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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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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양복을 사며(영상)


BY 얀~ 2001-12-26

남편의 양복을 사며


책을 가지러 가게에 가는데, 차가 빙판에 미끄러진다. 약간의 경사에도 차는 앞으로 나갈 줄 모른다. 후진하여 간신히 남편과 가게에 도착했다. 남편이 시내에 가자고 한다. 이메일을 확인하니 김시인님이 영상시 기도를 보내셨다. 덕담과 함께. 답장대신 영상시를 홈페이지에 올려놓았다. 책을 가방에 넣고, 남편과 단둘이 시간을 갖기로 했다. 창 밖으로 흐르는 산이 흰눈에 덮여있다. 시내로 들어갈수록 눈은 검은 매연 분진들로 섞여 검은 눈물로 배수구로 흐르고 있었다. 마스카라를 하고 펑펑 울던 많은 미인대회의 수장자들이 연상되었다. 신사정장 할인 매장이 눈에 들어왔다. 여동생 결혼도 있고 해서, 남편에게 한 벌 구입하자고 제의했다. 남편은 정장을 입는 편은 아니지만, 결혼이다 행사가 있으면 한 벌로 누비고 다녔다. 내친김에 조끼까지 골랐다. 차려 입고 갈 자리가 많아지니 4벌은 있어야 한다며 하복 정장도 골랐다. 직원이 넥타이는 선물로 준다고 한다. 하복도 조끼와 넥타이까지 코디 했다. 와이셔츠도 골랐다.
"지나가다 눈에 들어와 사네요, 넥타이 선물 고마운데, 선물하는 김에 와이셔츠도 선물해주세요"
"와이셔츠까진 좀 곤란한데요"
"다음에도 이용하도록 할게요"
남편은 화장실을 간다. 지갑을 주며. 흥정에는 좀 약하므로. 계산기를 두드리더니 와이셔츠도 선물로 준다고 한다.
"세 시간 후에 오세요, 바지를 손봐서 준비해 놓을게요"
"네"
카드를 긁고, 남편을 기다렸다.
"사인은 제가 못해요, 내 카드가 아니라 말이죠"
3시간의 자유시간이다. 남편과 차에 올랐다.
"와이셔츠도 선물로 달라고 했어, 첨엔 안 된다고 하더니 준다더라...히히히"
"아 그럼 하복 와이셔츠도 선물로 달라고 하지?"
"윽....뭐야 정말"
"하하하"
교차로에서 정지상태에 있는데 옆 차도에 대머리아저씨가 눈에 들어온다.
"여보, 당신은 대머리 가능성 없나?"
머리를 거울에 비춰보며 고개를 흔든다.
내가 다닌 초등학교는 보문산 아래에 위치한다. 보문산은 소풍을 가던 곳, 친구들과 손잡고 찾던 곳이다. 결혼하고 장사를 시작하면서 어려워졌지만. 입구의 오래된 침엽수는 색다른 곳으로 통하는 동굴 같았다. 남편과 손을 잡고 산을 올랐다.
"전망대 옆에서 막걸리 마시고 헤롱거렸을 때 생각나네"
전망대에 하얀눈이 쌓여있고,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고 모교가 보인다.
"여보, 조기 충무체육관 보이지, 응?...고 바로 옆에 문창초등학교 거든...가보고 싶다"
"저쪽 아파트는 어디지?"
"가만...저쪽이 둔산동이구...그 옆쪽으로 아...전민동인가보다"
"그렇겠다..시내가 아파트 숲으로 둘러싸여 있네"
"내가 살던 집도 궁금하다, 어떻게 바뀌었는지"
모이를 주는 사람에게 비둘기가 달려든다. 꼬리를 물고 지나가는 추억들. 이십대 초반에 2명의 단짝 친구가 있었다. 한 명은 정림동 토박이고, 한 친구는 조치원 가기전 내판이 고향이다. 셋이서 보문산을 오른건, 내판 친구의 삼수 시절이었다. 학원에 함께 가, 학원비를 깍았다. 그 돈으로 철없이 술을 마셨다. 소 판 돈이었는데. 지금도 만나면 술 마시며, 추억에서 끄집어내어 웃곤 한다. 나보다 결혼이 늦은 친구 옥화 부부와 야외음악당에서 베드민턴을 치던 생각이 난다. 다리가 불편하신 분이 채를 가져와 빌려준다. 눈이 내렸는데도 오셨다. 직장 생활 중에 본사 파견 직원이 오면, 업무 끝내고 보문산을 찾았다. 높지 않아 산책하기 좋은 도심의 산이다. 결혼하기 전엔 새벽까지 남편을 기다려 산이나 바다로 여행을 떠나곤 했다. 아이들이 크고, 이젠 단 둘이 오붓하게 손을 잡고 대화하며 천천히 걷고 싶다. 남편이 떠올린 사람이 있다.
"그 사람 죽은지 삼년됐다. 이성호씨 그때가 36살이었지?"
그 분은 암으로 죽었다.

