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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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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여자에게 원하는 것


BY 칵테일 2000-10-13



남자가 여자에게 원하는 것



제가 오래도록 잊지못하는 꽤 예전 이야기입니다.

그날은 어느 늦봄, 해가 저물어갈 무렵의 일이었죠.

저는 그때 매운탕으로 유명한 팔당 주변의 어느 음식점에 있었
습니다.

조금 바람이 스산하긴 했지만, 얇은 가디간 스웨터를 걸친 채,
얼큰하고 푸짐한 매운탕으로 이른 저녁 요기를 마친 뒤였습니다.

어른들까지 모시고 나간 자리라 그렇게 편안하게 식사를 마치지
는 못했습니다.

그래, 저는 다른 가족들보다 일찍 식사를 마쳤습니다.

식사를 마친 뒤임에도 계속 상 앞에 앉아 있기가 뭣하기에, 저
는 먼저 일어서 그 음식점 마당의 평상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넓직한 그 집 마당에는 몇 개의 나무 평상이 놓여 있었습니다.

저처럼 식사를 먼저 마친 사람들이 군데군데 앉아 있기도 하고,
벌렁 누운 채로 휴식을 취하고 있기도 했습니다.

저는 남을 방해하지 않을 만한 빈 자리를 찾다보니, 아무도 앉
지 않은 빈 평상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그 곳에 앉게 되었습니다. 마주 보이는 곳엔 주차장이어서
나란히 주차되어있는 차들을 바라보다가, 또 건너편 강물도 번갈
아 보고 있을 때였습니다.

무슨 사이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을, 한쌍의 남녀가 제가 앉아
있는 평상으로 다가왔습니다.

함께 앉아도 되느냐는 식의 눈인사를 건네기에, 제가 한켠으로
비켜나며 응락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그 자리에 앉게 되었습니다.

같은 평상에 함께 있다보니 저로서는 자연 그들에게 관심이 갔
고, 그래서 본의아니게 그들에게 시선을 두게 되었습니다.

40대라고 생각되는 그런 커플이었습니다. 나이로는 부부같은데,
그들의 독특한 차림새로 보아서는 연인같기도 했습니다.

남자는 머리를 길러 한가닥으로 길게 묶은 상태였고, 여자는 짧
은 커트단발을 하고 있었습니다.

웬지 남자는 예술가...... 뭐, 그림을 그리는 화가거나, 음악가
일 것같은 풍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옷차림은 묘하게 일체감을 주고 있었습니다. 같
은 옷은 아니었지만, 웬지 그들이 함께 같은 옷을 입었다는 느낌
이 들었으니까요.

여자 손에 반짝이는 반지와, 남자 손에 반짝이는 반지 또한 그
러했습니다.

같은 모양은 아니었지만, 같은 소재 (금 + 빨간 천연루비)로 비
슷한 느낌을 주는 커플반지(?) 라고나 할까요?

저는 그들에게 갑자기 커다란 호기심이 생겼답니다. 그들은 제
게 아주 독특한 느낌으로 다가왔어요.

그런데 세상에...... 정말로 압권은 그들의 신발이었습니다. 밑
바닥이 얇은, 마치 색깔있는 실내화같은 느낌이었습니다.

평상 밑에 가지런히 벗어놓은 그들의 신발 두켤레는 마치 맞추
어놓은 거울조각처럼 똑같은 것이었습니다.

그 모양은 마치 중국 신발같은, 화려하면서도 고급스런 수가 놓
인 신발이었는데, 대번 아무렇게나 사신은 신발이 아니라는 생각
을 갖게 했습니다.

그 신발까지 보고나니까 저는 더 더욱 그들이 어떤 사이일까 궁
금하지 않을 수 없었답니다.

그들이 부부라면, 중고생 자녀는 있음직한 나이인데, 그 중년의
나이에도 저런식의 부부애를 표현하나싶은 의구심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서로를 이런
저런 각도에서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저는 그들이 어떤 사이인 걸 알 수 있을 만한 어떤 것도 들을
수 없었습니다.

다만 화장기는 옅었지만, 웬지 모를 우아함과 기품이 느껴지는
그 여자에 대한 야릇한 감정만을 느낄 수 있었답니다.

그렇게 한참을 이리저리 쳐다보기만 하던 그들이었는데, 여자가
말없이 그 남자의 무릎을 베고 하늘을 향해 누웠습니다.

