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아낙들은 치마 꼬리가 오른 쪽을 향하게 할 것인 지, 왼 쪽을 향하게 할 것인 지를 정할 때 우리 할아버지를 머리에 떠 올렸다고 한다.
치마 꼬리 방향이 양반과 상놈을 구분하던 때였다.
양반 상놈 따지길 좋아하는 할아버지가 무엇이라 하지나 않을까 염려했단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 집 앞을 지나갈 때 다리가 꼬였다고 하였다.
행여 할아버지에게 흉이라도 잡힐까봐...
그래도 우리에겐 다정한 할아버지였다.
무릎에 안고 앉아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할아버지는 앞 머리를 위로 쓸어 올려주며 이렇게 말하곤 하였다.
남자이든, 여자이든, 이마가 넓어야 하는 것이라고...
자라서 생각하니 마음을 넓게 쓰라고 무릎에 안고 그렇게 가르친 게 아닐까 싶다.
할아버지는 우리의 긍지요, 자랑이었다.
하얀 모시 두루마기를 입고, 윤이 반짝반짝 나는 지팡이를 가지고 다녔다.
지팡이는 늙어서 의지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었고 멋부리기 용이었다.
양말을 신은 할아버지를 본 적이 없다.
항상 버선을 신었다.
버선에 맞추어 앞부리가 여자들 한복 신발 처럼 뾰족한 구두를 신었다.
그 시절에는 그런 신발도 있었다.
나들이 옷을 갖추어 입은 할아버지가 마을 안길을 걷고 있으면 마을이 온통 환해지는 느낌이었다.
가난한 농사꾼들이 모여 사는 마을에 그런 멋쟁이는 없었던 것이다.
옷차림도, 걸음걸이도, 나부끼는 단정한 흰 수염도 아름다웠다.
한 올도 흐트러짐 없는 모습이었다.
할아버지 덕분에 어딜 가든 우리는 대우를 받았다.
'용'자 '대'자 쓰는 어른이 할아버지라고 하면 사람들은 우리를 '이미 예전 부터 잘 알고 있었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지방 신문사에서 그 지방을 빛 낸 인물 사전을 펴냈을 때, 그 속에는 할아버지의 사진과 약력이 들어 있었다.
시골 초등학교 운동회나 졸업식엔 할아버지가 교장선생님하고 나란히 앉아 있었다.
할아버지는 그 초등학교가 생길 때, 설립위원 중의 한 사람이라고 하였다.
그 때는 무슨 행사를 시작하건 개회사에 내빈 여러분이 빠지지 않았다.
졸업식 송사와 답사도 이렇게 시작하였다.
"이 자리에 참석하여 주신 교장선생님, 교감 선생님 그리고 내빈 여러분 ..."
할아버지는 바로 그 빠질 수 없는 내빈 여러분 중의 하나였던 것이다.
농사 일에 바쁜 부모 대신 할아버지는 우리들의 보호자였다.
짙은 밤색 두루마기를 입은 할아버지 손에 매달려 입학식에 참석하였다.
농사 일에 바쁜 부모 대신 선생님과의 면담에 참석하는 것도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를 보면 달려나와 인사하는 교장 선생님을 바라보는 우리들은 자랑으로 가슴이 뿌듯하였다.
할아버지는 가끔씩 나들이 길에 동행을 허락해 주었다.
할아버지 새끼 손가락을 꼭 잡고 가는 나들이 길은 신기한 것으로 가득했다.
버스도 할아버지 손 잡고 처음 타 보고, 도시 구경도 할아버지 손 잡고 처음 하였다.
할아버지는 우리 집이나 마을 외의 다른 세상과 우리를 연결해 주는 통로였다.
우리의 바람막이 이기도 하였다.
동네 아이들은 우리에게 욕을 하거나 싸우려 들지 않았다.
우리가 할아버지를 우리의 할아버지로 둔 덕이었을 것이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던 해에 할아버지는 갔다.
명정홍포가 제일 앞장을 섰다.
할아버지 친구들이 눈물 머금고 쓴 만장들이 그 뒤로 기다란 줄을 섰다.
그 뒤를 따라 화려한 꽃 상여를 타고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갔다.
상두꾼이 종를 딸랑이며 구슬픈 상여노래로 마지막 길을 서러워하였다.
그 소리에 두루마기와 버선 신발이 어울리는, 머리가 허연 할아버지 친구들이 소리내어 엉엉 울기도 하고 소리없이 눈물만 흘리기도 하였다.
할아버지를 사랑한 것은 우리 뿐 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할아버지가 가고 난 후, 우리 집에 찾아 들던 손님들이 끊겼다.
양복 입은 사람들, 흰 두루마기에 갓을 쓴 사람들, 모두들 더 이상 우리 집을 찾아오지 않았다.
사랑채에서 단정한 모습으로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손님과 바둑을 두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다시는 볼 수 없었다.
할아버지가 안 계신 우리 집은 몰락한 집 같았다.
집 안을 온통 환하게 빛추던 빛이 갑자기 사라진 것 같았다.
우리의 긍지와 자랑은 사라졌다.
누구나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던 소공녀, 소공자에서 우리는 그저 가난한 농사꾼의 딸과 아들로 전락한 것 같았다.
머지 않아 나도 누군가의 할머니가 될 것이다.
할아버지를 생각하며 나는 어떤 할머니가 될 것인가 생각해 본다.
내가 죽고 난 다음 내 손자와 손녀는 나를 어떤 사람으로 기억할 것인가?
내 할아버지 처럼 환하게 빛나는 모습으로 기억될 것인가, 아니면 희미한 존재로 기억될 것인가?
내 손자와 손녀에게 무엇을 물려줄 것인가?
내 할아버지 처럼 자긍심과 아름다운 추억을 물려줄 수 있을까?
어렸을 적 할아버지를 추억하며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릿속에 오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