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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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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부자리 속 토크


BY 동해바다 2001-12-15

갑자기 추워진 탓일까?
도로 위의 행인들이 뜸한 한산하기만 한 저녁이다.

저녁을 끝낸 후의 나른함과 무료함을 달래려 책가 음악을
가까이 하다가 멀거니 한장 남은 달력으로 내 눈이 꽂힌다.

유난히 빠르게만 느껴졌던 올 한해이다.

작은 가게를 오픈한 지 달포 정도....
매일 집에서 살림만 하다가 이것도 사업이라고 피곤했는가 보다.
몸살 기운이 몰려 온다...

힘든 노동도 아니고 편하게 앉아서 오는 손님들과
잠시 몇마디 나누고 옷 사가는 일도 피곤할 걸 보니 이것도
만만찮은 일인것 같다..

요즘들어 계속 늦잠을 자는 통에 아이들 등교 준비를 제대로 해주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도 지각하기 일쑤이고....
대충 시리얼 챙겨 먹이고는 다시 이부자리로 쏘옥 들어가는게 다반사이다.

밤늦게 돌아와 집안일 대충 끝내고 보면 아이들과 이야기할 시간도 별로 없다.
많지 않았던 대화도 반으로 줄어드니 엄마의 역할을
다 해내지 못하는 것이 아이들에게 미안하기만 하다.

딸은 엄마에게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많이 하는편이지만
아들은 말을 걸지 않으면 잘 하지 않을 정도로 묵묵함과 친해져 있다.

그나마 이야기 나눌수 있는 시간은 아침 차려놓고 아들방 이부자리로 들어가면
다 먹고 뒤따라 들어온 아들과 학교가기 전까지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전부이다.

동장군의 맹위가 무섭긴 하지만 그래도 살 맞닿아 가면서 정나누기는 이 겨울이 제격인가 보다.

요를 걷고 따뜻한 이부자리 속에 들어가 '아 좋다'를 연발하면서 새삼
늙어가는것도 느끼구...이불속을 파고 들어오는 아들과 몸싸움을 하면서
벌이는 대화는 나의 소중한 시간인 것 같다.

"얘! 너 학교에서 조는 걸루 유명하드라....
선생님께서 그러는데 랭킹 1위라는데......"
"응! 맞아"하면서 이 엄마가 말 한번 걸면 재미나게 그 뒤를 이어
학교갈 때까지 받아치는 아들이다.

"엄마! 내가 이 책을 읽었는데 너무 괜찮더라...한번 읽어보세요"
하면서 책 한권을 권해주니 이 엄마 어찌 기분이 좋지 않겠는가...

공부하느라 교과서 외에는 책을 멀리하는 아이들이 대부분인데
가끔씩 책을 사서 보고는 나에게 권해 주기도 하는 아들이 대견스럽기만 하다.

뽀송한 얼굴이 아기같던 아이가 중학교를 입학하더니
벌써 여드름을 달고 졸업할 나이가 다 되었다.
친구들과 같이 다니면 커다란 총각같기만 한 아들....
어깨 떡 벌어진 친구들을 보면 우리 아들은 언제 저런 등빨이 되어 보나 하는
부러움도 가져 보지만 마른 체형이 어딜 가겠나 하는 생각도 해본다.

활달하고 남자다운 아이들과는 달리 차분하면서 소극적인 아들에게
좀더 남자다운 점이 발견되기를 원해 보지만 그것 역시 무리인것만 같다.
욕심은 끝이 없는가 보다......

이제 중요한 고교시절로 올라갈 아이들에게 좋은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싶어도 특별히 말재주도 없는 엄마의 말을 듣는것 역시
고역이구나 싶은 생각에 그냥 말장난, 몸장난으로 이부자리 속 정겨운
시간을 나누어 본다.

힘든 입시지옥의 출발선을 향하여 돌진할 내 아들에게
내가 보낸 사랑이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강한 바람소리에 손님들의 발길은 뚝 끊어지고
이제 문을 닫고 들어가야 할 시간.....
추위가 한층 더 내 가슴 속을 파고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