돌에 콩을 갈아 두부를 만드는 날에는
먹지 않아도 배부를 만큼 푸짐함 그 자체였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두툼한 두부 한 귀퉁이를 아무렇게나 툭 떼어내어 먹어보던 그 맛은
지금도 잊을수가 없다.

10살이 채 되기전의 일들이지만 그토록 아름답고 선명한 영상으로 남아있는 건
아마도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
내 사는 동안 아주 잠깐의 달콤했던 기억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지금은 만드는 방법조차 기억이 나질 않지만
소나무에서 얻어진 송화가루로 다식이라고 하는 빛깔고운 우리만의 과자도 만들어지고,
찹쌀가루 반죽을 튀켜 만든 바삭한 맛의 한과도 참 감칠맛이 났다.

사각사각 눈을 밟으며 온 동네에 먹을 걸 갖다 주러 다니던
내 어릴적 친구들도 나처럼 그 시절 그리워하고 있을까?

아무리 작은 것도 나누며 기뻐할줄 알던 그 마을사람들의 순수함은
그곳을 떠나오던 날 어린 내게 쥐어주던 한보따리의 과자와, 사탕보따리에 그들만의 인심으로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처음 기차를 타보고...
2층집이 한없이 신기해 보이고,
형광등이 너무 신기해 밤새 잠못 이루고 끄고, 키고를 반복해 보던
산골소녀의 도시행은 그 후로도 아주 오랫동안 향수병을 키우게 했다.

해마다 설날이 되면
나는 소중한 추억을 꺼내어 본다.
가슴속에 간직된 추억은
지금도 변함없이 내게 선명한 색으로 간직되어 있다.

아마 한살 두살 나이를 보태어 갈 수록 그것은 더욱 선명한 그리움이 되어 남겠지 ...

줄줄이 오남매에게 한번도 설빔을 거르신적이 없이 곱게 키워주셨던
내 어머니의 맘은 설날이면 무척 분주하셨으리라.

시할머니,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그 고래등 같던 시골 기와집의
추억이 내겐 그 어떤 것 보다도 포근하며 그리움으로 남는다.

그들의 그런 나눔의 삶은 지금까지도 나에게 뭔가를 주는 즐거움을
알게 해 준것 같다.

지금은 돈으로 그 많은 것들을 전부 살수 있는 세상일지는 모르지만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그 추억들을 꺼내어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가족들을 만나 도란 도란 이야기보따리를 풀 수 있는 우리는
그래도 행복한 거 아닐까?

아무런 계산도 없고, 하루 하루 걱정도 없었던
그냥 자연이 가져다 주는 혜택을 고맙게 받을 줄 알았던
그 마을에서의 설날이 눈이 시리도록 그립다.

마당에 멍석을 깔아 두고서 널뛰기를 하고, 재기차기, 윷놀이를 하던 ...
해맑고 꾸밈없는 웃음을 맘껏 웃어볼 수 있었던 ...
나 어릴적 설날의 기억이 새록 새록 떠오른다.

그 때 그 아이들은 지금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
요즘 들어 부쩍 그 아이들이 보고 싶다.

까까머리 산골 머슴아들, 까맣고 반들거리며 윤기나던 머리카락을 갖고 있던 계집아이들 ...
지금은 모두 어디에 살고 있을까 ...

이글을 읽고 있는 이 중에 그 아이들은 있을까?

때때옷 차려 입고 아무런 근심 걱정 없이
날밤 세워가며 그 아이들과 실컷 이야기 하고 싶다.

올 설날에도 나는 그 고향을 등지고,
새로이 본적이 된 시가로 가겠지만,
마음만은 훨훨 날으는 새처럼 그곳에 가보련다.

*** 이 방에 머무르시는 모든 분들
즐거운 설 명절 보내시고,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좋은 날들만 가득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