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미국에 공부하러 간다고 없을 때 시댁에서 네 살, 다섯 살, 두 아이를 데리고 몇 개월을 살았다.
크리스마스가 되었다.
난 아이들에게 선물을 사 줄 마음이 없었다.
나랑 아이들에게 예수가 태어난 날이 무슨 상관이랴 싶었던 것이다.
난 그 때까지 크리스마스라고 들떠 본 적도, 카드를 보낸 적도 없었다.
그렇게 고집불퉁이고 아량이나 융통성이 없었던 것이다.
크리스마스 아침 날이 밝고 잠이 깬 아들이 물었다.
"엄마, 왜 산타가 안 왔지?"
아이는 산타가 왜 자기를 빼놓고 선물을 주지 않았는지 정말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아이의 순진하고 까만 눈동자를 보면서 내가 오랫동안 지켜왔던 신념같은 것은 한 순간에 흔들렸다.
여자는 약하나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은 말짱 거짓말이다.
난 어떤 남자보다 강한 여자라고 자신만만했던 사람이지만 아들 앞에서는 한 없이 약한 어미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아들의 말을 듣고 갈등하기 시작했다.
사실대로 말할 것인가? 아니면 아이의 동화 같은 마음을 지켜줄 것인가?
아들은 산타의 존재를 굳게 믿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음...그게 말이야,..."
내가 멈칫거리고 있을 때, 제대하고 집에 있던 시동생이 나섰다.
"우리집은 시골이잖아. 그래서 산타가 집을 찾는데 시간이 걸리나봐."
아들은 삼촌의 말에 반색했다.
"삼촌 정말이야? 그럼 오늘 저녁에 올 지도 모르겠네?"
"그럼, 산타가 너처럼 착한 아이를 빼 놓을리가 없지."
시동생은 아이를 안심시켰다.
"알았어, 그럼 기다려봐야지..."
아들은 안심이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환한 얼굴이 되었다.
그 날 밤 아이들이 잠들고 시동생은 내게 예쁘게 포장된 선물 꾸러미 두 개를 내밀었다.
"형수님, 이거 아이들 머리 맡에 두세요."
이튿날 잠에서 깬 아이들은 선물을 보고 펄쩍펄쩍 뛰며 좋아했다.
"산타가 어제 저녁은 꼭 올 줄 내가 알았다니까..'
아들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그렇게 아들은 프로펠러가 달린 장난감 비행기를, 딸은 크레파스를,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았다.
테옆을 감아 프로펠러가 돌면서 움직이는 비행기를 보며 아들은 신이 났다.
아침 식사도 다른 날 보다 얌전히 잘 했다.
식사를 잘 하고 나서, 비행기도 실컨 가지고 놀고 나서, 아들은 물었다.
어쩌다 한 번씩 기분 좋을 때만 쓰는 존대말을 사용하여 물었다.
"근데요, 엄마... 우리집 산타는 누구예요?"
나는 한 방 맞은 것 같았다.
'으이그, 여우 같이 교활한 녀석...'
그러나 어쩌랴, 모두들 말하길 아들 녀석 맘 쓰는 것이 지 어미 닮았다고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