내려오면서 살던 집을 찾아보았는데, 찾지 못했다. 다시 한번 찾아봐야겠다. 남편의 옷을 찾아들고 집에 들어서니 6시다. 어머님께 옷을 보여드리며, 한 벌은 입혀 보였다.
"옷이 날개다, 인물이 훤하네" 어머니가 기뻐하신다.
"아빠, 회사 출근하는 사람 같다" 딸아이의 말에 난 웃을 밖에. 옷을 벗는 남편을 보더니 딸이 말한다.
"심봤다, 아빠 팬티 일기에 그려야지"
"푸하하하"
"오빠 팬티 사각, 아빠도 사각"

차안에서 다소 암울한 말을 했다. 앞으로의 삶에 대한 걱정이 둘에게 고통을 준다.
"집 파먹고 살던지, 땅 파먹고 살던지, 오늘은 걱정하지 말자구" 그렇게 말하면서도 스트레스 받는다.


***여보***


여보
10년 동안 한 벌의 양복으로 견디며
작업복에 친구들 남방도 그냥 입었잖아
작업을 하면
아무리 비싼 옷도
기름때에 찌들어 버리기에
백화점에서 산 와이셔츠 입혀 보내 놓고
더러워진 만큼 속이 상해
시장에서 고른 옷을 입히고
나중엔 얻어다 입히고
도덕책에나 나옴직한 당신 말이
내색은 안 했지만 맘이 아팠어요
형의 말끔함과 동생의 폼생폼사에
결국 그늘만 드리운 형제들,
상처받고 슬퍼하는 당신
옷이라도 바꿔주고 싶었어요
비싼 옷 입고, 허튼 짓 하란 거 아니에요
음울한 뒷모습,
감춰주고 싶은 아내 심정이에요
사랑하는 당신, 정말 멋지네요
동안인 당신 웃는 얼굴 보네요

사랑하는 여보, 힘내세요





***여보***





여보

10년 동안 한 벌의 양복으로 견디며

작업복에 친구들 남방도 그냥 입었잖아

작업을 하면

아무리 비싼 옷도

기름때에 찌들어 버리기에

백화점에서 산 와이셔츠 입혀 보내 놓고

더러워진 만큼 속이 상해

시장에서 고른 옷을 입히고

나중엔 얻어다 입히고

도덕책에나 나옴직한 당신 말이

내색은 안 했지만 맘이 아팠어요

형의 말끔함과 동생의 폼생폼사에

결국 그늘만 드리운 형제들,

상처받고 슬퍼하는 당신

옷이라도 바꿔주고 싶었어요

비싼 옷 입고, 허튼 짓 하란 거 아니에요

음울한 뒷모습,

감춰주고 싶은 아내 심정이에요

사랑하는 당신, 정말 멋지네요

동안인 당신 웃는 얼굴 보네요


사랑하는 여보, 힘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