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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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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같으신 우리 이모(2)


BY 리사 2002-01-11

한 십여년전 가을..

우리 큰 이모는 시집가전에도 시집을 가고 나서도 평생을 농사를 지으며 사셨다.
추수가 다가오면 그야말로 일손이 모자라고 눈코 뜰새없이 바쁘셔서 도시에 나와있는 자손들이 다 가서 농사일을 돕는다.
화끈한 우리 옆집 이모님, 언니의 일손을 돕겠다며 조카인
우리 친정 오라비보고 큰 이모네 추수를 도우러가자고 제안하셨다.
오라비도 큰이모님이 어떻게 사시는지 아는 터라 기쁜 마음으로 시골에 가서 추수를 돕게 되었다.

우리 시골 이모님댁과 논은 걸어서 한 삼십분은 족히 걸어야하는 거리였다.약간 가파른 언덕도 넘어야하고 주변엔 집들이 별로 없어서 한 낮에도 적막감에 그 길을 걸을 때면 괜시리 노래라도 흥얼대야할 것 같았다.

추수가 주는 즐거움도 크지만 시골의 농사일이란 그야말로 일일이 사람손이 거쳐야 하는 법.
서울서 일손을 돕겠다고 갔지만 너무 힘들고 지친나머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다들 파김치가 되어있었다.

하루종일 거둬들인 벼를 털어 가마니에 담고, 다시 그 무거운 쌀가마를 경운기에 싣고, 이젠 허기에 지친 배를 채우러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쌀가마위에 자리잡았다.쌀가마를 싣고나면 물론 사람이 편히 앉아서 갈 자린 없다.그냥 쌀가마 사이사이 골진 곳에 재주껏 자리를 잡고 앉는 수밖에..물론 손은 경운기 앞쪽이 됐던 옆쪽이 됐던 잘 잡아야했다.
어느덧 해는 지고 주위는 캄캄했다.
시골의 저녁은 도시보다 훨씬 빨리 깜깜해진다.주위에 불 빛이 별로 없기때문에.
지금이야 가로등도 있고 차들도 다니지만 그 때만해도 해가지면 인적이 뚝 끊기는 그런 곳이었다.
이웃집에서 빌려온 경운기와 이모님네 경운기 이렇게 두대에 나눠타고 집으로 가는데, 귀청이 터질것같은 경운기 소리만이 귀신이 나올 것같은 그 길을 지나갈 수 있는 힘이 되어주었다.

정말 경운기 소리는 어마어마했다.
인적이 뚝 끊긴 고요한 산길에 울려퍼지는 소리는 두 귀를 손으로 막고 머리를 쳐박고싶을 정도로 계속되었다.
하지만 손으로 귀를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쌀을 가득 실은 경운기뒤에 앉아서 떨어지지 않으려먼 로데오 경기처럼 긴장을 늦추면 안되니까..

한 십오분정도 그렇게 엄청난 경운기소리와 엉덩이가 터질 것같은 경운기의 튕김을 이겨내고 집에 도착했을 땐 다 들 제정신이 아니었다.
모두 대강 옷들을 툭툭 털고 손을 씻고 늦은 저녁식사를 하려는데..
어? 불같은 우리 이모가 안보이시네?
화장실 가셨겠지..한참이 지나도 안 보이신다.
경운기에 같이 탄 우리 오라버니도 "이상하다? 분명히 같이 오셨는데?"를 연발하며 고개를 갸우뚱한다.

너무 허기가 진 터라 우선 식사를하기로하고 밥을 먹고있는데
한 십분후쯤 나타나신 이모님..
목소리가 다 쉬어 알아들을 수도 없었지만, 막 소리지르는 시늉을하시는게 많이 화가 나신 표정이다.
무슨일이냐고 자초지종을 듣자니..
경운기 뒷쪽의 쌀가마에 앉아서 오고있는데 언덕을 넘을 즈음 자꾸 밀려서 떨어질 것 같아 "나 좀 잡아줘"라고 소리를 질렀는데 그 놈의 경운기소리가 너무 커서 아무도 그 소리를 듣지 못한거다.
결국 안간힘을 다 했지만 이모님은 그 깜깜한 시골 언덕길에 털털거리는 경운기에서 떨어지고 마신것이다.
깜깜하고 으스스한 어덕길에서, 멀어져가는 경운기소릴 들으며, 마구마구 소리를 지르며 집까지 뛰어오셨단다.
이모의 이야기가 다 끝나기도 전에 사람들이 하나 둘 밥상에서 사라졌다.터지는 웃음을 차마 웃을 수 없어서 부엌으로 사랑으로 뒤뜰로..
다치신데 없냐고 걱정했더니 깜깜한 시골길이 너무 무서워서 아픈줄도 모르고 계속 소리지르며 뛰어오셨단다.

하루종일 힘든 일을 하고도 그 날밤 우리는 한숨도 못잤다.
옆에서 끙끙 앓는 이모의 신음소리가 들릴때마다, 터지면 안되는 웃음이 터져나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