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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이야기...[17]맛있는 들밥


BY ns05030414 2001-12-28

모내기, 김매기, 벼베기….등을 하는 날은 ‘놉’이라고 부르던 일꾼들이 있었다.
이런 날 어머니는 일꾼들을 먹일 음식을 만드느라 하루종일 부엌에서 살았다.
작은 어머니들도 와서 어머니를 거들었다.
때로는 이웃 아주머니도 와서 도왔다.
가난한 농사꾼 집이었으니 평소 반찬이래야 김치나 장아찌, 콩나물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이 날만은 평소 맛 볼 수 없는 맛있는 반찬들이 만들어졌다.

집에서 키우던 닭 중엔 이 날 세상을 하직해야 되는 놈들도 있었다.
저승사자 역할은 아버지 몫이었다.
논에 나가기 전 아침 일찍 닭을 잡았다.
목을 비틀어 쥐고 털을 대충 뜯은 다음 불에 그을러 나머지 잔털을 제거하고,
발도 불에 그을러 손으로 훑어 껍질을 훌렁 벗겼다.
난 아버지 옆에 쭈그리고 앉아 닭 털을 뿌리까지 제거하는 일을 도왔다.
징그럽다는 생각보다 재미있다는 생각을 하며 아버지 뒤를 쫄랑거리고 쫓아다녔다.
그 땐 닭 내장도 버리지 않았다.
칼로 갈라 똥을 다 털어내고 소금을 뿌려 박박 씻어 닭국 끓이는데 넣거나, 남자들이 소주 안주 삼아 참기름소금 찍어 날 것으로 먹기도 하였다.

감자를 넣고 고춧가루 넉넉히 뿌려 발그레하게 졸인 갈치조림도 빼놓을 수 없는 일꾼 접대용 음식이었다.
거기에 두부조림, 애기감자 조림, 멸치나 마른새우 조림, 깨소금을 듬뿍 뿌린 겉절이 김치, 나물 몇 가지가 준비되었다.
이런 날 아이들은 집 안 가득 퍼지는 음식 냄새에 절로 즐거웠다.
부엌 문과 사립문을 일도 없이 들락거리며 한 쪽 다리를 들고 깡충깡충 뛰기도 하였다.
맛있는 음식 먹을 생각을 하면 행복해지던 때였다.
지금도 그렇게 단순하게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점심은 일꾼들이 집에 들어와 먹기도 하였지만 새참은 으레 들에서 먹기 마련이었다.
들밥을 내가기 위해 어머니는 준비된 음식을 광주리에 담았다.
광주리에 담긴 음식을 머리에 이고 가는 어머니와 작은 어머니 뒤를 나도 따라갔다.
막걸리 주전자를 들고…
좁고, 꼬불꼬불하고, 울퉁불퉁한 논둑 길을 어머니와 작은 어머니는 무거운 광주리를 이고 잘도 걸었다.
주전자의 막걸리가 흘러 넘치지 않도록 조심조심하며, 넘어지지 않으려고 애쓰며, 그 뒤를 따라 나도 비틀비틀 걸었다.
어린 내겐 막걸리 주전자가 너무 무거웠던 것이다.
그래도 어머니를 도와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것이 즐거웠다.

좁은 논둑이지만 어딘가에 광주리를 내려 놓고 일꾼들이 모여 식사할 만한 곳은 있었다.
그런 곳은 정해져 있기 마련이어서 어머니와 작은 어머니는 곧장 그 곳으로 갔다.
어머니와 작은 어머니가 광주리를 이고 가까이 가면 누군가 한 사람이 광주리 내리는 것을 거들기 위해 일손을 놓고 마중 나왔다.
이 때 작은 실랑이가 벌어진다.
어머니는 작은 어머니 광주리를 먼저 내려 놓으라 하고, 작은 어머니는 어머니 광주리를 먼저 내려 놓으라 하면서…
번번히 고집이 센 어머니가 이기고 작은 어머니가 먼저 광주리를 내려 놓게 되긴 하지만…
머리를 짓누르는 광주리 무게에서 빨리 벗어나라고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었다.

광주리를 내려 놓으면 일꾼들이 광주리 주위로 모여 들었다.
먼저 수로에 들어가 손도 씻고 종아리도 대충 문질러 씻은 다음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어이, 광식이 이리 와서 같이 먹세…”
주위에 혼자서 일하는 사람이 있으면 아버지는 목청 높여 그 사람을 불렀다.
그러면 그 사람은 한 두 번 사양을 하다 못 이긴 척 합석하기 마련이었다.
끝내 사양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런 사람은 드물었다.
때론 길 가는 나그네가 끼어들기도 하였다.
교통 수단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이어서 식사 시간을 놓치고 길을 걷는 사람도 간혹 있을 때였다.
우체부 아저씨가 자리를 같이 하기도 하였다.

일꾼들은 먼저 막걸리를 대접에 따라 차례로 한 잔씩 죽 들이켰다.
일꾼들이 둘러 앉아 먹는 모습은 바라만 봐도 침이 꿀꺽 넘어갈 만큼 맛있어 보였다.
왜 아니랴?
힘 든 노동을 한 뒤에 평소 자주 먹을 수 없는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인데…
내가 아무리 침을 꿀꺽 삼켜도 어머니는 일꾼들이 다 먹기 전에는 먹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아버지나 일꾼들이 들밥이 맛있다고 먹으라고 권해도 집에 가서 먹으라고 하면서 못 먹게 하였다.
행여 일꾼들 먹을 음식이 모자랄까 염려하는 마음에서였다.
음식이 모자란 적은 한 번도 없었건만 어머니는 항상 그랬다.
먹기를 끝낸 일꾼들이 하나 둘 일어나고 다들 충분히 먹었다 싶으면 비로소 어머니는 내게 먹어도 좋다고 하였다.
내가 가장 좋아한 것은 주전자 밑바닥에 조금 남은 막걸리였다.
막걸리가 한 방울도 남지 않을 적도 있었는데 그 땐 무척 섭섭했던 생각이 난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술을 먹으면 안 된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 것은 그저 음식이었다.
광주리에 빈 그릇을 챙겨 이고 돌아가는 어머니 뒤를 따르는 길은 더욱 즐거웠다.
적당히 술에 취해, 나를 둘러싼 세상이 쬐끔 출렁이는 것 같은 기분이 그만이었다.
취해서 비틀거리는 어른들 흉내를 내어 가끔 비틀 걸음을 걸어보는 것도 좋았다.

그리고 보니 결혼하고 나선 한 번도 취할 만큼 술을 마셔본 적이 없다.
그 기분도 괜찮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