그 여자는 말없이 푸른 봄하늘을 우러르고 있었고, 그 여자의
남자는 그런 그녀를 또한 한없이 사랑 가득한 눈길로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그 남자가 그토록 다정한 눈길로 그 여자를 바라보고 있었음에
도, 그녀는 천연한 표정으로 그저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제겐 왜 그렇게도 아름답게 보였는지요.

전...... 그들이 연인이건, 부부건 진심으로 서로를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사랑은 표현하는 것보다는 표현하지 않는 여백이 더욱 진하게
느껴지는 것이라는 것을 전 그때 느꼈습니다.

젊고 푸르른 연인들은 아니었지만, 그들이 얼마나 서로를 절절
히 사랑하고 있는지는, 옆에 앉아 있던 제게까지 그 모습이 보였
답니다.

해저물어가는 강물이 반짝이는 것을 보면서, 제가 슬쩍 마음이
시려와 눈물을 흘릴 뻔 했습니다.

한참 후, 그들 곁에서 일어나 제가 우리 일행들과 함께 떠날 차
비를 하고 있을 때, 그들도 우리처럼 주차장 쪽으로 향하는 모습
을 볼 수 있었습니다.

맨 앞쪽에 놓인 검은 색 그랜져 승용차에 그 여자가 오르는 모
습을 보고는, 저도 모르게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습니다.

고급차를 몬다고 다 귀부인은 아니겠지만, 그 여자에게 정말로
어울리는 '격'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 남자가 운전석 문을 열고 있을 때, 전 다시 한번 그 신발을
볼 수 있었습니다.

중년의 남자에게 그처럼 화사한 신발을 신게 한 그 여자는, 과
연 어떻게 그 남자에게 했을까요?

함께 있으되, 말을 아낄 줄 아는 절제된 사랑을 할 수 있는 여
자이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요?

대부분의 남자 중, 열에 아홉은 '에이, 내가 어떻게 그런 걸 신
어?"라고 반문할 수 있을 만큼 그것은 아주 화려한 '꽃신'에 가까
웠거든요.

......
저는 가끔씩 생각합니다. 남자들은 과연 '애교있는 여자'를 좋
아하는 걸까...... 라는 생각말입니다.

저는 또 생각합니다. 꼭 그렇지는 않을 것이라고요. 그 여자는
절대로 함부로 남자에게 애교 떨 여자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 여자는 완전한 '여자'로 보였으리란 생각을 합니다.
여자가 남자에게 '진정한 남자'를 원하듯이, 남자도 하나밖에
없는 나만의 '여자'로서의 의미로 사랑하는 것은 아닐까요?

애교든 교태든, 그것이 극에 달하면 치졸하고, 경박스럽습니다.

진정으로 가슴으로 사랑을 나누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유난스럽
고 경박한 사랑의 표현 따위는 자제하리라 생각합니다.

정말로 어떤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다면, '사랑한다'는 말을 하
기보다는 그 어떤 느낌으로 조용히 건네지길 기대해야 한다고 생
각합니다.

뭐든지 귀한 것은 소중하게 아껴야 그 가치가 있는 법이니까요.
실컷 싸우고도 언제 그랬냐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화해할 수 있
는 것은 진정 사랑의 힘입니다.

하지만 사랑한단 말을 수시로 남발하고도 서로가 허전해 할 만
큼 허망하고 우울하다면, 그것은 어쩌면 진정한 사랑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사랑은 결코 첫사랑을 시작할 청춘의 시절에만 아름답고 열정적
인 것은 아닙니다.

그 어느 시절에건, 누군가에게 건네질 따뜻한 사랑의 마음을 품
고 있는 한, 상대를 바라보는 눈빛 또한 따뜻하고 감미로울 것입
니다.

......
전 고요하고 맑은 사랑을 하고 싶습니다. 제가 조용히 강물을
바라보고 있어도, 진정 사랑하는 이에게 제 사랑이 은은하게 느껴
질 수 있을 만큼 우아한 사랑 말입니다.

마치 제가 좋아하는 dune 향기와 같이......

이젠 예쁜 여자가 되기보다는, 아름답고 우아한 여자가 되고 싶
은 바램처럼, 제가 하고 싶은 사랑의 모습조차도 그렇게 조금씩
변해가고 있나봅니다.

그래서인지 오래도록 그들의 모습이 제 머리속에 남아있습니다.
참...... 아름답게 보였거든요.

남자들이 여자에게 원하는 것은 바로 그 여자가 보여주듯, 기품
있고 우아한 사랑이 아니었을까요.




칵테일